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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칼럼]정도전과 노무현의 인본주의
2020년 06월 09일 (화) 11:22:21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정도전은 조선창업에 앞서 정몽주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은 이색(1328 ~ 1396년, 고려 말 문신이자 학자)의 밑에서 함께 공부한 가장 가까운 벗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어지러웠던 만큼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은 크게 달랐다.정도전이 먼저 입을 열었다.“저는 지금의 나라가 아닌 새 나라를 세워 이 땅의 모든 백성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정도전의 주장에 정몽주는 “어째서 꼭 새 나라이여야 한단 말인가, 새 나라를 세울 힘이 있다면 고려 왕실을 바로잡고 백성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이처럼 정몽주가 조선창업에 반대를 굽히지 않자 급기야 두 사람은 갈라섰다.

그러나 당시 고려백성들의 존경과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정몽주를 배제하고는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 없다고 판단한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정몽주를 설득하기로 하고 정몽주에게 ‘하여가’라는 시조 한편을 보낸다.

하여가(어떻습니까?)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리리라.‘하여가’를 읽고 난 정몽주는 ‘단심가’를 답장으로 보냈다. 단심가(충성스러운 마음)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이 같은 답장을 받은 이방원은 정몽주가 결코 고려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갖는다.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방원의 뜻을 따르지 않은 정몽주는 결국 이방원의 자객에 의해 선죽교 위에서 살해되고 만다.

이처럼 죽음으로까지 고려를 지키고자했던 정몽주의 충성심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당시 정도전이 이루고자했던 인본주의(人本主義)도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그 역시 꿈을 펼치지 못하고 이방원에게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9년 5월 23일 이명박과 그 일당들의 핍박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그가 떠난 열한 번째의 봄도 끝자락에 서 있다. 정도전과 정몽주의 빗나간 우정, 노무현을 피눈물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문재인의 아린가슴, 그러나 이들이 추구했던 백성들의 삶은 가치는 아직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소득격차는 더 벌어졌고 도덕과 상식은 땅에 떨어졌다. 관료들은 관료들대로, 재벌은 재벌대로, 이들에게 걸맞는 삶의 질서가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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