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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히가시노 게이코 지음 <인어가 잠든 집>
책 익는 마을 원 진호
2019년 07월 22일 (월) 11:09:36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줄거리
 아이가 수영장에 빠져 의식을 잃었다. 주치의는 장기기증 의사를 묻고 뇌사 판정 절차를 밟고자 했다. 부모는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아이가 생전에 네잎 크로버를 보고 자신은 지금 충분히 행복하니까 남들도 이 잎을 보고 행복했으면 싶다는 말을 기억해낸다. 부모는 아이의 장기기증에 동의한다. 마지막 아이의 얼굴을 보고 손을 잡는데.. 아이가 움찔 손을 움직이는 느낌을 받는다. 부모는 아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장기기증 동의를 번복하고 뇌사 판정 철차는 취소된다. 부모는 아이의 살아있음과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치료에 임한다. 부모는 아이를 집에서 간호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한다. 브레인 머신 인터페이스 기술이 이를 도왔다. 자동 횡격막 자극 시스템을 시술하여 인공호흡기 없이 호흡을 할 수 있게 했다. 인공신경접속기술을 이용하여 척수에 전기적 자극을 주어 사지 근육을 움직이게 했다. 아이는 비록 의식은 없으나 생체 통합성을 유지하고 의료진의 예상과 달리 안정적인 생체징후를 보였다. 그렇게 3년이 지나간다.
 엄마는 아이가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무의식의 의식이 있다고 믿는다. 7살 때 사고가 난 아이는 이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물론 특수학교이고 가정방문으로 진행되는 수업이다. 선생님들은 아이가 살아 있는 존재로 여기고 수업에 임한다.
 잠자는 듯한 느낌을 줄 뿐, 아이는 외관상 건강해 보인다. 그러나 이 아이는 죽은 걸까? 산 걸까? 엄마와는 달리 가족들은 회의를 갖는다. 엄마와 같이 있을 때는 말조심하면서 아이를 산 자로 대하지만, 실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맞는지 헷갈린다. 엄마는 그런 가족들과 갈등을 빚는다. 특히 아이와 두 살 터울인 아들과 그러했다. 엄마는 초등1학년인 아들의 생일날 아들의 친구들을 부르고 온 가족과 친척을 모이게 했다. 잔치에서 아이를 등장시켜 기계장치를 이용한 움직임을 통해 누나가 살아 있음을 밝히려 했다. 아들은 친구들을 초대하지 않았다. 누나가 죽었다고 친구들이 말했단다. 엄마는 격노한다.
 엄마는 부엌 칼을 들고 아이의 가슴을 겨눈다. 미리 부른 경찰에게 말한다. “만약 내가 이 아이를 죽이면 내가 살인자냐고? 만약 살인자라면 지금 이 아이는 산 존재가 아니냐. 만약 죽은 이라면 살인죄가 아니지 않냐” 이에 아무도 답을 못한다. 가족들은 동의한다. 아이는 살아 있는 거라고.
 시간은 흘러 어느 날 새벽, 엄마는 자다가 어슴프레 눈을 떴다. 옆에 아이가 서 있었다. 엄마 고마워, 지금까지 고마웠어, 그리고 행복했어, 아주 행복했어, 고마워 엄마 정말 고마워. 엄마가 물었다. 가는거니? 아이가 대답했다. 안녕 엄마 잘 지내. 엄마가 대답했다.? 안녕.
 그 이후 아이의 생체징후는 흔들렸다. 상태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했다. 부모는 장기기증 의사를 표하고 뇌사판정 절차에 들어갔다. 아이는 다른 아이의 생명을 구하고 하늘 나라로 갔다.

■ 생각된 두 가지
 뇌사. 현재는 보호자가 장기기증 여부를 결정해야 뇌사절차 판정을 받는다. 결정을 보호자에게 미루는 느낌. 그러나 의지와 결정,그리고 책임이라는 윤리 토대하에선 당연한 절차다. 그러나 뇌사 판정을 하고 보호자에게 장기기증 여부와 치료지속 여부를 묻는 것이 고민과 선택의 윤리에 맞는 것이 아닌지. 이 것이 실재적인 우리 정서에 맞는 과정이 아닌지 싶다. 
 BMI. brain machine interface. 신체 손상이 있는 사람에게 뇌나 척수의 신경과 기계 장치를 연결하여 신체기능을 다시 갖게 하는 기술를 말한다. 즉, ‘눈이 안 보이는 사람에게 사물들을 인식하는 장치를 뇌에 접속하여 잘 걷게 한다’는 경우가 그렇다. 소설에서는 ‘자동 횡격막 자극 시스템’과 ‘인공신경접속기술’이 소개되었다. 물론 실전에 쓰이는 수준은 아니지만 원래 과학기술이 상상의 산물 아니던가. 생명공학의 미래를 옅보게 된다.

■ 애도의 시간   
 인간 관계의 심리학에는 원심력과 구심력이 작용한다. 아이의 죽음에 강력한 구심력이 작용한 사람은 엄마다. 마지막까지 아이를 놓지 못한 이가 엄마다. 다들 아이가 죽은 것이며 소용없는 짓을 한다고 수군거려도 엄마는 아이의 가슴에 칼을 겨누기까지 하면서 아이의 삶을 지킨다. 그리고 아이를 보낸다. 이 기간이 아마도 엄마에겐 아이를 하늘 나라로 보내는 애도의 시간이 이었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시간이 충분히 지나갈 때 까지 기다려 주는 것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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