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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김인선 글모음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
책 익는 마을 원 진호
2019년 09월 23일 (월) 11:12:48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달팽이의 속도
 저자의 이름이 생소하다. 발문을 쓴 이도 그렇다. 더욱이 나 밖에 써 줄 사람이 없다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더욱이 이문구 이래로 최고의 문장가라고 언급한 대목에선 뭐야 이건 싶었다. 근데 저자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다. 고로 이 책은 유고집이다. 책을 한달음에 훑어 보았다. 55년생으로 지금 살면 65세의 법정 기준 노인이신 이 분, 단군 이래 가장 치사한 사대성 자본주의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쉽게 살 수 없었겠다. 중고등학교 시절 음악과 문학에 심취했고 대학을 나와 여러 잡지사에 근무했으나 ‘인스퍼레이션’이 없다는 이유로 그만 두었다. 뭔 일로 빚을 지고 신용불량자가 되었으며 삼십 후반에 산골 깊숙이 숨어 들었다. 그는 애초에 도시보다 산과 천을 좋아했다. 숲속의 새와 꽃, 집안의 벌레들과 사귀었다. 특히 까마귀와 오리, 개구리를 좋아했다. 박꽃과 과꽃을 좋아했다. 그리고 ‘시들어 말라가는 꽃과 풀을 보며 소멸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글로 표현했다. 발제를 쓴 친구는 그의 문장을 두고 ‘군더더기가 없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표현은 정확하고 기발하며 활기가 차다’라고 말했다. 가히 그럴 만 했다. 이문구식의 만연체와 운율이 있는 문장이 그러했다. 천상 이야기꾼인 것이 글의 몰입도가 높았다. 왜 그는 작가가 되지 못했을까? 해학과 풍자가 섞인 그의 글에는 슬픔이 묻어 있다. 자기연민이 느껴진다. 글로는 천의무봉을 오고갔지만 삶은 오합지졸이었는지 모른다. 그의 인생 속도는 딱 거기까지였는지 모른다. 천의무봉과 오합지졸을 오고간, 아니 그 것들을 섞어논 딱 그 정도. 민달팽이의 속도로 표현되는. 시속 사십팔 미터.

■ 할머니의 향기
 집에 들어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일흔 다섯 땅꼬마 할머니와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춤 잘 추는 왈, 파출부하며 번 오만 원을 손주들 용돈 준다는 왈, 건강이 좋아 보인다는 말에 삼시세끼 된장만 먹는다는 왈. 저자는 ‘천국이라는 게 딴 세상에 따로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하면서 ‘남자는 아이들이 좋고 여자는 할머니가 좋다’는 말을 한다. 격하게 동의. ‘남자는 서른만 넘어가도 대가리가 굳기 시작해서 쉰이 넘어가면 대부분이 쓰레기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예순이 넘어가면 쓰레기가 된다’는 말에 흠짓 놀란다. 그렇다면 나는 쓰레기 냄새가 난다는 것인데. 유년 시절 포근한 할머니의 젖냄새가 느껴진다. 그 냄새로 내 쓰레기 냄새를 지웠으면 얼마나 좋을까.

■ 송운(松韻)
 소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이 운은 ‘모든 운율과 리듬 뿐 아니라 생김새, 빛깔, 주변환경과의 조화’를 모두 포함할 것이다. 운은 소나무만 아니라 모든 삼라만상이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인운(人韻)이라 하고 말을 끊었다. 그 뒤에 남은 여백과 행간에선 이렇게 묻는 것 같다. 당신의 소리는? 당신에게 바람이 불면 어떤 소리가 나시겠는가? 나는 답한다. 비록 내게 쉰냄새가 나더라도 남이 맡지 않기를. 위선은 있어도 위악은 없기를. 소나무 숲에 바람 소리를 듣는다 하며 상상해 보았다. 내 냄새를.

■ 흑염소와 낙엽
 삭풍이 부는 밤, 정류장에서 집까지 오리 길을 걸어 간다. 다리 밑에 염소가 말뚝에 매여 있다. 염소는 그렇게 산다. ‘뜨거운 여름 햇살과 한겨울 모진 삭풍을 받아내는’ 모습을 보고 ‘놈들의 낙천과 놀라운 내구력에 이상한 감동과 비애’를 느낀다. 저자는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린다. 어른들이 사지가 결박된 새끼 흑염소의 배를 칼로 쨀 때. 들렸던 흑염소의 애잔한 비명소리를. 또한 흑염소 농장에서 새끼흑염소가 주인에 의해 다른 곳으로 팔려 갈 때, 울타리에 모여 울어댔던 염소들의 모습을. 어디 이 염소들 뿐이겠는가. ‘개한테 물려 죽은 아홉 살짜리 버려진 아이, 삼성 SDI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남편을 둔 서른 일곱난 여인이 소주 세 병을 먹고 심장마비로 죽은 일-가난과 채무의 중압을 견딜 수 없었으리, 약을 먹고 자살한 서른 일곱난 농사꾼 이야기’들이 ‘무참하게 도살된 새끼흑염소와 울면서 사라진 새끼 흑염소의 모습’과 겹친다. 걷는 저자의 발 밑에 낙엽 밟히는 소리가 들린다. 그 낙엽은 ‘어린 이파리들, 파란 이파리’들이다. ‘세상에는 저렇게 허망하게 떨어진 낙엽이 너무 많다’
 상상이 간다. 그림이 그려진다. 글쓴이의 고단한 어깨와 우울한 발걸음이. 지금은 저승에서 사라진 모든 것들과 같이 어울려 잘 지내시고 계실 줄 믿는다. 로드킬 당한 어린 고라니의 빠져 나온 눈알을 다시 넣어 주고 집으로 데려와 양지 바른 곳에 묻어줄 때부터 알아봤다. 이 사람 이 세상 사람 되긴 글렀다고. 아니나 다를까. 동네 봄은 ‘생강나무와 박새로 시작해서 모란과 뻐꾸기로 완성’되지만 이 분의 봄은 방안에 들어온 ‘땅거미’로 완성된다니.
 직박구리, 고추잠자리와 친하고 싶고, 수선화와 얽힌 여인들과 엮이고 싶다면, 산골 저수지의 물귀신들과 산천 곳곳에 핀 남녀의 엉덩이 꽃을 보고 싶다면 이 책 세상으로 한 번 놀러 오시라. 위로와 위안은 물론, 당신의 삶의 속도도 계산해 볼 수 있을 테니. 아~참! 참고로 나의 속도는 시속 오십이다. 단위는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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