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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강민지 글. 그림 <패션의 탄생>
책 익는 마을 원진호
2019년 12월 09일 (월) 10:40:06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패션
 저자는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이 책은 우리가 한 번쯤은 들어봄직한, 아울렛이나 백화점 명품관을 지나가며 봤음직한 패션의 아이콘들에 대한 역사를 담고 있다. 루이 뷔통, 버버리, 구찌, 샤넬, 크리스찬 디올, 프라다등등. 그들의 살아온 역정과 업적을 들어다 보면서 나의 명품에 대한 시선을 되돌아 보게 되었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갔던 쇼 윈도우의 내부를 들여다 볼 호기심이 생겼다 고나 할까.
 19세기 인물들인 에르메스, 루이뷔통, 토마스 버버리, 구찌, 샤넬등의 인생 역정은 비슷한 면이 있다. 우선 어려운 가정 환경을 딛고 꿈을 키웠고, 타고난 재능과 성실성이 있었고, 후원자의 눈에 든 운도 있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기존의 구습과 관념에 반기를 들었고, 옷의 소재와 스타일에 변화를 꾀했으며, 전쟁과 불황에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위기를 극복해 나갔다. 당시 패션은 귀족 부인의 패션을 따라 하는 정도였는데 이들은 자신만의 패션 아이콘을 만들어 대중의 호응을 받았다. 이들의 작업 방식을 ‘오트 퀴트르’라 부른다. 이들이 세상을 떠나고 후세들이 사업을 이어나갔는데 패션사업은 인수와 합병을 통해 LVMH나 PVH, PRADA 그룹등으로 거대화 되었다.   
 20세기 초에 등장한 지방시, 이브 생 로랑, 프라다, 메리 권트, 라거펠트등은 오트 퀴트르를 벗어나 자신의 매장을 만들어 새로운 감각의 패션을 만들어 갔다. 로랑의 여성 바지, 메리 퀀트의 미니 스커트가 그 예이다. 20세기 중후반에 등장한 고티에, 돌체 앤 가바니, 갈리아노, 톰 포드, 마크 제이콤스, 맥퀸등은 거대기업화된 의류회사의 수석디자이너나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되어 활동을 한다. 이들은 자동차, 건축등 다양한 영역으로 활동을 넓혀 나가며 부를 창출하고 패션의 세계를 확장해 나갔다.
 문제는 이들이 만든 옷들은 하나같이 비싸다는 것. 최고급 옷감을 사용하고, 디자이너의 창의와 피땀이 묻어나는 수제 옷인지라 이해는 된다. 허나 서민들에게 그림의 떡인 이들의 패션도 곧 대중화의 길을 걷는다. 바로 H&M 같은 패스트 패션업체들이 생겨난다. 이들과 일류 디자이너들이 제휴하면서 기성복라인에서도 멋지고 다양한 옷들과 악세서리들이 시장에 나오게 되었다.
 이 책은 사후약방문 같은 것이여서 승자로 우뚝 선 이들의 성공스토리에 집중되어 있다. 허나 이들이라고 실수와 착오, 실패는 없었을까? 염두에 두고 읽을 일이다. 또한 앞으로의 패션과 패션 산업은 어떻게 변할까? 명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영원할 것인지도 궁구하며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일단 책에 소개된 26명의 디자이너 중 가장 압도적인 인상을 심어준 샤넬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 가브리엘 샤넬
 1883년생인 그녀는 12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동생과 함께 고아원에서 컸다. 동생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녀는 18세에 보조 재봉사로 일하면서 밤에는 카바레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꾸려 나갔다. 25세에 발장이라는 부호의 정부가 되어 프랑스 상류 사회를 접하게 된다. 그녀는 스스로 옷을 개조, 수선하고, 모자도 만들어 입고 파티장에 나갔다. 그녀의 옷과 모자는 주위 사람의 인기를 끌었다. 이후 발장의 친구 카펠이라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그의 도움으로 1910년 모자를 파는 ‘샤넬모드’ 부티샵을 열었다. 이후 당시 귀족풍의 화려하고 여성의 몸매를 드러내는 경향에 반기를 들어 기능성과 활동성을 높이는 중저가의 심플한 옷을 만들어 팔았다. 장례식 때나 입는 검은색을 활용한 드레스를 세련되고 고상하게 만들었다. 샤넬은 일중독이면서 또한 수 많은 남성과의 연예를 했다. 그 중 나찌의 프랑스 점령시기 독일 장교와 사귄 것이 화근이 되어 15년간 스위스에서 망명생활을 해야 했다. 그녀가 없는 사이 파리 패션은 크리스챤 디올과 발렌시아가등의 ‘뉴룩’패션이 지배하고 있었다. 뉴룩은 샤넬과 달리 여성의 몸매를 강조하고 있었다. 그녀는 1954년 나이 71세로 파리 패션계에 복귀했다. 그녀의 패션은 미국과 영국,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끈을 달아 어깨에 맬 수 있는 샤넬백을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쳤다. 1971년 87세의 그녀는 패션쇼를 준비하는 어느 날 산책을 마치고 심한 피로를 느낀 채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숨을 거두었는데 그녀가 남긴 말이 이렇다. “이것봐, 이렇게 죽는거야...”
 샤넬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샤넬의 패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샤넬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니라 하나의 스타일이다. 패션은 철 지난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일은 결코 그렇지 않다. 패션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 명품
 평소 옷걸이가 명품이어야지, 걸치는 것만 명품이면 뭐하냐는 것이 내 평소 명품론이다. 그러나 옷이 개인의 사회적 피부이고, 자존감을 내세울 수 있는 수단은 될 수 있겠다. 하여 주어진 비교되어지는 명품에 대한 선호보다 우선 나에게 정녕 필요한 맞는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개념화 해 보면 어떨까? 그리고 그런 것들을 찾아 나선다면? 하여 정말 운 좋게 그에 걸 맞는 나 만의 패셔너블을 찾았다면, 한번쯤은 그 것에 올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그녀는 행운아다. 그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명품에 소망을 품고 오늘 성실히 사는 당신에게 명품을 만들어 내는 장인들의 자세와 태도를 소개하고 싶다. 그들의 정신을 올바로 이해한 상태에서 진심으로 명품을 얻기를 희망한다면 나는 당신의 용기 있는 소비에 박수를 보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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