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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김형석 지음 <백년을 살아보니>
책 익는 마을 원진호
2019년 12월 23일 (월) 10:56:14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어떤 대화
 30대 초반의 청년. 공대를 나와 건축설계 분야의 회사에 다녔다. 밤낮으로 일하고 월급은 많았으나 내 생활이 없어 그만두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민원파트에 배치되었다. 생각보다 야근이 많고 월급이 적었다. 곧 그만 두었다. 어느날 그가 나에게 물었다.
“아저씨, 제가 법리를 따져 사람을 잘 설득하는 일을 잘 할 수 있을까요?”
“못할게 뭐있어? 능력 출중인 네가”
“변리사 시험 준비하기에는 너무 늦었죠. 한 5년만 젊었어도”
“인생 황금기를 60에서 75세로 보는 분도 있어. 인간의 뇌는 가소성이 있어 죽을 때 까지 공부하는 능력이 있지. 그가 말했어,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공부하는 사람, 취미 생활 열심히 하는 사람, 그리고 봉사하는 사람이라고. 살아보니 인생에 대한 평가는 80세에 이뤄지니 그때까지 뭘 해도 젊은 거지. ”
 그와 대화를 이어가다보니 공무원을 그만 둔 실제 이유를 알았다.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법이 전혀 안 된다고 하는데도 마구 우겨대는 민원인들 때문이었다. 가슴에 화상 2도 이상을 받았으니 변리에 대한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공부도 하기 전에 말이다. 내가 좀 더 나아갔다.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이었대. 내 일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뭔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인생이라면 행복하지 않을까? 네게 변리사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당근 도전해야지. 100세 노철학자가 그랬어. 인간은 운명과 허무속에서 갈등하고 헤매며 사는 존재라고. 그럼에도 어떤 섭리 같은 것이 있다는 거지. 그건 고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거야. 그래야 사랑과 행복이 따라오지. 지금도 늦지 않아. 아니 너무 이를 수 있어. 한 번 해 봐. 고생스럽더라도”
“.....”
우리 대화는 이렇게 끝났다.

■ 백년을 살아보니
 이런 말이 유행이었다.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다’는 뜻. 문제는 이 말을 초등학생들이 쓰고 있다는 것. 청년들의 N포세대도 있다. ‘더 이상 포기할 것이 없는 세대’라는 뜻이다.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집마련, 차구입, 희망,꿈, 건강, 외모, 정규직를 포기하는 10포세대가 더 이상 언급할 것이 없는 무한대 포기 세대가 된다는 것이다. 한 때는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이 있었다. 45세에 정년, 56세에 정년은 도둑놈. IMF이후 구조조정과 비정규직의 확산으로 이런 말이 떠돌았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해서 말도 안 꺼낸다. 이런 상황에 정년이 되고 90세 까지 살아야 되는 인생은 어쩔 것인가?
 공자는 인생5단계를, 맹자는 인생삼락을 이야기했다. 서양의 철인과 현인들도 주옥같은 조언을 남겼다. 그럼에도 대체로 나이듦은 진선미는 아니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을 보아도 늙음은 조연과 추함으로 묘사한 것이 많았다. 그래서 늙음의 인생은 ‘기타등등’, 혹은 ‘그리고 이후’로 정리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마땅했다.
 저자는 1920년생이다. 그는 이 책을 97세에 썼다. 이북 실향민 출신으로 두 동생과 여섯 자식을 어렵게 키우면서 살았다. 철학을 전공하고 교육계에 40년을 몸 담고 있으면서 6.25와 4.19,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여정을 함께 했다. 그 과정에 돈과 권력에 휩싸이지 않고 ‘역사의 무거운 짐’을 동시대인들과 함께 짊어지고 살았다. 정년 후 30년 동안 사회교육활동을 하며 살아왔다. 그런 그가 젊은 사람에게 내놓은 메시지가 뭘까?

■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이었다
  그는 이 사실을 깨닫는데 90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아니 그렇게 살았다고 본다. 다만 이렇게 말로 정리했을 뿐. 젊은이는 용기로, 중장년은 신념으로, 노년은 지혜로 살아가는 것. 이 것은 서로 통한다. 서로 엮어있다, 다만 나이듦과 처지에 따라 비중이 다를 뿐. 용기있는 사람이 신념이 있고 지혜로 나아간다. 지혜있는 사람이 용기와 신념을 저버릴까?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소질에 맞게 꾸준히 열린 마음으로 공부하는 거다. 나와 이웃, 나라를 위해.
 책에는 우리 사회를 향한 따금한 조언이 담겨 있다. 흑백논리가 어떻게 부당한건지, 대화와 소통이 단절된 관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어머니와 부인을 먼저 저 세상에 보내고 홀아비가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도.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당위와 의무가 아니라 존재와 관계에 대해 잔잔하게 미소지며 이야기해주는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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