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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칼릴 지브란의 <어느 광인의 이야기>
책 익는 마을 원 진호
2019년 07월 08일 (월) 10:45:54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지혜로운 임금
 옛날 어느 도시에 권세 있고 지혜로운 임금이 살았다. 시민들은 그의 권세를 두려워했고, 지혜를 사랑했다. 도시의 한 가운데에 맑은 물이 나오는 우물이 있었다. 온 시민이 그 곳에서 물을 길어 마셨다. 어느 날 마녀가 일곱 방울 약물을 타고 말했다. “이 우물 물을 마시면 사람들이 미쳐버릴 것이다.” 다음날 시민들이 이 물을 마시고 미쳐버렸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일을 하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서 수군거렸다. “임금님이 미쳤대요. 쫓아버려야해요” 그날 저녁 임금은 우물물을 떠오게 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마시라하고 자신도 그 물을 마셨다. 그래서 이 도시에 경사가 났다. 임금과 신하들이 제 정신을 차린 것이다.

■ 눈(眼)
 눈이 말했다. “저 멀리 계곡 너머에 푸르스름한 안개에 싸인 산이 보이는 구나” 귀(耳)가 듣더니 “산이 어딨어? 안 들리는데” 손(手)이 말했다. “만져보고 느끼려 해도 허사구나” 코(鼻)가 말했다. “산이 어디 있어? 냄새가 안 나는데” 눈이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다들 눈의 환시 증세에 수군거렸다. “아무래도 눈이 뭔가 잘못된 모양이야”

■ 더 넓은 바다
 내 영혼과 나는 멱을 감으로 넓은 바다로 갔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호적한 곳을 찾으러 다녔다. 한 사람이 ‘자루에서 소금을 조금씩 꺼내어 바다에 뿌리고’있었다. 내 영혼이 말했다. “이 사람은 염세주의자야. 딴 데로 가세.” 조금 더 가자 한 사람이 ‘보석으로 장식된 상자에서 설탕을 꺼내 바다에 뿌리고’있었다. 영혼이 말했다. “이 사람은 낙천주의자야. 우리의 알몸을 봐서는 안 되지” 다른 곳으로 가자 한 사람이 ‘해변에서 죽은 물고기를 주워 조심스레 바다로 다시 넣어주고’있었다. 영혼이 말했다. “이 사람은 박애주의자야. 이 사람 보는데서 목욕 못하지.” 더 나아가자 한 사람이 ‘모래 위에 드리운 자신의 그림자를 따라 금을 긋고’있었다. 파도가 선을 지우고 밀려 갔다. 그는 거기에 또 다시 선을 긋었다. 영혼이 말했다. “이 사람은 신비주의자야. 딴 데로 가자” 계속 걸어가자 한 사람이 ‘물거품을 떠서 석고 그릇에 담고’있었다. 영혼이 말했다. “이상주의자야. 안돼” 계속 걸었다. 한 사람이 “이건 깊은 바다야. 넓고 거대한 바다야”라고 외치고 있었다. 가 봤더니 그는 ‘바다를 등지고 귀에다 조가비를 대어 소리를 듣고’있었다. 영혼이 말했다. “지나가자 이 사람은 현실주의자야.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에 등 돌리고 손에 잡힐 수 있는 것만 갖고 바쁘게 왔다 갔다 하지” 다시 걸었다. 한 사람이 ‘자기 머리를 모래에다 처박고’있었다. 나는 말했다. “됐다. 이 사람은 우리를 보지 못할 테니” 영혼이 말했다. “이 사람이 가장 위험해. 금욕주의자야” 영혼의 얼굴에 깊은 슬픔이 번졌다. 이런 곳에서 자신의 금빛 머리와 하얀 가슴, 그리고 신성한 알몸을 내 보일 수 없다고. 나와 내 영혼은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갔다.

■ 광인(狂人)
 나는 곤하게 잤다. 깨어나 보니 내 가면 일곱 개가 사라졌다. 나는 거리로 나와 내 가면 홈쳐간 도둑놈 나오라고 외쳤다. 사람들은 나를 비웃었다. 그러던 차 한 건물 옥상에 있던 꼬마아이가 소리쳤다. “미친놈이다” 나는 위를 올려다 봤다. 그 순간, 아무것도 덮어쓰지 않은 나의 맨 얼굴에 태양이 입맞춤하지 않는가! 나는 황홀했다. 내 영혼은 태양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올랐다. 나는 내 가면을 훔쳐간 도둑에게 감사했다. 나는 이전보다 자유롭고 편안해졌다. 고독에서 비롯된 자유와 이해받는 것으로부터 벗어난 안심을 느끼게 되었다.

■ 나는
 광인이 아니다. 나는 미친놈이라고 소리친 꼬마아이였고, 약물을 탄 우물물을 마신 시민이었으며, 바닷물에 제멋대로 물장구치며 놀고 자빠져 있는 무슨무슨주의자였다. 나는 눈(眼)의 시선을 나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판단하고 규정해버리는 눈밖의 다른 어떤 존재였다.
 나는 고독을 버림으로 인식하고, 남의 시선을 평판이라 생각하며, 주장을 타협이라 생각했다. 잘하는 것이 미덕이고, 못 하는 것이 민폐라 생각했다. 위선과 위악, 그리고 눈치와 염치는 의미와 합리로 잘 버무려 남들이 모르게 했다. 묵비권도 적당히 행사하고, 말할 수 있을 때 적당히 말하는 능력도 능력이라 생각했다.
 하여 나는 광인이 될 수 없다.  몇 번을 내리 읽는 지브란의 시와 우화가 나를 씁쓸하게 한다. 그래서 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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