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5.22 수 11:12
의정비, 시립노인병원
 
> 뉴스 > 교육/문화
     
[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
책 익는 마을 원진호
2019년 04월 22일 (월) 12:09:53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스테판 에셀
 1917년 생. 2013년 졸. 그는 유대인 출신의 작가이자 번역가인 아버지와 역시 작가이자 화가, 음악애호가인 어머니사이에서 독일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1924년 그의 부모는 프랑스에 정착했다. 1937년 프랑스로 귀화한 그는 39년에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한다. 거기서 선배 ‘장 폴 사르트르’를 만나 참여정신을 배운다. 그 해 전쟁이 났고 드골장군 밑으로 들어가 ‘중앙 정보.행동담당총국’에서 일한다. 그는 1944년 3월 연합군 상륙 작전 성공을 위한 정보를 송출하기 위해 새로운 방송 장소를 물색하는 임무를 띠고 프랑스에 잠입한다. 그 해 7월 10일에 누군가의 밀고로 게슈타포에 붙잡힌 그는 모진 고문을 받고 파리 해방 며칠 전 8월 8일에 독일 부헨발트 수용소로 옮겨진다. 그는 사형 전날 티푸스로 사망한 이와 신분을 바꿔치기 하면서 극적으로 살아 남는다. 이후 세 곳의 수용소를 거친 뒤에 파리로 돌아온다.
 1946년 외무부 채용 시험에 합격한 그는 국제연합 인권위원회에 참여하여 ‘세계인권선언문’작성에 관여한다. 프랑스 외무부는 그를 국제기구의 프랑스 대표부에 근무토록 했다. 정년 후 그는 1995년 우파 자크 시라크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고 사회당에 입당했다. 2008년과 9년에 팔레스타인을 방문했고, 그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증언했다. 그는 알제리 독립 투쟁을 지지했고, 불법체류자와 이민자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했다.
 2009년 ‘1944년 초 나치에 항거해 목숨 받쳐 투쟁한 레지스탕스의 성지’인 글리에르 고원에서 에셀은 투쟁의 낙관성과 분노할 의무에 대해 강조했다. 이 연설을 들은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몽펠리에 사는 출판업자-실비 크로스만과 장 피에르 바루-가 그를 찾아 간다. 그들은 ‘젊은이들은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눴고 이를 토대로 책을 냈다.2010년 10월에 출간된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3,500만부 팔렸다. 한국에서는 2011년 초판을 찍었고, 2018년에 13쇄를 발행했다.

■ 분노하라
 그는 레지스탕스의 동기는 분노였다고 한다. 분노하면 참여 하고,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동참하게 된다. 개인의 이러한 노력이 모여 역사의 강물은 더 큰 정의와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는 것이다. 역사를 보는 관점에서 헤겔의 진보성을 믿었던 그는 무관심이 최악의 태도라고 말한다. 그 중 핵심 주제는 빈부격차와 인권이라고 말한다. 충분히 나눌 것이 많은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빈약한 재정을 핑계로 복지와 분배를 축소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세계인권선언’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반인권적인 행동을 자행하는 나라에 압력을 행사하고, 1948년 이후의 식민지 독립 투쟁에 사상적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그는 2008년 12월에서 다음 해 1월까지 자행된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습 현장을 2009년 찾아간다. 하마스의 로켓 공격은 격분으로 충분 이해 되지만, 그 것으로 희망을 놓칠 수 있다고 본 그는 ‘비폭력 평화 투쟁’을 주장한다. 그는 미래가 ‘비폭력의 시대, 다양한 문화가 서로 화해하는 시대’라고 확신한다. 폭력은 희망에 등을 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여 증오를 너무 쌓이게 해선 안 된다. 넬슨 만델라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메시지를 경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분노와 기쁨
 그는 94년의 삶을 되돌아 보면서 고난도 알고 보면 기쁨이었다고 한다. “이렇게도 다양하고 풍요롭고 힘찬 삶을 살아왔다니! 굉장한 연애도 해보았고! 그러니 난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가!” 그는 이런 마음을 북돋워야 한다고 한다. ‘남에게 베풀고 싶은 마음과 베푸는 기쁨을. 남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책임을 감수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과 정신을 끊임없이 계발해야 하며, 상상력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시를 암송하는 연습을 통해 이를 달성할 수 있다고 한다. 수용소에서 죽음을 앞두고 시를 읊고 명상을 하면서 자신을 달랬다고 한다. 그는 죽음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죽음을 생생히 살아내야 한다고 하는 그는 우리의 죽음이 주변 사람들의 기억속에 시적인 정서로 남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 잘 되어가는 사회
 이 질문에 그는 답한다. “모든 시민에게 생존의 방편이 보장되는 사회. 특정 개인의 이익보다 일반의 이익이 우선되는 사회. 금권에 휘둘리지 않고 부가 정의롭게 분배되는 사회입니다.”  한마디로 자유, 평등, 박애.

■ 평화적 봉기
 하여 그는 젊은이들에게 호소한다. “오로지 대량 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대중 언론 매체에 맞서는 평화적 봉기”를

보령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보령신문(http://www.charm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기사의견쓰기는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본 기사
보령시 인구정책, 실패했다!
[보령신문 창간 30주년 기념사]<
보령신문 창간 30년, 미래 300
[칼럼]언론의 빛과 그늘
폐철로 주변에 문화거리 조성된다
보고, 듣고, 배우러 Go!Go!G
전 세계에 관광보령 알린다
남포면 주민자치센터 준공
"국도에 지역 도로망 반영해야"
[소비자정보]에어컨 사전 구매 및
 
우편번호 33436 충남 보령시 신설 3길 11, 1층(동대동, 모스트센터) | Tel: 041)936-0005 | Fax:041)935-1356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연중
Copyright 2009 보령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jong861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