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금 기자] = “나의 사진 작업은 유년기 체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큰 물이 가면 징검다리 학교 길이 끊겨 멀리 돌아야 했던 맑은 시냇가나, 용촌배기가 무서워 마구 내달았던 파아란 보리밭/-중략-/ 성인이 된 어느 날, 나는 카메라의 파인더 안에서 문득 문명의 힘에 떠밀린 자연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공간에서 상처투성이로 움츠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아직도 이 땅의 어디에선가는 아침밥 짓는 연기가 뒷동산 미루나무 위에서 가로퍼지고 소나기 끝의 무지개 뜨는 파란 언덕이 나를 기다려 줄 것이라는 희망도 함께 일었다/ 비록 그것들이 한 낱 신기루로 끝날지라도 앞으로 이 작업은 계속 될 것이다” (1992년 심재연)<사진1>
“걸핏하면 홀홀히 떠나가는 남편/ 여느 사진작가의 아내처럼 나에게 남겨진 몫이란 카메라 가방에 짓눌린 그의 뒷모습을 담담히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끼니가 변변치 못한 탓일까/ 귀가 때의 그의 모습은 흡사 산귀신의 몰골 그대로여서 나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무엇이 그를 총총 떠나가게 만드는 걸까/ 역마살이 빚어낸 작품, 금수강산!/ 내가 어찌 평탄한 가슴으로 이 한 권의 책과 마주할 수 있겠는가/ 변명처럼 들리던 그의 말들이 생생이 되살아나 밀려오는 순간이다/ 남편은 내일 다시 또 새로운 길을 찾아 황황히 떠나가리라/(아내 강복자)
이는 지금부터 소개하려는 이 사람이 92년 자신의 첫 번째 작품집을 출판하면서 써 내려간 글과 남편의 어려움을 옆에서 지켜본 아내의 글이다.
오늘은 사진 작가 한 명을 소개하려 한다. 바로 보령출신 광고사진 작가 심재연씨(49세) 이다.
심 작가는 서울과 보령을 오가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친다.
그 탓에 광고사진 작가들 사이에서는 물론, 다양하고 특색 있는 사진 작품을 필요로 하는 업계에서 그의 이름은 명성이 높다. 또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내로라하는 신문, 잡지, TV, 인터넷 등 광고에 심 작가의 사진이 사용되고 있다.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광고 사진계의 거목으로 자리하고 있는 심 작가를 고향 마을 한 켠에 손수 지었다는 아담하고 깨끗한 스튜디오에서 만나보았다.
“제가 이렇게 소개될만한 사람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쓱스러운 미소와 첫 마디를 건네며 그가 기자에게 보여준 것은 1936년 조부의 회갑 잔치에 가족들 모두 모여 찍었다는 아주 오래된 흑백사진이었다.
심 작가가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20여년전 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농부였고 목부였다.
“대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을 갔어요.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후 부모님들께서는 대학진학을 원하셨지만, 월등히 좋은 성적도 아니어서 농사를 짓겠다고 내려왔죠. 그 때 부모님께서 서운해하시고, 안타까워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공부에 별반 관심이 없었다는 심 작가.
그는 고교 졸업 후 별로 원치 않는 대학에 진학해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고향으로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으로 73년도에 내려와 농사일을 시작했으며, 군 제대 후 인 78년도부터는 목장을 시작해 10여년을 목부로 생활했다. 그리고 그가 사진 찍기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때가 목부로 생활하던 84년도였다.
“부친께서 군농협에서 일하셨지만, 형제들도 많았고 넉넉한 생활을 기대할 수는 없었어요. 어린 시절 사진 잡지를 선뜻 사서 본다는 것도 무척 어려웠죠. 기억에 남는 것은 고교시절 권 당 5백원하는 사진잡지 라이프지를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사서 봤다는 것과 목부로 일하면서 라이프지 종합본을 사 본 기억이 납니다. 그러니 카메라를 산다는 것이 엄두나 났겠어요. 고교시절 사촌형에게서 빌린 것으로 잠깐 찍어 본 흑백사진이 기억에 남고, 제가 그 때까지 찍어본 사진의 전부입니다. 그러다가 84년도에 35mm 니콘 카메라를 구입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사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던 심 작가.
