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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프레드 사사키.돈 셰어 엮음 <누가 시를 읽는가>
책 익는 마을 원 진호
2019년 06월 18일 (화) 12:05:53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가만히 생각해 보니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시를 쓰는 학생이었다. 야밤에 전등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 덮고 후라쉬 불빛에 의존해 그것이 마치 촛불인 양 생각하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어떤 감정을 끌어 올리려 했다. 그래서 시가 됐나? 음~ 시가 되기는 했다. 자기 연민에 시달리는. 문제는 내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글을 써 놓고, 남에게 나의 내면이 드러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는 것. 우울한 내면과 활기찬 외면의 부조화를 스스로 견디지 못했다. 하여 우울한 내면을 맘 속 저 깊은 바다에 풍덩 던져 버리는 것으로 모순을 해결했다. 가끔 그 것들이 도리질 치며 내 심장을 쳐대기는 했지만 견딜 만 했다. 지금까지는.
 나는 가면을 좋아한다. 본질과 현상이라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실재하는 개념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세상을 편하고 보기 좋게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이다. 그래서 억울하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가지고 이 개념에 얽매여 얼마나 고민을 하고 술을 마셔댔는지. 지금은 안다. 삶에는 가면(페르소나)이 있을 뿐 임을. 점잖은 대학교수가 예비군 군복을 입으면 몸이 삐딱해진다지 않은가. 우리의 존재는 관계에 의해 구성된다. 직장과 가족의 한 사람으로, 친구로, 지나가는 행인의 한 사람이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는 하루 하루를 살아 간다. 그렇게 가면에 익숙해 지며 살아가는데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인물이 나를 슬쩍 보고 지나가더니, 칼릴 지브란의 <어느 광인의 이야기>가 내 뒷머리를 친다.
 시의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보니 일곱 평생 써 온 내 가면 일곱 개가 사라졌다. 거리로 나와 내 가면 훔쳐간 도둑놈 나오라고 외쳤다. 사람들은 비웃거나 무서워서 나를 피해 버린다. 한 꼬마가 나를 보고 “미친 사람이다”라고 소리 질렀다. 나는 그 꼬마를 올려다 보았다. 그러자,

           아무 것도 덮어쓰지 않은 나의 맨얼굴에 
           태양이 입을 맞추는게 아닌가! 그것은 내 생애의
           첫 경험이었고, 내 영혼은 태양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올라
           더 이상 가면 생각은 나지 않았어

 그동안 편하게 생각한 가면은 위선이었다. 가면은 나를 합리화시켰다. 그 것을 자유라고 생각했다. 가면은 결국 하나의 임무와 책임, 권리였음을 이 미친 시인은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

■ 미친 사람-시를 읽는
 미치는 거지. 세상을 틀어 보고 다르게 보는 것이 미치는 거지. 새로움 보다는 진부함으로 가되, 샛길로 가는 거지. 그 길에 시가 안내잡이가 될 거고. 시인은 대개 미친 사람들이더라고. 오죽하면 시 쓰지 말라고 했을까? 굶어 죽는다고. 대규모 지진으로 그야말로 대참사가 일어난 아이티의 조그만 도시인 카르푸에 시인들이 모여 아이티의 현실과 문학을 노래한다. 그 중 한 사람인 가르넬 이노상이 말한다. “여기 우리는 그저 미친 예술가 패거리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티가 어떻게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될지 보고 싶어 하지요” 이를 목격한 제프리 브라운이라는 시인이자 기자는 이 곳에서 시가 일어났다고 표현했다. ‘자기 역사와 자기 삶을, 자기 희망과 기쁨과 분노와 슬픔을 얘기’하면서.

■ 윤동주의 십자가
 25살 연희전문 졸업반 윤동주는 일본 유학을 앞두고 고향 마을에 들렀다. 어느 날 이른 아침 그는 고샅길을 나와 마을 앞길로 걸어 내려간다. 그 때 동산에서 시작되는 햇살이 마을 교회 첨탑 십자가에 걸리는 것을 본다. 누군가를 기다리나. 가던 길 멈추고 서성거리다가 문득 괴로웠지만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한다. 첨탑에서 서서히 내려오는 햇살이 시를 일어나게 한다.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가 조용히 아침부터 미쳐가고 있다. 미치고 싶은 거다. 나도 경건한 미침을 받아들인다. 이 책에 나오는 시를 읽는 오십 사람의 이유도 단 한가지다. 미치는 것. “위대한 건 이성이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노래하는 이가 일상에서 몇이나 되겠는가. 그 시를 읽는 이도 미치고 싶은 거다. 가면을 벗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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