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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수 프리도 지음 『니체의 삶』
책 익는 마을 원 진호
2020년 11월 24일 (화) 11:04:02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시대정신
 80년대 학생들은 나라의 민주와 자주, 통일이 시대의 역사적 과제라고 생각했다. 독재정권 타도가 청년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념이 우리의 행동에 앞섰는지는 물음표다. 오히려 가치전도에 대한 반항이 더 큰 것은 아닌지. 나 같은 경우가 그렇다. 중 2때 시골에서 서을로 전학을 왔다. 서울역 뒤 서소문에 월세방이 있었고, 서대문에 있었던 전학 간 학교 뒤에는 경기대학교가 있었다. 80년 5월 서울역에 독침을 지닌 간첩이 잡혔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고, 광주에는 폭도들이 진압되었으니 나라를 안정시키는데 노력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도 들었다. 경기대 학생들의 시위로 취루탄 냄새가 나서 자율학습을 중단하고 집으로 귀가하기도 했다. 욕을 바가지로 했다. 이후 난 군인이 되기로 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지만 80년 광주가 북괴의 침략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난 군사학교에 낙방하고 일반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신입생때 5월 중간고사 공부를 위해 도서관으로 오르던 중 전시 패널에 걸린 사진을 보고 충격을 먹었다. 군인이 민간인을 구타하는 장면. 그 길로 선배들에게 물으러 갔다. 이때부터 정신이 돈 것 같았다. 가치전도. 내가 믿었던 정의가 불의였다니. 극과 극은 통한다고 존경하는 당시 대통령은 타도되어야 할 악마가 되었다. 책보대신 운동한 끈을 질끈하게 묶고 청바지나 교련복 차림으로 나간 거리가 나의 학교가 되었다. 근데 지금 생각하면 그 것이 진실일가 싶기도 하다. 혹시 군중심리에, 선배의 선동에, 막걸리 한 잔에 넘어갔는지도. 김상진, 전태일, 김세진, 이재호열사의 죽음에 진심이 동했는지. 진정으로 이 나라를 걱정했는지. 대학생이라는 선민의식으로 혹은 열등의식으로 허위와 위선으로 그리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단으로서 당시 청년들은 이념이 필요했고, 그 것을 시대정신이라 했으며 우리의 행동을 합리화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렇다고 우리의 오류와 한계를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위버멘쉬
 19세기말을 산 니체는 종교와 과학의 체계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것에 반기를 들었다. 평생 경제적으로 궁핍했으며 두통과 시력손실, 위장장애, 정신질환을 앓으면서 구체제를 전복할 시대정신의 구축에 노력했다. 기성 사회의 타락과 교회의 지배하에 자신을 맡기지 말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맞서 싸우라고 이야기했다. 문학과 예술에도 아폴론적 질서정연함에서 벗어나 디오니소스적인 무질서와 불확실성을 추구하라고 한다. 노예도덕을 미화하고 그 것으로 지배자보다 내가 낫다는 정신승리에 빠지는 ‘르상티망’을 극복하라고 한다. 우리는 공포를 느낀다. 본질과 의지, 믿음과 신념의 실재를 믿고 평생 살아왔는데 그런 것은 다 허위라니. “니체님 그렇다면 당신의 대안을 제시해 주세요?” 묻고 싶다. 그러나 니체는 답을 주지 않는다. 그 것은 당신이 찾으라고. ‘지금 여기’에서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투쟁에서, 또한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고. 그 것이 ‘위버멘쉬를 이뤄내는 진정한 길’인 것이다.
 아~ 그런데 우리는 이 아포리즘을 얼마나 왜곡했는가? 우리는 식민지 시절 백마타고 오는 초인을 한 없이 기다렸듯이, 80년대에 어설픈 시대정신에 청춘의 고민을 맡겨버린 것은 아닌지. 우리는 아직도 독립을 못하고 지가 잘 났다고 지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해 보겠다고 우쭐대고 나서는 7살 아이는 아닌지. 그렇다. 독립은 ‘줄을 타고 건너는, 무모할 정도로 용기를 내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런 면에 우린 7살 아이의 정신상태가 우리에게 딱 맞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용기가 없었으니 말이다.

■ 니체의 운명
 도 그렇다. 자신이 시대를 깨뜨릴 ‘다이나미이트’가 될 것이라 했지만, 같은 시대 사람들에게 미친소리로 외면당했다. 또한 마부에 채찍질 당하는 말을 끌어 안고 한 없이 울다가 마침내 미쳐버린 오빠를 대신해 동생은 얼마나 돈벌이에 혈안이 되었나. ‘자기 자신을 극복하라는 주장이 타인을 극복해야 한다는 뜻으로 변질되어’ 위버멘쉬가 제국과 패권의 논리로 악용되기도 했다. 니체의 아포리즘은 나찌의 입맛에 맞게 조리되어 국가사회주의 이념으로 활용되었다. 니체의 장례식은 그가 무신론자로 기독교적 의식을 원하지 않았으나, 교회 음악이 흘러 나오는 가운데 기독교식으로 오래오래 치러졌다고 한다. 이런 점은 역설적으로 니체가 죽어가면서도 위버멘쉬를 향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고 본다. 그 운명도 분명 사랑했으니. 그리고 2020년 지금까지도 젊은 영혼들을 뚜드려 깨우는 망치이자 다이나마이트로 존재하고 있으니. 50대 중반의 나이인 독자에게 ‘나는 7살 아이에 불과했구나’를 알게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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