그랬던 그가, 84년 처음 카메라를 구입했고 그의 마음 속 깊이 잠재돼 있던 사진에 대한 동경이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그는 목부 일을 하면서 사진과 관련된 책을 구입해 체계적인 공부를 시작했으며 어설픈 실력이지만 사진 찍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87년, 10년 동안 계속해 왔던 목장일을 그만 두었다. 그리고 88년 되던 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전국 팔도강산을 뒤지기 시작했다.
“제가 사진을 시작할 때 쯤 목부로서 반복작업에서 오는 권태감도 있었고, 육체적으로도 너무 힘들었죠. 아내에게 3년만 내가 하고 싶은 것 해보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마지못해 허락을 해 주더군요. 하지만 당장 수입이 끊어지니까 막막하기도 한 마음이었을 겁니다. 좋은 풍경사진을 찍기 위해 열흘 동안을 텐트치고 생활하기도 하고 정말 지금 생각하면 아득합니다.”
그의 사진이 소비자들의 눈에 뜨이기 시작한 것은 풍경사진을 찍기 시작한 후 3년여가 지나서 부터란다.
“최저생활자였습니다. 차기름 값에 필름 값이 가장 큰 지출이었고, 차에서 먹고 자고, 개울에서 세수하고 그렇게 생활했어요.”
그러면서 그는 92년 첫 번째 사진집 ‘금수강산’(Landscape of Korea)을 출판하게 된다.<사진2>
‘금수강산’의 표지는 백강 임기석씨가 맡았으며 사진집에는 심 작가의 인생이 녹아든 주옥같은 작품 1백여편이 실려있다.
“풍경사진집을 내고 나니까 ‘이제 뭘 찍지?’라는 회의가 생기더군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한국의 소나무를 테마로 한 것이었습니다. 3년여 소나무에 빠져서 돌아다녔고, 그렇게 10년이 지난 겁니다. 다른 방향을 모색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만 서울 생활을 접고 다시 내려와서 축사가 있던 곳에 스튜디오를 지었어요. 그 때가 97년도입니다.”
스튜디오 사진으로의 방향변화, 그러나 막상 스튜디오 앞에 선 심작가는 어떻게 무슨 사진을 찍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고 그 때 느낌을 전했다.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을 들고 토픽이라는 회사를 찾아갔습니다. 작가들의 작품을 대신 소비자들과 연결해 주는 회사입니다. 그곳의 포토에이젼시 사장에게 제 사진을 보였더니 피식 웃더라구요. 그 동안 제가 찍어왔던 자연, 풍경 사진과 방향을 전환해 시작한 광고사진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때부터 2년여 동안 광고사진 찍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진찍기를 시작한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많은 예술작가들이 그러하듯 큰 수입은 올리지를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심 작가는 말한다.
특히 유난히 욕심이 많은 것일까?
어느 정도 궤도에만 올라서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심 작가의 경우는 더욱이 그러하다.
“광고사진을 시작하면서 첫 해인 99년도에는 13장인가가 팔렸습니다. 그러다가 그 다음 해부터 조금씩 나아지더군요.”
그랬다. 광고사진을 시장에 내놓은 다음 해인 2천년도 심 작가의 작품 50여장이 소비자들에게 선택됐다.
이 후 70장, 113장, 그리고 지난 해인 2003년도 심 작가의 사진은 337장이 팔려나갔다. 또한 올 해에는 6백장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에 더해 플러스 알파라고 말한다. 플러스 알파는 해외판매분이다.
이는 현재 포토에이젼시에 있는 3백여 한국 사진 작가중 단연 으뜸으로서의 입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일본, 태국, 중국 쪽에 사진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올 해 북미쪽과 유럽쪽에 기대를 하고 있고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광고 사진에는 주관이 개입되지 않아야 합니다. 내용을 가장 바탕으로 해야하고, 그 다음이 객관성과 보편성이 있어야 합니다.”
