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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칼럼] 조국정국, 그것이 궁금하다
2019년 09월 30일 (월) 11:58:08 박종철 논설주간 webmaster@charmnews.co.kr
   

중국 삼국지(三國志)에 등장하는 조조(曹魏 155-220)는 20세에 낙양 경비 책임자가 됐으며, 한 발 더 나아가 관군 5천명을 이끌고 황건적 토벌에 참가했다. 전쟁에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해 216년 위나라 왕위에 올라 사실상 황제가 됐으며, 조조는 사람을 쓰는데 있어 능력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때문에 장요, 전위, 여포, 하후돈 등의 명장을 곁에 둘 수 있었으며 ‘순옥’이라는 지략가도 얻었다. 조조는 너그럽고 매섭고 꾀가 많은 사람으로 능력을 갖춘 인재를 얻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아끼지 않았다. 촉나라와 한 판 붙었을 때 관우의 무술 실력에 감탄한 조조는 그를 생포해 적토마를 주며 자신의 대업에 동참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관우는 유비를 배신할 수 없다며 풀어줄 것을 요구하자 조조는 자신의 갑옷까지 내어 주었다.

이 같이 조조는 비록 적이라 할지라도 인재를 존중했다. 유비의 지략가인 ‘서서’를 얻기 위해 서서의 어머니를 포로로 잡고 서서를 유인한 후 서서와 만났으나 조조는 그를 곁에 두지 못했다. 이처럼 조조는 인재 발굴에 힘썼으며, 큰일에 앞서 측근들의 의견을 개방적으로 수용하는 정책을 중시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소통의 지도자’인 셈이다.패전을 거듭하면서도 리더로서 자리를 굳건히 지킨 유비는 ‘의리’를 최우선으로 삼았다. 유비를 지도자로 만든 것은 의리였다. 인재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조조와는 달리 유비는 낮은 자세로 ‘덕과 의’를 중시하며 부하를 진실 된 마음으로 대했다. 장비, 조자룡, 관우와 같은 장군과 지략가 제갈공명을 얻은 것도 겸손과 의리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황희’는 청백리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각종 사건에 휘말려 청백리와는 거리가 있다는 주장도 있으나 아직까지 청백리하면 ‘황희’를 떠 올리게 한다. 그가 영의정에 있을 때 사위가 지방관아의 아전을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지만 세종은 황희의 도덕성보다 능력을 더 높게 평가했다.

문 대통령이 조국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한지도 20 여일이 지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검찰의 무자비한 수사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급기야 문 대통령까지 나서 강한 메시지를 내놨지만, 조국에 대한 임명기준을 놓고 여전히 시끄럽다. 문 대통령의 조국 임명 기준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조조’의 눈이었을까, ‘유비’의 눈이었을까. 아니면 ‘세종’이 ‘황희’를 보는 눈이었을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보수찌꺼기들의 주장대로 독선이었을까. 조국정국의 끝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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