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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게릴트 휘터 지음 <존엄하게 산다는 것>
책 익는 마을 원진호
2019년 12월 02일 (월) 11:24:26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존엄(尊嚴)
 ‘산다’는 것. 의식주를 해결하고 자손을 번식하고 사랑을 나누고 문화생활을 향유하는 것. 물론 지구에 살고 있는 칠십 억 인구가 다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겠지. 처지와 상황에 따라 열악하고 비참하게 살기도 하고, 누구는 너무 많이 가진 것에 눌려 권태와 우울 속에 지내고 있을거다. 그러나 보통은 나름의 사단칠정을 가지고 살아갈 터. 위선과 위악 속에 자신을 던져 가며, 가끔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건지 고민하며 살 것이다.
 저자는 현대 사회의 물신성, 탐욕과 기만, 전쟁과 환경 파괴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지역과 종교, 사상과 집단적 경험에 따라 해법은 다르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존엄성’있게 삶을 견지하면 되지 않겠냐고 묻는다. 여기서 존엄은 도덕 윤리의 당위성 차원이 아니라, 인간이 문명을 발전시켜 온 나침반으로 뇌신경 세포망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라 말한다. 
 사실 존엄은 <세계인권선언> 제 1조에 나와 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사형수로 살아 갔던 빅터 프랭클(‘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도 이렇게 말했다. “결코 앗아갈 수 없는 정신적인 자유가 마지막 호흡의 순간에까지도 자신의 삶을 더 유의미하게 만들어갈 방법을 찾게 만들었다”. 여기서 그 ‘정신적인 자유’가 존엄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 존엄의 개념을 ‘자연과학적인 시각에서 조명’하고자 한다. 저명한 뇌과학자인 그가 말하는 존엄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 열역학 제 2법칙
 모든 에너지는 엔트로핀(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뇌 신경 활동도 이 법칙에 따른다. 휴식기에도 포도당 에너지원의 20%를 사용하는 뇌는 외부 자극에 끊임없이 반응하며 에너지를 소비한다. 문제는 이 자극이 너무 과하면 폭발한다는 것. 하여 뇌는 외부의 복잡성에 단순성을 부여하여 이 문제를 해결한다. 예를 들어 수영을 배운다 치자. 처음에는 자세를 잡기 위해 온갖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그러나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자동적으로 영법을 구사한다. 이를 뇌 신경의 상위 세포망을 새롭게 형성했다고 한다. 사상과 가치 개념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옳다는 것도 단순성 작업의 결과다.
 사회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외부의 변화에 공동체 누군가 대응하고, 이를 호의적으로 보는 성원들이 따라하면서 집단적 에너지를 쓰게 된다. 그러다 사회 전체 성원의 행동 원리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자연적으로 그 사회가 당연히 따르게 되는 이념과 제도, 윤리가 된다. 
 문제는 현대 사회가 이 원리에 따르지 않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우리 인간 두뇌의 처리 능력을 넘어선 정보를 폭식하고 있고’, ‘개인의 의도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있다. 사람들이 ‘특정 시스템에 속한 대상, 지배의 대상이 되어 자신의 존엄을 무너뜨리고’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간의 뇌는 ‘에너지를 최소화하고 최적화하도록 사용’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현대인이 모르고 있을까? 아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편안함에, 안일한 대처와 단기적인 대책으로 큰 흐름을 놓치고 있을 뿐이다.   

■ 뇌의 가소성과 개방성
 인간의 뇌는 태어나면서 형성된 신경망이 없다. 망아지처럼 태어나자마자 일어서고 걷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생아는 누군가에게 배우고 시범을 보고 스스로 연습하고 익숙해지면서 생존하기 시작한다. 이 특징은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이 것이 뇌의 가소성이다. 개방성은 특별한 재능이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외부의 자극에 끊임없이 반응하면서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실수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끊임없이 배운다. 외부의 자극에 둔하다는 것은 자신에게 뭔가 믿을만 한 것이 있다는 것인데 인간은 신체, 정신구조상 그렇지 못하다.
 인간 뇌의 가소성과 개방성은 개별적 공동체 안에서 인간을 ‘애정과 보호’를 받으면서, ‘주체성과 자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로 만든다. 이 것이 뇌신경학이 보는 존엄의 정체이다. 인간은 ‘집단 소속감’과 ‘자율성’이 침해받지 않을 때 건강하고 행복하다. 이 것이 일상적으로 해치는 사회는 존엄한 사회가 아니다. 왜? 나의 존엄이 중요하면 남의 존엄도 중요하니까. 이 주장은 사실 매우 익숙하다. 칸트의 정언명령이나, 성경의 황금률, 논어의 서(恕)가 그 것이다. 존엄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으며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인간이 가진 고유한 성질’이다.

■ 현대 사회는
 너무 복잡하고 그로 인해 에너지 소모가 크다. 이렇게 가다간 인류는 파멸하고 말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내 놓은 대책들은 단기적이었고 실패했다. 대부분 전쟁과 기아, 문명의 파괴였기 때문이다. 현재 인간이 내 놓은 대책 중 하나가 화성 이주다. 그러나 탐욕과 이기심으로 무장한 인류가 화성에 간 들 얼마나 오래가겠는가? 중요한 것은 ‘개인과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질서의 원칙을 함께 만드는 것’이다. 그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함을 인식하고 개인의 삶을 그리고 타인의 공존을 만들어 나가도록 우리를 이끄는 것’이다.
 진화론의 선구자인 다윈이 쓴 <종의 기원>에서 적자생존을 끄집어 낸 것은 후대들의 오독이다. 다윈은 오히려 인간의 이타심을 강조했다. ‘이기적 유전자’도 틀린 말이다. 애초 신생아 뇌의 신경세포망은 그려지지 않았다. 이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운명을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주장도 있다. 인류보다 더 진화된 생명체가 지구를 방문한다면 그 생명체는 인간보다 더 이타성이 강한 존재들일 것이라고. 왜? 이기심으로 똘똘뭉친 존재는 진작에 멸종했을 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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