테마가 있는 작품, 아이디어 작품을 요구하는 광고사진 업계에서는 표시나지 않는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이 심 작가의 말이다. 결국 자신과의 피나는 싸움을 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말이다.
“주변 친구들이 저보고 ‘너는 날마다 왜 빈둥거리냐’고 말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저희들은 정말 힘들거든요.”
심 작가는 일주일은 이 곳 보령에서 작업을 한다. 그리고 또 일주일은 서울에 있는 공동작업실에서 작업을 한다.
또한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서울에 가게 되면 충무로를 서성인다고 말한다. 그 곳에서 사람을 만나고 이를 통해 많은 아이템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서울로 유학을 떠났던 심 작가가 농사를 짓겠다고 고향으로 내려오면서 그는 마을 어른들의 영정 사진을 찍어드렸다. 또 가끔은 돼지를 잡아 함께 나누며 정을 나누기도 한단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에 대한 신고식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가슴이 아픈것은 40세가 다 되셔서 저를 낳으신 부모님께서 제가 시골로 다시 내려온다고 할 때 느끼셨던 실망하시는 눈빛입니다. 항상 앞서 생각하시는 분이셨고, 말씀도 많이 해 주셨지만, 지금 생각하면 좀 더 제가 철이 들었을 때 까지 옆에 계셔서 많은 말씀을 해 주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많은 작가들의 수 많은 작품들을 한 사람이 사가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작가보다 사용자인 디자이너가 많고, 따라서 그 작품마다 돋보이는 그 무엇이 없으면 선택되지 못하는 치열한 경쟁이 있다.
어쩌면 너무 상업적이 아니냐?라는 사람들의 비판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비판보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판단해 줘야 하는 것이 요즘을 살아가는 방법이 아니냐는 것이 심 작가의 의견이다.
“일본에서 사가는 작품 판매료가 3개월에 한 번씩 들어와요. 처음 그 것을 받아들었을 때 감회가 남다르더군요.”
평범한 농사꾼이었으며 목부였던 심씨가 사진작가로 변신한 지 20여년.
이 후 방랑자처럼 이 곳 저 곳을 헤매며 대한민국의 금수강산을 카메라 렌즈에 담아 그 아름다움을 알린 사람.
심 작가는 97년 고향에 있는 축사를 개조해 만든 스튜디오를 만들었고, 2002년도 다시 재건축해 아주 특별한 스튜디오를 완성시켰다.
“앞에서 보면 2층, 뒤에서 보면 단층, 스튜디오 바닥에서 보면 뒤편이 평지로 보이죠. 실내에서 사방을 보고 찍어도 작품사진이 나올 수 있도록 했어요.”
‘담재’(다음 고개)라고 이름 지어진 그의 스튜디오.
“역마살이 끼었냐고들 말도 합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작업입니다.”
온통 하얀색으로 꾸며진 심 작가의 스튜디오, 그리고 휑하니 엉거주춤 서있는 조명등.
하지만, 이 곳에서 그 누구도 표현해 낼 수 없는 심 작가만의 독특한 작품이 요술램프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입춘 추위가 한 동안 사람들을 움츠러들게 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침 뚝 떼고 따사로운 봄기운을 무기 삼아 꽁꽁 동여맨 사람들의 옷깃을 풀라 하고 있다.
이런 봄 기운에 심 작가는 어느 새 카메라와 필름을 챙겨들고 길을 나서지는 않을까?
심 작가가 카메라를 처음 구입했을 때 4살 박이 아들의 사진을 첫 작품으로 찍었단다.
그런 아들이 어느 새 성장해 서울대 법대(4년)에 재학중이며,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또 서울대 의류학과와 홍대 화공과에 재학 중인 두 딸을 두고 다복하게 생활하고 있다.
특히 심 작가는 79년 결혼한 아내 강복자씨에게는 항상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라고 전했다.
심재연작가는 이미 고인이 된 심긍섭씨와 권신덕씨의 6남매 중 막내 아들이며 광고사진작가 중 으뜸을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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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4.16 화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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