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것도 요즘의 청소년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힘들다. 전세계를 연결하는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청소년들은 과거의 기성세대와는 분명 다르다. 감정에 솔직하고, 표현에 과감한 청소년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는 ‘내가 어렸을 때는’식의 경험담을 늘어놓곤 하지만 청소년들 역시 그들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 세대, 두 세대는 아직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어느 상황이든 기성세대는 청소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것이 잘못됐다’ ‘저것이 잘못됐다’. 기성세대의 부모세대 또한 현 기성세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과연 문제는 청소년인가.
청소년에 관한 문제는 어느 시기 어느 곳에서건 빠질 수 없는 우리의 과제이다. 과거부터 청소년문제는 사회문제로 등장해 왔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풀리지 않는 숙제로 기성세대가 안을 수밖에 없는 ‘힘들지만’ 해결해야할 문제이다.
갈곳없는 청소년
18살 혜민이(가명·A여고 2년)는 학교에 가기 전 가벼운 화장을 잊지 않는다. 화장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예쁘게 보이기 위해, 그리고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심 때문이다. 혜민이는 그나마 약하게 화장을 하지만, 심한 경우에는 눈썹을 그리고 파우더를 진하게 바르는 경우도 있다. 남학생의 경우도 화장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학교에 가지 않는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는 혜민의 화장도 진해진다. 대천해수욕장이나 무창포해수욕장이 혜민의 목적지이다. 그곳에서 혜민은 비슷한 또래의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 어떤 때는 놀러온 대학생들과 자리를 함께 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채팅으로 만난 친구를 직접 보기 위해 다른 도시로 원정을 가기도 한다. 서울, 부산, 대천, 천안 등 웬만한 곳은 다 가 봤다는 것이 혜민이의 설명이다.
혜민이가 방과후 혹은 학교에 가지 않는 날 자주 찾는 곳은 전자오락실, 노래방, PC방 등이다. 학교가 끝나고 오는 길이면 습관처럼 전자오락실에 들려 게임을 한다. 요즘 인기있는 게임은 펌프와 음악게임. 게임방안에 있는 노래방도 거르지 않는 곳이다. 일반 노래방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비슷한 나이의 청소년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노래 부르는 것은 필수 코스이다.
부모님이 안계시는 저녁시간. 혜민이에게는 친구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교복을 벗고 화장을 진하게 하면 웬만하면 성인과 구분하기 힘들다. 이점을 이용해 슈퍼에서 술을 구입한다. 술을 마시는 곳은 동네에 있는 작은 공원. 용돈이 적은 혜민은 그렇게 나마 술을 마셔야 한다. 조금 넉넉한 친구들은 과감하게 호프집 등을 찾기도 한다.
혜민이는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대학에 갈 마음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남들이 말하는 심각한 문제아도 아니다. 혜민은 단지 청소년인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이곳 보령을 싶다는 생각은 간절하다.
이같은 생각은 비단 혜민이 뿐만 아니다. 과연 산자수명의 만세보령에서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보령시 청소년 2만9천5백여명
98년도 현재 보령시의 전체인구는 12만 1765명에 달하고 있고 그 중 청소년으로 분류되는 9세부터 19세까지 남·녀는 2만2804명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청소년기를 갓 지난 20세부터 24세까지의 젊은이를 합하면 전체 보령시 인구의 27.8%인 3만5천여명이 청소년이다. 이는 98년 당시 충남도내 각 시의 청소년 평균 비율보다 약 1.2%가량 높은 수치이다. 또 군지역과 비교해서도 역시 1.43%가량 높게 나타나고 있다.
보령시 2000년 12월 31일 기준의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보령시의 청소년 인구는 2만9580명에 이르고 있다. 98년에 비해 줄기는 했지만 보령시 인구가 11만8천여명으로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높은 비율을 점하고 있다.
