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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우리 家庭”, 孝道 관한 斷想
이재우 (전)교수(문학박사/건국대학교 인문대학(전)학장)
2019년 05월 20일 (월) 12:07:31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사람은 가정에서부터 화목하고 단란한 가풍을 배우는 곳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사랑을 쏟아 정성을 다해 교육 시키고 성공하기를 바라며 자녀들은 성장해서 부모의 은혜에 보답한다. 그런데 효도는 무슨 새로운 일이나 엄청난 사실이 아니라 우리들이 일상 생활에서 지켜야 하는 마땅한 일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모님께 효도해야 하며, 불효하면 짐승과 다를것이 없다. 조선 14대 선조 때 朗原君(낭원군)의 詩에서는 어버이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효심이 지극하다.

어버이 날 낳으시고 어질과자 길러 내니
이 두 분 아니시면 내 몸 나서 어질소냐
아마도 지극한 은덕을 못내 갚아 하노라

이렇듯 옛부터 孝는 우리의 미풍양속이며 가화만사성을 이루는 세시풍속이다. 그러므로 孝는 百行(백행)의 根本(근본)이며 자연스러운 감정과 직관적인 판단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지극히 당연한 사상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산업사회로 치닫게 되면서 이간대 인간의 따듯함보다 이간 대 기계의 차가운 관계로 변하여 간다. 유교를 바탕으로 부모를 섬겨 오던 孝는 이제 핵가족으로 분화되면서 새로운 윤리가 필요하다. 즉 조상을 숭배하거나 장유질서를 존중한 인간관계가 인격평등이란 이름 아래 서구적인 횡적인 인간관계로 인하여 가치관이 흐려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변하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하기도 힘들고, 부모는 자녀의 도움을 받기도 버거운 일이다. 부모는 자녀를 온 정성을 다해 모든 것을 다 바쳤지만 자녀들은 효도 하기는 커녕 결혼 후에도 독립해 살면서도 부모에게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부모가 금전적으로 자녀들에게 베풀어야 대접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핵가족이 이루어지면서 가족 연대를 파괴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우리의 전통 예절과 미풍양속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정도의 사회문제로 대두 시켰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국민은 예부터 어질고 착하고 예의 바른 조용한 국가였지만 핵가족이라던가, 이혼가정, 결손가정 등 날로 가정이 흔들리고 가족이 해체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즉 평온한 가정 분위기가 사라지고 차가운 기류가 감도는 가정은 이제 고독한 하숙집으로 전락하여 가고 있다. 흔히 이제는 주택(house)은 많이 있으나 부모와 자녀들과의 따뜻한 애정이 살아있는 가정(home)은 없다고 한다. 즉 가정에는 부모가 없고, 학교에는 선생님이 없으며, 사회에는 존경 받을만한 지도자가 사라졌다고 걱정한다. 이러한 상화에서 청소년들의 孝行이 흔들려 비판적이다. 그들의 탈선이 날로 증가하며 연령도 점차 낮아진다. 그들은 사소한 일에도 예의와 도덕을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하는가 하면 더욱이 부모를 폭행하는 人面獸心자로 전락하기 때문에 그들이야 말로 정상적이 교육이 필요하다. 더욱이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잘못을 지적하여 주의를 주는 교사에게 욕설과 폭력을 가하는 일로 학교가 무너진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부모를 恭敬(공경)하는자는 남도 역시 공경한다고 하는데 자기를 가르치는 스승의 은혜를 보답하기는 커녕 폭력을 가하는 일도 생기니 이런 일로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고 있다.
고려 때와 조선 시대에는 불효를 法으로 엄격하게 처벌했다고 한다. 부모에게 공양을 소홀히 하면 2년의 구금형을, 그리고 부모를 구타하면 목을 베는 참형을, 실수로 구타해도 귀향을 보내는 유형에 처했다. 조선의 大明律(대명률)에서도 비슷한 조항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가정에서는 부모들은 자신들이 자라온 과거에 모든 가치기준을 두고 그것을 내세우며 자녀들은 그들이 처해있는 상황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세계를 대변하므로써 부모와의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이러한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부모는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 “못쓰겠다.”하고 자녀들은 부모 및 기성세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불평하는 일이 허다하다. 급속도로 고령화 사회로 치닫는 현 상황은 효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요구한다. 효는 더 이상 자녀들만의 문제로 보지말고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고 해결할 과제가 되고 있다. 즉 부모 자식간의 의존적 급부적인 관계로만 미를 것이 아니고 사회에서 함께 효를 실천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효라는 덕목이 갖는 당위성을 인정하면서 산업화된 사회에서 그것이 지켜줄 수 있는 문제를 고려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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