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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라이언 홀리데이 지음 『에고라는 적』
책 익는 마을 원진호
2020년 05월 19일 (화) 11:39:42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저자의
 오른팔에는 ‘에고는 적이다’가, 왼팔에는 ‘장애물이 바로 길이다’라는 문구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고 한다. 19세 때 대학을 중퇴하고 연예기획사 최연소 이사가 되었고, 21세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그는 마케팅 회사를 차려 승승장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4년 어느 순간 회사가 부도나고 자신은 ‘과로와 스트레스로 치인 초라한 모습’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비극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그 때 생각한 것이 ‘에고’였다. 에고는 철학적이거나 프로이드식의 개념이 아닌 삶의 실제적인 면을 말한다. 그 것은 목표의 상실과 탐욕과 부정, 열정과 허위로 빠지는 것 등등을 의미한다. 저자는 열정-성공-실패의 단계에서 에고에 휘둘리는 사례와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독자에게 “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려면 나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 묻는다. 그는 이 책이 ‘에고에 덜 휘둘리는 마음 상태’를 유지하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당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루어나가는 데’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열정, 성공, 실패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경제생활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승자독식과 각자도생의 세상에서 열정을 가지고 돈을 벌고, 나름 성공하고, 또한 실패를 맛 본다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역사 이래 가장 치사한 제도라 일컫는 시장경제에서 다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내가 사는 보령을 하나의 삶의 공동체 단위로 생각하고 사는 나로서는 한편으로 동의가 되면서, 한편으로 반감이 간다. 동의가 되는 것은 이 책이 자기절제와 실천을 강조하고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에고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가 애초에 설정했던 목표를 도중에 잃어버리고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맞이’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냉정함을 유지하고 탐욕과 집착을 삼가며, 언제나 겸손하고 늘 목적의식을 가지고 자기 주변의 더 큰 세상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감이 가는 것은 언급하는 예가 범부들의 그 것이 아니라는 것과 그 예들이 사후약방문이나 뒷담화는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의 유명한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거나, 사례를 제시하면서 에고에 휘둘리지 않는 예를 들지만,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식 있는 시민들의 일상적인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이다. 애초에 우리는 대통령이나, 총사령관이나, 목숨 걸고 산에 올라가는 초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엔 저자도 범상한 사람은 아니다. 또한 사례로 드는 것을 보면 사후약방문의 성향이 있다. 마샬플랜으로 알고 있는 2차세계대전의 연합군 장군인 마샬이 일기를 안 쓴 이유는 일상 자기 업무에 방해가 될까봐 하지만 그렇다면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는 뭔가. 또한 실천하는 사람은 남의 칭찬을 받기 위해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말을 뱉음으로서 그 말에 책임을 지기위해 열심히 실천하는 사람도 있다. 즉, 겉만 보고 모르는 것이다. 그 사람이 말을 많이 한다고 하는 것이 허위인지 진실인지. 결국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르고, 불편한 진실이지만 결과에 따라 다른 것이다. 이 독후감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는 이 작업이 목표와 수단이 전도된 허명을 위해 하는 작업으로 비출 수 있지만, 누구에게는 자기성찰의 한 과정이고 문화운동의 한 방편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것들이 섞여있다는 것이다. 둘 다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허명과 진정성의 사이에 이 독후감 활동이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 이 책에 공감 가는 문장이 있다. 알렉산더의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이다. ‘어떤 미덕이나 탁월함은 하나의 스펙트럼 위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 용기는 소심함과 무모함 사이의 어떤 지점에 있고, 사람들이 모두 칭송하는 관대함이 실제로 유용할 수 있으려면 인색하지도 낭비하지도 않아야 한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용감함의 극단인 무모함으로 치닫고 32세의 나이에 인생을 마감했다. 다행인 것은 그가 죽을 때 “이젠 충분하구나”했으니 위인은 되었다.
 결국 열정과 성공, 그리고 실패의 과정에서 에고와 또 다른 나는 투쟁하는 변증법적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단지 에고가 적일까?
 
■ 선의와 호의
 서양 사람들의 글들은 이분법적이다. 그리고 기독교적 신앙에 근거한 바가 크다. 에고를 적으로 삼아 보다 앞으로 전진하고자 하는 저자의 태도를 지지하고 싶지 않다. 또한 글에 인용 문장이 많다. 사실 에고는 나다. 내가 그러고 싶은 걸 어찌 하겠는가? 다만 달래고 어루만지며 갈 일이다. 헤겔도 인정투쟁이야길 했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인간인데, 그런 인간들이 모여 관계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니 바로 타자가 또한 나이고, 나의 또 다른 에고일 것이다. 하여, 나는 에고에게 선의로 대했으면 싶다. 그러면 그 에고도 나에게 호의로 답하지 않을까? 그래야 세상 심난하지 않게 무난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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