이같이 타 지역보다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보령시의 청소년들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
문화시설은 어디에
1998년 충청남도 통계연보에 따르면 보령시에는 일반공연장, 소공연장, 청소년영화관 등의 시설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시시설 또한 전무한 상태이고, 지역문화 복지시설은 복지회관 1곳뿐이다. 문화원을 비롯한 문화보급전수시설도 대천문화원 한곳으로 기록되고 있다.(표1)
충청남도 전체 시·군의 현황을 살펴보더라도 보령시가 전체적인 문화시설에서 4곳으로 청양군과 함께 문화시설이 가장 빈약한 지역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근 지역의 문화시설 현황을 살펴보면 홍성군은 공연시설 2곳, 지역문화복지시설 3곳, 문화보급전수시설과 도서관이 각각 1곳씩 모두 7곳의 문화시설을 보유하고 있고, 서천군의 경우에도 모두 6곳의 문화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문화시설이 청소년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지만 그것마저도 부족한 관광과 문화의 도시 보령에서 청소년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가장 청소년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는 보령시 청소년 수련관은 체육관, 공연장, 생활관 등을 갖추고 연중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운용하고 있으나 정작 청소년들이 이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시내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학교나 단체에서 이용할 때 외에는 청소년이 개인적으로 활용하기에는 부담이 되는 곳이다.
보령시에는 청소년이 이용할 수 있는 문화시설이 충남도의 타 지역에 비해서도 상당히 낮음과 동시에 그나마 있는 청소년 시설마저 접근성이 힘들어 청소년들의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시설부재…탈선으로 이어져
보령시 청소년상담실은 지난해 모두 2,438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상담활동을 펼쳤다. 그중 집단상담과 심리검사를 제외하고 개인상담과 전화상담을 통해 372명의 청소년을 상담했다. 상담원과 직접 얼굴을 맞대지 않아도 되는 전화상담의 경우, 전체 99건의 상담중 절반이 넘는 50건이 성문제와 관련한 내용이었다. 상담원과 마주보고 얘기를 하게되는 개인상담의 경우에는 중독비행에 관한 내용이 가장 많은 77건을 차지하고 있다. 청소년상담실의 한 관계자는 이러한 내용에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어디를 돌아봐도 갈 곳이 없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의 음성적인 만남과 행동은 피할 수 없다는 것. 이에 따라 성문제와 중독비행문제가 가장 큰 문제로 등장하게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청소년 문화시설이 없다는 것은 청소년 문제 발생의 한 원인이 될 수 있다. 학교수업을 마친 청소년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른들의 생각처럼 차분히 책상앞에 앉아서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거나, 다음날 수업을 준비하는 우리의 청소년은 과연 몇이나 될까.
청소년은 그들만의 공간에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한다. 기성세대가 원하든 원치않든 그것은 청소년들의 선택일 뿐이다. 적어도 청소년의 생각과 기성세대와의 생각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청소년의 입장에서 청소년문제를 바라보려는 기성세대의 노력은 아직까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디지털청소년을 아날로그 기성세대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는 삶의 내용 좌우
백과사전적 의미로 살펴보면 청소년기는 연령적으로 10대가 중심이다. 이 시기는 아동에서 성인기에 이르는 과도기이며, 인간형성의 측면과, 생활향수(享受)의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
청소년기는 신체적, 정서적, 도덕적, 사회적 발달에 있어서 개체적, 사회적 조건의 영향을 받기 쉬우며,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 그리고 그러한 조건 여하에 따라서 인간형성이 비뚤어지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 청소년기는 또 청소년 나름대로의 욕구충족의 활동이 있다. 이 역시 개체적·사회적 조건에 따라 가지각색이며, 조건에 따라서는 욕구불만으로 이어질 수도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삶의 질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보통 그의 문화수준을 잣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 만큼 각 개인이 누리는 문화는 삶의 내용을 좌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청소년들에게도 이 논리는 적용돼야 한다. 이는 보령의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청소년을 위해 기성세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청소년들이 갈 수 있는 곳을 청소년의 입장에서 마련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이다. 청소년을 위한 공간 마련은 청소년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김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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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4.24 수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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