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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발타자르 토마스 지음 『비참할 때 스피노자』
책 익는 마을 유 하나
2020년 11월 03일 (화) 11:31:57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왜 스피노자인가
 17세기 유럽은 격동의 시대였다. 성서를 기준으로 기독교적 세계관을 절대적 진리로 여겼던 중세는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새로운 진리와 기준을 찾고 있었다. 이때 나타난 데카르트의 철학은 세계의 중심을 신에서 인간으로 옮겨 놓았고 가장 확실한 진리의 개념을 인간의 정신으로 명명하며 근대의 문을 열었다. 그런데 데카르트와는 반대로 탈 인간주의를 생각했던 철학자가 있었다. 바로 스피노자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와 함께 근대 철학의 출발점에 있었지만 방향은 달랐다. 스피노자를 해석한 들뢰즈는 그를 두고 '폭탄을 장전하고 있는 철학자'라고 칭했다. 니체가 망치를 들었다면 스피노자는 폭탄을 장착했다. 도대체 어떤 폭탄이었을까.
'욕망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만큼 스피노자에게 욕망이란 개념은 중요하다. 고대, 중세 철학자들에게 욕망이란 인간의 모든 악의 근원이며 동물적인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성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부정적인 개념으로 인식했다. 즉, 욕망은 인간을 인간답게 행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해 요소다. 이것은 근대 학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이성에 집중했던 근대 철학자들에게 스피노자의 욕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너무나 파격적이었다. 두 세기가 지나서야 무의식의 개념을 확립했던 사실을 생각해보면 스피노자의 시대를 앞선 통찰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현대의 뇌신경 학자들은 감정이 없이는 이성이 기능할 수 없다는 것을 밝혔고 지성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확실한 좌표와 안내원이 감정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스피노자가 현대 철학자들의 재조명을 받고 있는 이유가 더욱 궁금해진다.

■ 정서의 정글에서
 "욕망은 인간의 본질 자체이다."
 스피노자는 욕망을 이성의 지배와 통제를 받아야 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은 영양분, 따뜻한 온도, 수면, 애정, 교역, 인정 등을 원한다.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수많은 개체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개체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에게 유익한 것에 대한 유지를 필요로 한다. 욕망은 나에게 유익한 개체와의 마주침을 위한 노력이다. 그러므로 스피노자는 욕망을 "그 자신 안에서 존속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인간의 모든 정서를 관계 속에서 설명한다. 내가 어떤 개체들을 만나 관계하고 어떤 정서에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행복해질 수도 불행해질 수도 있다. 스피노자를 읽으면 감정과 관계의 영향을 받으면서 고뇌하는 나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그 정서에 내 삶을 내던져서는 안 된다. 감정에 예속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제대로 알기 위한 노력과 탐색을 요구한다.

■ 자유의지와 수동적 정서
 인간은 동물과 구분되는 것이 자유의지라고 믿는다. 인간에게 자의적인 자유는 명백하다. 하지만 스피노자의 시각은 다르다. 우리가 어떤 일에 성공하거나 실패했을 때 의지가 강하거나 약해서 얻어진 결과로 보지 않는다. 우리를 성공이나 실패로 이끈 것은 자유의지가 아니라 저항할 수 없는 욕망이다. 그리고 발전하기를 원하다면 다른 것으로 자신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환경을 바꾸라고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외부 환경을 바꿀 것인가이다. 이 주장 또한 최근의 신경생리학의 연구가 지지해 주고 있다. 인간의 자유의지의 노력은 판단의 원인이 아니라 판단의 결과이며 행위를 설명할 때 필요한 작은 부분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여기 또 한 가지 언명을 통해 해결책을 제시한다.

■ 더 큰 욕망
 "우리는 오직 더 큰 욕망에 의해서만 욕망을 억제할 수 있을 뿐이다."
 악에 예속된 사람들의 문제는 이성이나 의지의 결핍으로 인한 문제가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자신들이 중독된 '쾌락'보다 더 큰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해로운 대상에게 예속되어 의존하는 것이다. 금연이나 금주를 하고 싶다면 그 욕구와 싸우지 말고 그 유해한 쾌락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줄 더 큰 욕구를 찾아내라. 악한 욕망과 싸우면 힘이 떨어지고 결국 그런 악의 구조를 이해하기가 어려워진다. 가장 혼란스럽고 해로운 욕망의 구조를 이해할 때 우리는 진정한 욕망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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