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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키케로 지음 『 노년에 대하여 』
책 익는 마을 원진호
2020년 03월 03일 (화) 11:16:12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키케로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기원전 106~43년을 산 로마의 정치가, 웅변가, 변호사. 지금으로 치면 보령 유지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를 마치고, 변호사 생활하다 정계에 입문하여 그 능력을 인정받아, 젊은 나이에 국무총리까지 한 사람이다. 문제는 그가 국민의 선거에 기초해 구성된 국회의 존재를 부정하고 검증되고 인정된 원로원 중심의 공화정을 주장했다는 것. 당시 로마는 세계 국가로 발돋움해 나가는 때인지라 키케로의 정치관은 호응을 받지 못했다. 그는 한때 정적들에 의해 추방되었다가 복권이 되지만 카이사르등의 당시 주도 세력과 화해하지는 못했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유스와의 내전에서 후자를 지지하면서 정치적 입지는 더욱 좁아졌고 말년에 부인과 이혼을 하고, 딸까지 먼저 죽는 불행을 겪는다. 카이사르가 살해되고 난 후 정계에 복귀하지만 안토니우스를 탄핵하는 글들을 발표하면서 결국 63세의 나이로 추방되어 살해된다.
 그는 정치적 휴식기에 많은 글들을 썼는데 후에 중세의 인문주의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철학적으로 그는 그리스 사상의 전달자였고 라틴어를 쓰여진 글들은 이후 서양의 철학과 사상적 어휘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이 글은 그의 나이 60세에 친구인 63세의 앗티쿠스에게 보낸 글이다. 글은 기원전 234년에 태어난 카토라는 83세의 로마정치의 원로가 장래가 촉망받는 30대 중반의 두 젊은이에게 노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글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지금이나 그 때나 현인들의 생각은 별반 차이가 없음을 느낀다. 다만, 이미 해낸, 혹은 누리거나 가진 위인들의 이야기와 글로 역사를 남기지 못한 민초들의 삶과 생각은 어떻게 다를까하는 궁금함이 생겼다.

■ 노년에 대하여
 카토는 노년이 비참해 보이는 이유는 나이듦이 ‘우리를 활동할 수 없게 하고, 몸을 허약하게 만들며, 몸에게서 쾌락을 빼앗아 가며, 죽음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게’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배의 키잡이가 아무 움직임이 없다고 일을 안 하고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은 공동체 내에서 조언과 권위로 그 활동을 다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노인의 지혜가 나라를 지탱하고 회복시키는 예가 역사에 많다고 한다. 노인이라고 배우기를 멈추는 것은 아니며 끊임없이 배움으로서 공동체에서의 제 역할을 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노인이 기력이 약한 것은 나이듦 때문이 아니고 젊었을 때의 방탕 때문일 경우가 많으니, 나이에 맞는 활동을 통해 기력과 활력은 충분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쾌락의 줄어듦은 불행이 아니라 축복일 수 있다. 연로한 소포클레스는 성적 접촉을 아직도 즐기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단다. “아이고, 맙소사! 사납고 잔인한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온 것처럼 이제 막 거기서 빠져나왔소이다” 그렇다고 노인이라고 쾌락은 즐기면 안되는가? 나름의 방식으로 노인은 청년 못지 않게 즐길 수 있지만, 카토는 정신적 쾌락의 즐거움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또한 노인이 ‘고집이 세고, 괴팍스런 것’은 성격상의 결함이지 노년의 결함은 아니다. 노년의 영혼이 우아함을 갖기 위해서는 젊은 시절부터 수련되고 단련되어야 하는 법이기도 하다. 죽음은 모두에게 직면해 있는 것이니 오히려 젊은 사람보다 노년이 그 만큼 살아왔다는 의미에서 더 이득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카토는 “죽음이 영혼을 완전히 없애버린다면 죽음은 무시되어 마땅하고, 죽음이 영혼을 영생할 어떤 곳으로 인도한다면 죽음은 바람직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인간은 적절할 때 죽는 것이 바람직하며 오래 산다고 능사는 아닌 것이다. 인생의 관심사가 사라졌을 때, ‘갑자기 깨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꺼져 가는 것’이 노년의 죽음이라 이야기 한다.

■ 어느 노인의 죽음
 10여 년전 기억이 난다. 협심증이 의심되어 큰 병원 가시라는 말을 80대 노인 환자분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분은 잔잔하고 선한 미소를 띠우며 “이 정도면 됐지요”하셨다. 그 때 그 분에게 느낀 기운에 눌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일 주일 후 그 분은 돌아가셨다. 이 글을 읽으며 시시해서 역사가 안 된, 글이 안 되어 유산이 되지 못한 그 분의 삶을 상상해 보았다. 이 분이 키케로였다면 어떤 노년의 글을 남겼을까? 
 50대 중반에 들어서는 나로서는 60세의 키케로의 이야기가 진실로 다가온다. 허나 어떡하나? 철학자 김형석은 인생의 전성기는 오십에서 팔십까지라 했고, UN이 발표한 새로운 연령구분에서 중년을 66세~79세로 보고 노년을 팔십이상으로 보고 있으니. 아직은 나는 더 나를 절차탁마해야함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분투와 성찰, 연대와 소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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