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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추혜인 지음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책 익는 마을 원 진호
2021년 02월 02일 (화) 10:58:46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저자는 서울 은평구에 있는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에 적을 둔 가정의학과 의사다. 올해로 개원 10년차가 되었다, 스스로 ‘아이 없는 비혼 여성 페미니스트’라 소개한다. 여성주의라 하는 페미니스트의 핵심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모든 ‘차별과 혐오’의 언어와 행동과 싸우는 것이다. 이 과정에 의사의 역할은 많다. 부부폭력, 아동학대, 성소수자와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의료적 감시와 고발, 그리고 치료등이 그 것이다. 여기에 지역 사회에 터를 잡고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주치의로서 역할도 크다. 문제는 이런 일을 하기에는 통상의 개원의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뜻이 맞는 페미니스트 동료들과 의기투합해서 협동조합을 만들고 조합원들을 모아 의원을 개설했다. 이 책은 그 10년의 과정에 있었던 에피소드와 단상을 모아 놓은 것이다.

■ 왕진
 서울의 은평구는 도시의 변두리로 백련산등 주변의 야산과 구릉지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살림의원은 2018년도 장애인 주치의 시범사업에 참여한다. 저자는 자전거를 타고 왕진을 다닌다. 방문하는 집마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해서 왕진이 환자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연을 듣고 애로사항을 같이 해결하기도 한다. 엘리베이터 없는 연립주택 5층에 사는 하지마비 환자의 이동을 돕기 위해 자원봉사자를 연결해 주기도 하고, 10년 동안 사지 마비가 되어 누워 있는 엄마를 두 시간 간격으로 자세를 바꿔 주느라 ‘두 시간 이상’ 잠을 못 자는 따님의 망가진 치아치료를 위해 머리를 쓰기도 한다. 사망진단을 써 주기 위해 이틀에 한 번 방문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거나, 발톱을 깍고 귀지를 파주는 것도 주치의의 일이다. 저자는 진료실을 떠나 실제 일상에서 환자의 삶이 어떤지 봐야 질환이 전체적으로 보인다고 한다. 

■ 주치의는 팀플레이
 한국의료의 90%는 민간이 주도한다. 공공성이 강한 의료에서 경영의 주체가 민간이 되다보니 환자와 의사나, 국가와 병의원의 충돌이 잦다. 5~6억씩 빚 져서 낸 병원이 부도나면 개인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데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간섭하는 것은 민간 병원 의사로서 기분이 좋을리 없다. 허나 정부도 할 말은 있다. 의사에게 주는 것은 자격증이 아니라 면허증이다. 병의원 개설은 의사만이 할 수 있게 하고, 유사의료행위를 불법으로 막아주고 있다. 경영은 민간이 주도하고 감시는 국가가 주도하는 긴장되고 불편한 이 시스템이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최고의 의료수준과 시스템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국가가 전적으로 주도하는 의료(사회주의 공적 의료, 영국의 NHI)나 민간이 중심이 되는 의료(미국의 자유방임의료제도)의 문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의료가 점차 시장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의료민영화를 성장동력으로 삼으려 하고, 의사들은 돈이 되는 분야로만 진출하려고 한다. 환자들도 고급 질의 진료를 받기 위해 대도시 대형병원으로 가고자 한다. 그래서 지방과 도시 주변 지역의 의료 공동화와 소외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진료비의 차별과 주치의제도등을 시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실효성이 낮고 정착이 잘 되지 않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1차 의료를 담당하는 개원의들의 처지에 있다. 행위별 숫가제로 보다 많은 시간을 진료실에 투자하여 보다 많은 환자를 보고 이러 저런 처치를 해야 돈이 나오는 구조하에 왕진등에 신경쓸 여력이 없다. 또한 이들도 분과화 전문화되어 있어 환자를 총체적으로 보는 능력이 떨어져 있다. 또한 환자를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뉘앙스의 이 말이 의사들에게 얼마나 부담스러운지는 책에도 나온다. 세상에 제일 무서운 환자가 “원장님만 믿어요”라고 말하는 이라지 않던가.
 그래도 주치의제도는 정착이 되어야 한다. 살림의원처럼 지역 주민이 조합원이 되어 병의원을 개설하고 의사도 조합원으로 모시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지역의 병의원이 팀웍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쟁보다 협진이 될 수 있는 문화를 정착해야 한다. 지역 의사회와 각성된 의사들의 노력과 헌신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의료를 확장해서 돌봄과 간호, 보건복지행정의 모든 분야와 협진하는 문화를 만들기도 해야 한다. 환자들도 자신의 진료받은 정보를 하나 하나 모아 자신만의 의료통계를 갖고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어느 병원을 가도 ‘처음부터 다시’가 아닌 ‘여기부터 시작’이 될 터이니. 한마디로 주치의는 개인플레이가 아니라 팀플레이가 되어야 하고, 제도는 서로 믿는 문화가 조성되는 과정에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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