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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게리 폴 나브한 지음『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책 익는 마을 송소강
2020년 07월 21일 (화) 11:03:31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오늘도 나는 아침 출근 전에 간단하게 식사를 한다. 오늘 식단은 햇감자 찐 것과 삶은 달걀에 우유 한 잔을 곁들인다. 감자의 품종은 우리나라에서 단일 작물로 약 80% 이상 재배되는 ‘수미’ 품종이다. 갈색 달걀을 생산하는 산란계도 2010년 기준 80% 이상을 ‘하이라인계’가 점유하고 있다.
 우리 생활에서 어느 순간부터 다양성은 점차 사라지고 이렇듯 단일, 획일, 평균화가 함께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더라도 생활하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므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냉장고에서 죽은 지 오래된 물건을 꺼내서 전자레인지에 돌려 식탁에 내놓는 일에 익숙해져서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은 생태학자이자 민속식물학자인 게리 나브한의 여행기다. 그는 20세기 초반에 재배식물 기원지를 찾아 세계 곳곳을 누볐던 러시아 식물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의 여정을 따라가며 씨앗과 농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브한은 바빌로프의 발자국을 따라가며 그의 발길이 닿았던 곳의 농업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획일적 근대화와 도시화, 농업의 산업화, 자유무역정책, 기후변화가 농업생물다양성을 어떻게 위협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모든 인간에게 먹고 사는 문제는 근본적인 일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영양결핍으로 기아와 질병에 노출된 사람이 많다. 반대로 영양과다증에 걸린 사람도 그에 못지않게 많다. 따라서 굶주림과 식량안보의 문제는 단지 지역 적응 품종이나 식량 생산이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근본적인 문제는 장 지글러가 표현하듯이 식량자원에 대한 불평등한 접근성 또는 재분배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기아의 근본 원인은 식량이나 땅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프란시스 무어 라페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먹는 것이 그 사람의 생각을 재배한다’고 하는 말을 생각하면 어쩌면 어떤 것을 먹느냐가 아이들과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결정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시민이 건강에 좋으며, 영양이 풍부하고, 독소가 없을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적합한 음식을 어떤 방식으로 생산하고 먹을지 결정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빌로프, 나브한 그리고 지역사회에 안전한 먹거리를 걱정하고 있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안전한 먹거리를 걱정하는 농부들은 종자회사의 우량 F1 종자 하나가 다양한 용도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다고 여긴다. 그런데도 몇몇 식물 육종가들은 우량 F1 종자 하나를 개발하여 모든 인류를 먹여 살린다는 허황한 꿈을 꾼다.
우리는 이제 거대 다국적 종자회사(바이엘, 중국화공, 다우케미컬)에 맞서 식량민주주를 실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농부로 살아가면서 씨앗을 돈 주고 사야 하고, 사서 쓴 씨앗을 다시 받아서 쓸 수 없다는 사실과 우리나라 종묘회사들이 해외 다국적기업으로 인수되면서 우리 종자에 대한 대규모 로열티를 지급해야 한다는 사실은 절망감과 무력감으로 다가온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GMO가 상용화되고 있지 않다고 하지만, 매년 100여 종 이상이 넘는 식용 GMO를 수입하여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가공식품의 형태로 유통되기까지 한다.
 오늘날의 농부들은 신자본주의 권력 앞에 농부의 권리를 송두리째 빼앗기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종자주권이 끊임없이 위협받고 토종씨앗이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이다.

 책의 마지막에서 바빌로프는 세계 여정을 통해 자신의 가설을 구체화했다. 즉 산악지대의 불균질한 지형이 생물학적·문화적 다양성을 만들어내면서 작물품종의 발생과 진화, 분화를 촉진한다는 가설 말이다. 이러한 촉진을 통해 조금이나마 식량안보를 제공해 줄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불균질한 지형을 지나치게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지형의 생태계에 지나치게 끼어들지 않았기에 공동체의 건강에 필수적인 야생 식물과 약초가 남아 있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바빌로프의 고국인 소련의 집단농장은 사회적·생태학적 다양성 모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에 탄력성을 잃었다.
스탈린의 전체주의적 세계관은 과학자들의 창조성을 질식시키고 농업경관의 탄력성과 야생성을 숨 막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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