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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장 그르니에 지음 『 섬 』
책 익는 마을 원 진호
2020년 03월 17일 (화) 11:21:58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10년 전 인가
 월요일에 장날인 날. 유독 바쁘게 일과를 마치고 충주에 문상을 다녀온 기억이 있다. 귀한 선배가 황망하게 돌아가셨고 호상은 못가도 애상은 가는 것이 도리라 생각했기에 그리했다. 보령으로 돌아오는 늦은 밤 난 잠시 졸았고 순간 눈 앞에 중앙분리대가 보여 핸들을 꺽었다. 1차선에서 2차선을 가로질러 3차선까지 차가 내질렀다. 다행히 난 살았다. 차량 없는 심야의 고속도로에서 무심결에 과속을 했고 난 꿈과 현실을 오고 갔었나 보다. 가정은 논리의 전제가 될 수 없다지만 삶을 성찰할 수 있다. 만약, 중앙분리대에 부딪쳤다면 옆 차선에 차량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후 나는 통계를 찾아 봤다. 기대여명과 평균수명, 건강수명등. 남들만큼 살면 억울하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고종명을 이해하고 그만큼 산다고 가정하면, 나에게 남은 유의미한 시공간의 자원이 얼마나 남아있나를 따져봤다.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 궁구했다. 그렇다면 10여 년이 지난 지금 난 잘 살고 있는 걸까? 단언하건대 별 차이 없다. 일상이 그렇게 무섭다.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성과 정신, 사상과 이념 속에 포장된 그 욕망이 우리를 일상에 밀어 넣고 있다. 아~ 얼마나 우린 슬픈 존재인가. 우린 너무 쉽게 배고프고 너무 쉽게 배부른 존재인 걸. 그럼에도 가끔 스쳐간 그 죽음의 칼날 빛을 생각하며 애를 써보기는 하는데 나의 결심은 백사장에 새겨 논 그림처럼 파도와 포말에 맥없이 사라지고 만다.

■ 섬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 글의 첫 문장이다. 이를 읽는 독자는 뒷머리가 묵지근하며 구역을 느낀다. 서구 작가들의 작법이 이렇다. 먼저 한 방을 치고 구구절절 나아가는 방식. 톨스토이도 『안네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다들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한 것처럼. 이런 문장들은 화두가 되어 이후 책읽기를 지배한다. 마치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들어와 자신의 유전정보를 복제해 가듯이 문장들이 내 의식 안에서 증식된다. 하여 작가의 ‘한 순간’에 독자의 ‘한 순간’이 섞이고 글을 읽는 와중에 이게 작가의 말인지 독자의 독백인지 모르는 처지에 빠지게 된다. 무뎌진 감각과 잊혀진 관념이 살아나면서 작가가 직조해 낸 무색의 천에 독자는 인생 물감을 뿌려 보게 되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마른 돌담 하나만으로도 나를 격리시켜 주기에 족할 것이고, 어느 농가의 문턱에 선 두 그루의 시프레 나무만으로도 나를 반겨 맞아주기에 족할 것이니...한 번의 악수, 어떤 총명의 표시, 어떤 눈길...이런 것들이 바로 나의 보로메 섬들일 터이다’ 섬. 첫 문장의 ‘한 순간’의 기억이 마지막 문장인 ‘섬’으로 귀결된다. 그에게 섬은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나의 섬은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 섬=무(無)의 정서
 작가는 예닐곱 살쯤 보리수 그늘 아래서 보았던 하늘이 ‘기우뚱하더니 허공 속으로 송두리째 삼켜져 버리는 것’을 보았단다. 그 것은 헛됨이 아니라 비어있음의 의미를 갖는 무(無)의 인상이었으며 평생 그의 화두가 되었단다. 이 책은 그가 35세 때 펴낸 것으로 다양한 경험과 사색을 통하여 무의 정서를 구체화한 거라 볼 수 있다. 먼 여행지에서 위대한 건축물을 보고 진동하는 것이 아니라 ‘테라스의 포석들 위에 엎드려 대리석 위에 춤추는 빛을 내 속으로 스며들게’하는 것으로 충만을 느낀다거나, 대도시의 익명성에 파묻혀 자신을 비천(?)하게 만드는 것이 소망이라던가, 담벽이 높은 좁은 골목을 걸으며 그 담장 너머에서 배어나오는 꽃 향기에서 행복을 느낀다거나, 여행의 본질은 자신의 무뎐진 감각을 깨우는 것에 있다거나, 고양이와 백정의 죽음을 소상하게 독백하는 것에서, 그리스와 인도의 문화를 집요하게 풀어내는 것에서 ‘무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하니.

■ 나의 섬 
 고수의 발길이 아름답고 지혜롭다고 마냥 따라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작가의 폭넓은 사색으로 인도된 섬이 저러하다면 나의 섬 또한 어떠할 것이다. 정답은 없고 각 자 해답이 있는 섬. 각 자의 그 섬을 지어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최고의 성과는 아닐런지.  
 까뮈는 스무 살에 이 글을 읽고 그루니에를 평생의 글쓰기 스승으로 삼았고, 이념에 얽매이지는 않는 인간의 자유를 노래했다. 이 글을 번역한 김화영은 문장의 ‘그 말들이 더욱 감동적으로 만드는 침묵을 어떻게 옮기면 좋단 말인가?’라고 하면서 한탄을 하였다. 번역자도 분명 그루니에의 문장을 통해 자신만의 섬을 생성해냈음이 틀림없다.
 나의 섬-죽음의 통찰도 이 책을 읽으며 치열하게 떠올랐다. 살다보면 또 시들어지겠지만, 그때마다 이 책을 들여다 보며 내 섬을 계속 간직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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