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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엄기호의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책 익는 마을 원진호
2019년 04월 15일 (월) 11:41:52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사례
 선아씨는 결혼 후 가족이 오순도순 사는 것을 꿈꿔왔다. 그러나 남편은 사업 핑계로 거의 밖으로 돌았다. 외로웠다. 더더구나 남편의 사업실패로 정신적 고통이 더해졌다. 승우씨는 백혈병에 걸렸다.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는지 하나님을 원망했고, 병간호하는 어머니에게 투정을 부렸다. 재희어머니는 평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했다. 나이 칠십이 넘어 몸과 마음이 무너졌다. 가족들의 지지에도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며 말한다.“너넨 모른다”. 덕룡아버지는 교수출신의 지식인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삶이 흔들렸다. 신흥종교에 입문하고 주문을 외는 명상법에 몰입하며 삶의 희망을 얻었다고 한다. 준석은 실연을 당했다. 거의 배반이었다. 사람들은 네 맘 안다하며 몇 마디 위로를 던졌으나 오히려 상처만 더 했다. 집안에서 그는 식물을 길렀다. 말 없는 대상에서 말 없는 위로를 받았단다. 이충연씨는 용산참사의 철거민 대책위 위원장이었다. 사건 후 그는 침묵했다. 오로지 법의 영역에서 발언했다. 정권과 싸웠고 곁과 자신에게 속마음을 털어 놓지 않았다. 태석씨는 대안학교 교사다. 참교육 실현을 위해 무던히 애썼건만 허사인 듯 싶었다. 그는 문제의 본질이 신자유주의 때문이라 생각했다.

■ 고통의 세 측면
 인간은 관계라는 집을 통해 존재한다. 집은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사회적 측면, 다른 하나는 곁, 마지막은 내면의 나, 즉 실존적 측면이다. 삶에서 우리가 가지는 고통은 세 가지 관계의 집이 붕괴되면서 시작된다. 저자는 붕괴된 집들을 새롭게 구축하는 언어는 다 다르다고 한다. 한마디로 정리되는 마법의 단어는 없다고 한다. 이충연의 사회적 언어나 태석의 신자유주의론이나 덕룡아버지의 신흥종교 입문 ‘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고통의 사회적 측면을 인식하고, 동시에 주변과 공감하고, 더구나 실존적 측면을 응시하는 것’이 요구된다. 선아씨는 문제의 본질을 ‘내 탓’으로 돌렸다. 곁에서 온 고통을 내면의 분리로 해결하려 했다. 재희어머니는 내면의 고통을 곁을 괴롭힘으로써 풀었다. 준석씨는 곁에서 온 실연의 상처를 식물로 대체하면서 곁으로 풀었다.

■ 그러나
 고통의 세 가지 측면을 보고 나름 의미를 두며 고통을 고난으로 전환하고, 고통과 피해를 분리하여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며 일상의 삶을 회복했다 하자. 고로 고통은 사라졌는가? 답은 ‘아니다’다. 고통은 남는다. 실존에. 그리고 苦痛은 孤痛이 된다. 고통은 실존을 파괴한다. 우리가 흔히 홧병이라고 하는 것도 알고 보면 그 결과다. 고통에 대한 실존적 태도는 ‘말하고 싶지 않음, 그러나 말하고 싶음’이다. 그럼 어찌할 것인가? 저자는 ‘내가 겪고 있는 고통 자체에 대해서는 말 할 수 없지만 내가 겪고 있음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고통은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우리는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것과 싸울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럼 그 방법은 무엇일까?

■ 대안
 저자는 우선 ‘고통의 곁의 고통을 이야기하기’부터 시작하자고 한다. 재희어머니를 주로 간호하는 재희씨의 고통을 나누며 재희어머니의 고통을 어루만질 수 있다. 또 하나는 대화인데, 산책하며 풍경을 보며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거다. 비슷한, 혹은 서로 다른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풍경에 대해 같은 시선, 다른 생각을 나누다 보면, 자신의 생각을 대상화하여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글쓰기다. 고통의 핵심은 내 안의 나와 관계를 잘 구축하는데 달려있다. 글쓰기가 이 점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정해진 형식과 내용은 없다. 일단 맥락 없이 써도 좋다. 남의 읽기와 해석을 염두에 두지 않으니 이기적인 필체로 써도 된다. 다만 자신이 복기하면 된다. 일주일 전에 쓴 글을 보며 일주일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며 ‘재는 왜 그렇게 생각했지?’라고 묻는 습관만 가지면 된다.

■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최근 어른들 생신에 다녀 왔다. 두 분이 사는 아파트에 장남이 가끔 가며 고스톱을 치나 보다. 그 때만 사이가 좋다고 웃는다. 남편은 청소도 빨래도 내가 다 할테니 잔소리하지 말고 내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고 한다. 부인은 애써 당신을 위해 준비한 반찬을 잘 먹고 소리 지르지 말라고 한다. 그간 얼마나 참고 살았는데 이젠 못 참는다. 말하고, 하고 싶은 것은 눈치 안 보고 하겠다. 그러니 받아 주라. 아무 말 말고. 남편은 그게 이해는 간다. 그러나 당신 변했다. 이상하게. 다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거 같아 가슴이 아프다....등등 대화는 이어졌다. 
 이런 다고 두 분의 일상이 꽃길로 쉽게 변하지는 않을 거다. 나름 지지고 볶고가 반복될 거다. 그러나 이 대화가 벚꽃길이 아름다운 호숫가 풍경을 앞 배경으로 아들, 딸, 사위, 며느리들 사이에서 웃고 떠들며 이루어졌다는 것이 중요하다. 고통은 이렇게 나눌 수 있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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