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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칼럼] 우리들의 어머니
2020년 10월 21일 (수) 10:07:17 박종철 논설주간 webmaster@charmnews.co.kr

   
필자 세대의 대부분 어머니들은 참으로 기구하게 살았다. 가난이 지겹지도 않았는지 자식들은 많이도 두었고, 그에 따른 고생은 고스란히 어머니의 몫이었다. 가부장적인 시대에 아버지가 아이를 돌보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양육으로 인한 어머니의 고생은 더욱 심했다. ‘남존여비(男尊女卑)’란 미명아래 사회적 약자로 살아야 했으며, 때에 따라서는 윗 어른들이 밥상을 물린 뒤에야 부뚜막에 걸터앉아 남은 찬과 함께 식은 밥 한 덩이로 허기를 달랬다. 채 마르지도 않은 장작으로 군불 때랴, 낑낑거리는 강아지 밥 주랴, 싸리문 옆 외양간 소여물 주랴, 그야말로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고생에 고생을 거듭했다. 해질 무렵 아버지는 술에 취해 들어와 어머니와 아이들에게 큰소리를 내기 일쑤였고, 자식은 물론 어머니에게까지 종종 손찌검을 했다.

가장으로서 가난을 해결하지 못하는 죄책감과 서러움을 우리의 아버지들은 그렇게 풀었다. 이 같은 모진 세월을 견디어낸 그 시대의 어머니들이 이제 늙고 병들어 아들 덕 좀 보나 했더니 며느리 눈치 보랴, 며느리에게 잡혀 사는 아들 놈 눈치 보랴, 그야말로 속절없는 세월 속에 남은 건 한숨뿐이다. 자식 키우느라 손발은 굴참나무 껍질보다 더 거칠어 졌고 허리는 휠대로 휘였는데 쳐다보는 자식새끼 하나 없으니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우리의 어머니는 오늘도 서울 큰 며느리 준다며 애호박 두어 개와 뒤뜰에서 주워 모은 알밤 한 됫박을 빛바랜 보자기에 정성스레 싸고 있다. 세월을 말해주는 움푹 파인 주름, 초점을 잃어버린 희뿌연 눈동자, 횐 머리칼에 검디검은 얼굴... 당신이나 챙길 것이지 그까짓 애호박은 무엇 하러 싸는지 알 수 없다.

“이런 것은 왜 싸들고 다니시냐.”고 자식에게 핀잔이나 듣지 않으면 다행인 일을 어머니는 오늘도 자처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어머니들의 초상이다. 밭고랑에 주저앉아 신세한탄하다가도 자식만 생각하면 피곤이 싹 가신다는 어머니. 남의 잔칫집 과방에서 돼지고기 한 점 치마폭에 숨겨와 자식에게 먹이던 어머니, 그러한 어머니들이 이제 늙고 병들어 한 분 두 분 세상을 등지고 있다. “자식 키우느라 정말 힘들었다고”, “먹고 싶은 것도 참으로 많았었는데...”라고, 푸념 한 번 해보지 못한 우리의 어머니가 모진 세월 앞에 힘없이 쓰러져 간다. 여기저기 눈치만 살피다가, 빛이 없는 저 세상으로, 저 먼 곳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백화점 옷 한 벌에 외국여행 한 번 해 보는 게 꿈이라던 우리의 어머니가 그렇게 이별을 고하고 있다.

서러움만 가득한 어머니가, 불쌍한 우리의 어머니가, 모진 고생만 한 우리의 어머니가 그렇게 세상을 떠나간다. 싸구려 삼베옷에 백미 몇 알 입에 물고, 손 끝 발 끝 생채기도 잊은 채, 다시 못 올 그곳으로 떠나고 있다. 나의 어머니도, 내 친구의 어머니도, 또 내 친구에 친구의 어머니도 그렇게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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