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4 목 12:21
의정비, 시립노인병원
 
> 뉴스 > 교육/문화
     
[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정 희진, 서민 등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민주주의>
책 익는 마을 송 소강
2019년 10월 28일 (월) 10:39:15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나의 삶의 방식
 저자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저자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사실들을 나는 너무 당연시하며 살아오지 않았나하는 불편한 마음이 있다.
 나의 삶에서 어머니, 누이, 아내 등 여성은 아버지, 형, 남편이 가족구성원의 호구지책을 해결하는데 전념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주는 존재였고, 또한, 그들의 성공과 무한경쟁의 사회 활동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조력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공동체 삶의 현장에서, 때론 가정에서 그녀들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녀들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고 하여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 여성들의 목소리 자체가 불편한 것이 아니다. 진짜 불편한 것은 그 여성들의 목소리가, 그 여성들의 아우성이 그 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까 두려운 것이다.
 그런 변화가 두려워 여성들의 아우성을 애써 외면하고 폄하하고 관심 없는 척 하였다. 반대로 남성성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방식-가정보다는 사회생활, 안정보다는 투쟁, 정적인 활동보다는 동적인 활동-을 취하곤 했다. 이러한 것이 나의 삶의 방식이었다.

■ 나의 두 딸
 나에게는 두 명의 딸이 있다. 지금은 초등, 중등 학생이지만 정규 교육과정을 무사히 모두 마치고 사회생활을 위해 지금의 사회 시스템 안으로 첫발을 내딛는다고 생각하면 ‘이건 아니다’이다. 이율배반적인 생각이다.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삼자의 여성은 기존의 생활방식처럼 남성의 발전과 성공을 위해 조력하는 존재여야 하고, 내 자녀는 독립적인 존재로 기존질서에 편승하여 살아가고 있는 남성들과 동등한 관계를 형성하며 차별 없이 사회 생활하기를 바라는 마음. 도둑심보이다.

■ 정치와 종교, 그리고 언론
 나 하나가 사회 구조적으로 야기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1강. 젠더권력은 왜 현실정치로 사소화되는가」, 「4강. 종교화된 정치 정치화된 종교」 등이 나름 대답을 내 놓고 있다.
 정치와 종교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국민들을 조종한다. 여기에 더하는 조직이 있다면 바로 언론이다. 개개 국민들 개인의 행복과 건강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 종교, 언론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노력하는 척도 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행복하고 건강하면 그들의 존재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위의 세 조직은 국민들이 편을 나누어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도록 항상 노력한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끊임없이 갈등 요인을 찾고 그 갈등 원인을 확대, 재생산하여 편 가르기에 열을 올린다.
 내부 갈등 요인을 찾을 수 없을 때에는 과감하게 외부 요인을 끌어들인다. 이러한 놀이에 순진한 국민들은 좌고우면 하지 않고 편 가르기에 편승하고 그 과정 속에서 목소리 크고, 기득권이며 남성이 우위를 점하고 나머지 소수자의 존재는 먼지처럼 흩어진다.

■ 나의 바람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의 바람처럼 두 자녀가 동시대의 남성들과 대등한 대우를 받으며 차별 없이 사회 생활을 하도록 원한다면 나와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책을 보고 학습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습득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개개인의 학습된 지식을 더하여 우리의 성숙한 지혜로 사회구성원 모두가 더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흐름을 바꾸는데 일조하는 것이 책을 보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학습된 지혜들을 두뇌 안에만 간직하지 말고 옳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는 행동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어떨까!
「표현해야 사랑이다」는 책도 있지 않은가. 그동안 나를 불편하게 했던, 우리를 불편하게 했던 소수자, 젠더,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직시해야 할 때이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본능적으로 회피하거나 부정하지 말고 일단은 지금 우리사회에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확하게 학습하고 어떻게 하면 사회구성원이 모두 만족하는-물론, 모두 만족이란 존재하지 않지만-합리적인 해결책을 하나하나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주도적으로 실천하거나 최소한 실천하는데 동조하자.
 지금은 내 자녀의 미래를 위해 참여하는 개인적이고 작은 실천들이지만, 이 실천들이 나와 우리, 그리고 공동체 전체로 확산된다면 불평등과 차별의 거대 담론도 점차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않을까 생각한다.

보령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보령신문(http://www.charm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기사의견쓰기는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본 기사
[박종철 칼럼]인간 말종과 ‘효도계
WTO 개발도상국 지위 도대체 뭐야
"정부는 개도국지위포기 철회하라!"
"농업기술센터로 국화향 맡으러 오세
보령의 가을은 특별하다!
균형발전사업, 실효성 있게 추진하라
청라면 삼다향 복지센터 준공
"영남권·강남3구 3선이상 용퇴하라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전국자원봉사연맹, 보령시에 라면 5
 
우편번호 33436 충남 보령시 신설 3길 11, 1층(동대동, 모스트센터) | Tel: 041)936-0005 | Fax:041)935-1356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연중
Copyright 2009 보령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jong861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