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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아리엘 버거 지음 『나의 기억을 보라』
책 익는 마을 원 진호
2020년 04월 28일 (화) 11:04:09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인간의 본성
 늦은 밤 도시의 한적한 도로 사거리에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이 있다. 각 자 차들은 자기 신호를 기다리며 정지해 있다. 그러다 한 차가 신호를 위반하고 제 갈 길을 가자 반대편 차도 스물스물 움직이더니 빨간 불에 사거리를 지나가 버린다.
 무엇이 옳은 것일까? 신호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면 적당히 어기는 것이. 상황과 맥락에 따라 둘 다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겠다. 공리주의는 개인과 사회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처신하면 된다고 할 것이고, 칸트는 내 의지의 준칙이 원하는 바대로 움직이면 된다고 할 것이다. 물론 그 준칙은 상대방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도 능히 그렇게 하리라는 사고실험을 거쳐야 한다.
 동서양 고대 철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은 도덕적이여서 그 것을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라 했다. 그 원본이 플라톤의 이데아였고, 맹자의 사단이었을 것이다. 그에 맞서 자연을 이야기하고 인위를 해악으로 본 현인들도 있다. 노자의 무위와 에피쿠로스의 아타락시아가 그러할 것 같은데 문제는 그 무위 속에 들어있는 인간의 무서움이다. 사실 무위나 아타락시아도 권력 있는 자와 가진 자나 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항상 가난했고 비천했다. 그들은 갖기 위해, 혹은 뺏기지 않기 위해 싸워왔다. 우상과 기만과 독선에 그들의 정신은 시달렸다. 하여 인간의 본성은 악이며 이 것들을 어떻게 통제하여 공동체의 생존에 도움이 될 것인지 궁구해 온 것이 인문의 역사일 것이다.
 인간은 사거리에서 많은 사고를 경험했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신호등을 설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신호를 위반하는 것을 충돌질했을 것이고 사고는 또 났을 것이다. 자 그 다음에 어찌할 것인가? 신호위반 감시 카메라를 달까? 

■ 기억
 이 책은 교수이자 인권 운동가인 엘리 위젤의 강의를 그의 제자인 저자의 시선을 통해 정리한 것이다. 위젤은 유대인으로 15세 때 가족과 함께 아우슈비츠에 수감되었다. 여기에서 수감자들 90%가 사망했다. 그의 어머니, 세 여동생이 살해되었다. 그는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해방을 맞았다. 해방직전 아버지는 사망했다. 그는 프랑스 고아원에 들어가 한 일중 하나가 게토에 들어가기 전 읽었던 탈무드의 마지막 문장 다음부터 이어 읽는 것이었단다. ‘배움의 열정’이 그를 절망에서 구원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위젤은 자기의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때가 ‘나찌 고위 장교들을 비롯한 학살의 주동자와 실행자가 상당수가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라고 말한다. 그는 ‘도덕적 명확성을 지키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교육이 도덕적, 그리고 윤리적 타락을 이겨내도록 해주는 뭔가 숨겨진 주요요소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를 평생의 연구 주제로 삼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해답을 찾아냈다. 바로 ‘기억’이다.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기 전 독일군 수뇌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단다. “지금 누가 아르메니아인을 기억하는가?” 그가 이야기하는 기억은 1915년에서 16년 사이 자행된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이야기한다. 근대들어 처음 일어난 이 민족대학살을 히틀러는 잊으라는 것이다. 그 뒤에 이뤄진 홀로코스트는 우리가 역사를 통해 익히 아는 사실. 위젤 교수는 ‘망각은 우리를 노예의 길로 이끌지만 기억은 우리를 구원’한다는 경구를 인용하고, ‘과거를 일깨워 미래를 위한 보호막으로 삼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말한다.
 이 책은 바로 그 ‘기억’에 대한 담론이다. 우리가 단지 역사를 사실로만 알고 있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각 자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떤 돋보기와 거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한다. 물론 그 돋보기는 자기 인생 체험에 기반한 것일 수도 있고, 거울은 문학작품이나 다른 인생의 체험과 나누는 대화와 이야기일 수 있다.
 문제는 기억이 선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도덕성을 기르는 교육이 선동과 다른 것은 무엇일까? 선동은 ‘사람들에게 듣고 싶은 말만 들려주거나 원래 있던 공포심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사람들이 들어야 하는 이야기를 비록 듣기 고통스럽더라도 들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기억과 교육은 불편하다. 불편해야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거짓은 달콤하고 부지런하다. 이 것만 잘 기억하자. 거짓의 달콤과 부지럼을.

■ 신호등
 바로 그 감시카메라가 인문의 사거리에 거치되어 있는 ‘기억’이라는 장치일 것이다. ‘도덕성을 기르는 교육’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그 감시카메라가 우리의 거울이며 돋보기라고 생각해 보자. 그 과정을 통해 숙고된 생각과 행동이라면 적어도 거짓은 아닐 것이다. 신호를 위반하든 안 하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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