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7 화 11:36
의정비, 시립노인병원
 
> 뉴스 > 교육/문화
     
[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리베카 솔닛 지음 『멀고도 가까운』
책 익는 마을 원진호
2020년 08월 04일 (화) 11:22:36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살구를 따고 난 가을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다. 혼자서는 집에서 살지 못 하게 되었다.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고, 집은 정리하게 되었다. 그 해 가을 집 앞 뜰에 심어져 있던 살구나무에 열매가 풍성하게 열렸다. 남동생이 살구를 바구니에 가득 담아 가지고 왔다. 그 바구니에는 덜 익은 것, 익어 가는 것, 이미 썩어가는 것들이 섞여 있었다. 살구를 방바닥에 펼쳐 놓고 고르고 다듬었다. 시럽과 잼, 처트니를 만들고 통조림으로 보관했다. 살구술을 담았다. 
 어머니는 ‘도덕적인 질문과 원칙’에 맞춰 ‘그가 이룬 것과 그가 기여한 것에 따라’ 사람을 평가해야 한다고 보았다. 어머니는 딸을 자신의 거울로 여기고 부족한 점, 못난 점을 지적하고, 나아가 잘난 점, 잘한 점까지 질투했다. 딸은 어머니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고집이 세고 엄격’해져야 했다. 어머니는 아프고 힘들 때 딸이 정성으로 간호해도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때리기도 했다. 딸은 엄마 앞에서 침묵을 선택했다. 책과 글을 통해 침묵을 달랬다. 그 녀의 소망은 엄마에게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살구를 딴 가을 집에 있기 조차도 어려울 정도로 병이 더욱 심해진 것이다.    

■ deux ex machina
 ‘고대 그리스 극작가가 극을 계속 끌고 가거나 주인공을 구해 줄 때 쓰던 장치’가 있었는데 당시 평론가들은 극의 전개는 주인공의 행동이나 성격으로 끌고 가는 거지 외부의 어떤 힘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고 이 장치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우연한 상황이나 모험이 없는 인생이 실제 존재하지는 않다. 예상하고 계획하는 삶을 살다가도 우연한 사건과 사고로 인생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후에 인문학자들이 이 장치를 ‘기계장치의 신’이라 비유해서 인생에서 맞닥뜨린 우연성을 설명하려했다.
 작가는 인생에서 두 번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경험했다. 하나는 대학시절 뉴멕시코로 여행을 가던 중 레프팅을 가자던 느닷 없는 제안에 “네”라고 대답했던 것. 물론 동행하지 못했지만 20년 후 실현된 이 사건으로 ‘정말 좋은 이유가 없다면 절대로 모험을 거절하지 말자’는 좌우명이 생겼다는 것. 그건 아마 ‘어머니의 두려움과 의무감’에서 극복한 순간이고 ‘내 안에 있던 어떤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집을 떠나 입소한 요양병원에서 어머니가 적응을 못하고 보다 나은 요양시설에 입소를 준비하고 있을 때, 남자친구와 막 헤어지고 난 때 아이슬란드의 어느 작가- 물론 그의 책을 읽은 독자-가 레이야비크로에서의 체류를 제안한 것이다. 심신이 약해져 있던 그 녀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 감정이입(EMPATHY)
 은 '자신의 테두리 밖으로 살짝 나와서 여행하는 일. 자신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상상력을 동원하여 타인의 존재를 느끼고, 그의 삶과 동행해 보는 것이다.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라는 명제를 가지고 누구는 가능하다고 하고 누구는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바로 감정이입이 가능하냐는 판단의 차이 때문이다. 이 단어는 ’시각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심리학자‘인 에드워드 티치너가 1909년에 처음 제안된 것이다. 그 전에는 ’공감, 친절함, 안쓰러워함, 동정, 동질감‘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감정이입이 이를 개념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저자는 아이슬란드에서 자신을 초대해 준 시각예술가의 작품 ’미로‘속을 거닐며 어머니의 삶과 자신의 삶을 들여다 보았다. 어머니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다시는 보지 말아야 겠다고 결심한 과거의 어머니가 사라지고 현재에만 집중하는 상태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저자는 어머니와 관련된 모든 상황에 말을 걸어 본다. 살구를 딴 이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실타래를 감고 풀면서, 숨을 들이 쉬고 내 쉬면서, 어머니와 자신의 거울을 들여다 보면서 시간을 성찰하고 그 과정에 살구 음식을 소화시겼다.
 글은 어머니에게 받았던 상처와 복수의 감정을 이해와 용서의 상태로 만들어 두었다. 사실 ‘이해를 위해 감정이입이 필요하고 감정이입에 이르기 위해 이해가 필요하며, 또한 감정이입은 용서이며, 이 모든 것이 서로서로를 도우며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책에는 적혀 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사라지는 존재인 것이다. 감정이입 없이 어찌 살겠는가. 하여 고통은 나눌 수 있다. 딸과 어머니 처럼.

보령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보령신문(http://www.charm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기사의견쓰기는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본 기사
[박종철 칼럼] 우리들의 어머니
건축분야 규제 대폭 개선된다
가족센터 건립 어디까지 왔나?
정낙춘 부시장, 원산도 일원 현장점
가을철, 안전산행 하세요!
궁말의 변화가 시작됐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실시
보령, 미식가들을 유혹한다
가족예술치료로 코로나 이겨낸다
"열린 도서관 이용하세요!"
 
우편번호 33436 충남 보령시 신설 3길 11, 1층(동대동, 모스트센터) | Tel: 041)936-0005 | Fax:041)935-1356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연중
Copyright 2009 보령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jong861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