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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
책 익는 마을 원 진호
2019년 06월 03일 (월) 11:48:29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질병의 사회학
 疾(질), 病(병)으로 우리는 患(앓는)者(사람)가 된다. 의사는 의(醫)하는 사람이다. 칼과 창으로 다쳐 신음하는 사람을 술(酒)과 주술(巫)로 치료하는 것이 醫다. 치료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이 내재화되어 있다. 아픈 것은 비정상이고 안 아픈 것은 정상이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드는 것이 치료의 목적이다. 이 개념은 외상과 급성 질환에 잘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만성 소모성 질환이나 완치가 아닌 완해, 불구로 남는 장애 질병에는 적용이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정상성의 범주로 앓고 있는, 회복하고 있는, 장애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배제한다. 그들은 우리가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며, 부정되고 배제되어야 할 삶과 가치로 여긴다. 물론 실제로 우리가 그렇게 위악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 사회의 집단 문화 의식이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 안 아픈 사람이 없다. 우린 태어나서부터 어딘가가 아픈 존재다. 안 아프다는 것은 완벽한 존재임을 의미하는데 그런 사람은 없다. 음주운전을 누구나 반대해도 끊임없이 음주운전을 해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래서 아파봐야 안다지만 아파도 우리 의식에는 정상성의 이념이 확고히 자리 잡아 있어 자신의 아픈 몸을 스스로 부정하기도 하고, 다행히 질병에서 완전히 회복되면 언제 내가 아팠냐는 듯이 행동한다. 시집살이 심했던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어서도 며느리 못 살게 구는 것과 비슷하다. 

(녁:병들어 기대다) 
 저자는 1946년생으로 서른아홉에 바이러스성 심근염에 의한 심장마비를 경험했다. 마흔에 고환암을 진단 받고 약 6개월 동안 세 차례의 항암치료와 두 번의 수술을 받았다. 의료사회학을 전공한 그는 자신의 몸이 직접 겪은 아픔()-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에 대해 이야기 한다. ‘통증 속에 있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자신의 이러한 고난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그리고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주변을 이야기한다. 의료진이 얼마나 질병에만 관심 있고 앓고 있는 환자에 대해 무심한지. 사회가 질병과 앓는 것에 얼마나 낙인을 찍는지. 주변 지인의 애써 외면하는 모습에서 서러운 섭섭함을 느꼈음을. 돌봄의 소진이 얼마나 크고 그들도 관심과 치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무엇보다 대화가 있어야 함을. 또한 일상의 삶이 아픈 몸에도 있어야 함을. 무엇보다 앓고 회복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오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각 자의 덤으로 사는 삶은 각 자의 몫이기도 함을.

■ 아픔의 소통
 저자는 암으로 인한 통증으로 고통 받는 어느 날 밤 계단을 오르다 창가에 비친 나무 한그루의 그림자를 보았다. 서리 낀 창문에 가로등 불빛이 선사한 그 그림자를 보며 아름다움을 느낀다. 맘 속에서 싯구가 흘러 나온다. “나뭇가지 뒤 가로등이, 서리 낀 창 위에, 무늬를 던진다. 유리를 닦지 마라, 사람들이 깨어날라” 저자는 조화를 깨닫는다. 조화란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것이라 할 때, 통증은 그 사람을 고립시키는 것이다. 고립된 아픔은 사회에서 추방됨으로 확대된다. 저자는 풍경의 아름다움을 시로 표현함으로서 아픔을 이전과 다르게 받아들인다. 아픔을 감내할 수 있음을 느꼈다. 그는 말한다. 아픔은 소통되어야 하고, 표현되어야 하고, 대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앓는 사람은 사람 속으로 들어가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수단과 방법은 각 자 몫으로 다양할 수 있다. 글쓰기도 될 수 있고, 친한 벗과 돌봄이와의 대화일 수 있고, 기도일 수 있고, 풍경과 그림과 바람과의 대화 일 수 있다.

■ 의사로 산다는 것.
 책을 읽는 내내 얼굴이 화끈 거렸다. 또한 우리 처지도 알아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어떤 면에서는 저자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라는 반감도 가졌다. 나와 인연을 맺었던 죽어간 분들이 흐릿한 풍경화가 되어 떠오르기도 했다. 또한 내 아픔도 강렬하게 자각하게 되고, 내 가족의 아픔과 죽음도 떠올랐다. 지금 나는 뭐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건강은 상태와 태도의 문제라고 하지만, 너무 긍정적인 태도에만 집중하여 환자분들에게 강요한 것은 아닌지 하는 반성도 들었다.
 무엇보다 환자 분들의 처지를 오감으로 받아들일 훈련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시간이 없다고? 아니다. 열심히 훈련하다 보면 실력은 늘 것이다. 안해서 그렇지. 물론 곡절은 있을 거다. 우리는 잊는 존재고 항상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없으니까. 원심력과 구심력의 조화만 잃지 않으면 된다. 나 또한 지금 아프고, 언젠가 죽을 운명의 환자가 될 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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