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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올더스 헉슬리 지음 <멋진 신세계>
책 익는 마을 유 하나
2019년 12월 30일 (월) 10:33:42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작품 소개
 1932년 영국의 헉슬리가 집필한 이 작품은 2540년을 배경으로 총통이라는 통치자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세계는 문명 세계와 야만인의 세계로 나뉘어 있으며 총통이 지배하는 세계는 문명 세계, 즉 멋진 신세계이다.
 이 곳에는 공장과 같은 실험실에서 유전자 조작기술을 이용해 인간을 배양하고 만들어 낸다. 인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5가지의 계급으로 나뉘어 그 계급에 맞는 역할을 부여받도록 설계되고 교육받는다. 이 모든 것은 사회의 안정을 위한 것이라는 명제 아래 총통은 모든 인간들의 삶을 철저히 계획하고 통제한다. 모든 계급의 사람들은 각자 부여받은 직업이나 역할에 불만이 없고 만족하도록 태아 때 부터 세뇌를 당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모든 감정을 통제할 수는 없기에 총통은 ‘소마’라는 마약과 같은 약물을 이용해 대중의 부정적인 감정 자체를 차단시킨다. 이 것의 목표는 자신이 갖고 태어난 사회적 운명을 받아들이고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더 이상 인간의 몸에서 태아가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개념이 자동으로 없어진다. 총통이 생각하는 가족은 이 세상의 모든 비참함의 시발점이며 불안정한 사회를 만드는 요소로 여겨진다. 게다가 불안과 고통을 차단함과 동시에 쾌락과 건강, 젊음이 보장된다. 약간이라도 불편한 감정을 느낄 것 같다면 ‘소마’를 먹고 평정을 되찾을 수 있는 이 세계야말로 정말 ‘멋진 신세계’가 아닌가!

■ 진정한 행복이란
 사람은 누구나 주어진 삶이 있다. 물론 각자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그 주어진 삶이 모두에게 만족될 수는 없을 것이다. ‘삶은 고행이다. 우리는 자갈밭에 던져진 존재다. 인생에서 꽃길만 걸을 수는 없다’등. 내가 들은 삶에 대한 인식들은 낙관적이지 않았다. ‘왜 이렇게 나는 힘든 거죠? 삶은 원래 힘든거야’라고 말씀하시는 인생 선배들의 말들이 가슴에 와 닿은지가 얼마 되지 않는다. 세상이 힘든 이유를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멋진 신세계』에서 총통이 설계한 시스템은 그럴듯하게 보이기도 한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결정되고, 그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며 부정적 감정은 약을 통해 통제할 수 있다. 자유로운 성관계를 통한 쾌락과 미리 차단된 질병과 노화까지 인간이 두려워하고 불편해하는 모든 것이 예방된 삶이라면 한번 살아보고 싶은 유토피아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인류를 위해 설계된 문명 세계가 멋진 신세계나 유토피아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 그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 보면 완벽하게 유토피아를 설계한 것처럼 보이지만, 읽는 내내 그 틈이 발견된다. 그 틈을 보여 주는 인물은 존으로서, 존이 야만인 세계와 문명 세계를 동시에 경험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근원적인 본능과 사회적 문제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인간 문명의 시작과 동시에 지금까지 끊임없이 돌고 도는 수 많은 문제들에 대한 답이 일련의 시스템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신세계가 결코 유토피아로 보이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 과학발전은 해로운 것인가?
 작가 헉슬리는 과학발전으로 인한 미래 문명의 신세계와 퇴보된 현대 문명의 구세계를 대비시키면서 인간의 존엄성이나 실존적 윤리를 무시한 과학발전에 대한 비판을 강렬하게 보여 준다. 실제로 과학은 인간의 삶을 편안하고 안정되게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발전했지만, 현재 과학발전의 모습은 맹목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는 과학발전이 ‘산에서 굴러떨어지는 바위와도 같다.’라고 표현했다. 이 말은 과학의 발전을 현재 우리는 막지 못할 뿐 아니라 그 끝을 볼 때까지 손을 쓸 수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렇다. 과학은 현재 자본주의와 손잡고 거침없는 행보를 하고 있다. 게다가 그 어떤 수단을 이용해서 현 상황에 대한 비판을 가하더라도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헉슬리의 작품이나 작가의 사상을 살펴보면 무조건적인 비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과학과 인류의 가치가 공존할 수 있는 모색의 길을 찾고자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는 것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인류의 생존 가능성에 대한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도 같은 맥락으로 보여진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과학 문명의 혜택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어느 정도 내려놓고, 맹목적인 과학발전에 대해서 한걸음 물러난 자세로 지켜보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인류 존재의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도록, 우리가 세상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감시하면서 비판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 판단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이 작품을 꼭 읽어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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