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6.18 화 16:15
의정비, 시립노인병원
 
> 뉴스 > 교육/문화
     
[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이원태,김탁환의 <대장 김창수>
책 익는 마을 김 은수
2019년 04월 01일 (월) 11:35:19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태초에 감옥이 있었다.’
 소설의 시작은 구약성서 창세기의 첫 문장과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창세기가 지구 생태계의 기원과 인류, 죄, 구원의 시발점을 보여주듯 소설도 같은 구성이다.
 인천 감옥소에서는 사람들의 이름 대신 별명으로 불리어진다. ‘박달’이라 불리는 간수 이영달의 기억을 더듬으며 소설이 전개된다. 공간적 배경이 되는 감옥소는 바다에 접하고 있으나 죄수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곳이다. 사방이 높은 담으로 막혀 있으며 망루에서 간수만이 죄수들과 바다를 볼 수 있다. 공간적 배경은 1876년 개항한 제물포의 감옥소. 시간적 배경은 여기에 413번이 입소하는 1896년 8월 13일부터 탈출하는 1898년 3월 21일까지이다. 

■ 413번
 은 동학의 아기 접주로 해주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척양척왜를 위해 청나라 군사와 합동작전으로 한양으로 진격하고자 했다. 번번이 그가 꿈꾸는 무력행동이 실패하던 중 민비시해 사건이 발생한다. 그는 치하포 객사에서 일본간자(간첩)를 죽였다. 해주 집에서 포박을 받고 인천감옥소로 이감되었다.
 간수들과 간수장, 소장, 일본공사대리 겐조등 죄수들의 권력자들은 413번을 굴복시켜 자신들의 허수아비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413의 복수에 대한 신념과 강한 자존심은 굴복하지 않았다. 불법 체벌과 구타가 계속되고 그의 몸이 쇠약해져 임계점에 이르렀을 때, 사형수 고진사가 “목숨 값도 못하는 망나니”라며 그를 비난한다. 의병에 들어가서 왜군과 싸운 것이 너 뿐 아니라 상당수의 동학도가 있었고, 거대한 역사의 강이 함께 흘러가고 있음을 인식시킨다. 또한 구조적 폭력을 행사하는 두꺼비 역시 ‘절망과 두려움’에 떠는 인간으로 감창수가 받들어야 할 ‘하늘’임을 강조하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 김창수
 의 변화된 인식은 구조적 악과 치졸한 이기심만이 가득한 감옥소에 틈을 벌린다. 자신을 괴롭히던 두꺼비와 그 일당 앞에 무릎을 꿇고 그들의 억울함을 신원한다. 간수장의 호의로 옥내에서 학교를 만들고 죄수들이 자각하도록 돕는다.
 김창수와 두꺼비가 조계에서 외교관들과 교류하자 한양입성에만 몰입해 있던 감옥소장 강형식이 이들을 벌방에 가두어 가혹행위를 벌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조자를 말하지 않는 의연함에 ‘박달’은 김창수에게 마음이 닿는다. 사형집행이 명해지고 김창수는 형장의 밧줄에 목이 걸려지나 어명으로 형이 번복된다.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소장과 겐조의 밀약에 의해 김창수는 선착장 공사에 투입된다. 9명의 죄수가 탈출시도와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하늘’처럼 받들던 동료의 죽음을 보고 김창수는 소장과 담판을 짓는다. 장례절차와 더불어 최소한의 인간다운 처우 요구를 소장이 수락하며 선착장 공사는 마무리된다.?

■ 탈옥
 을 결심한 김창수는 ‘박달’의 도움을 받아 감옥 설계도를 얻고 실행에 옮긴다. 박달은 설계도를 찾던 중 소장과 겐조의 불법계약 내용과 임금 편취사실을 확인한다. 그는 이를 고발함으로 감옥소의 구조적 악을 극복한다.
 김창수는 떠났고 박달은 남았다. 박달은 김창수가 하고자 했던 죄수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일, 공공 작업에 품삯을 챙겨주는 일, 벌방과 구타를 금지하는 것을 실행하였다. 1910년 합방이 발표되자 그는 감옥을 떠나 한 척의 배을 갖고 감병과장 조경신과 함께 강화로 들어간다.
 21살의 아름다운 청년 탈옥수 김창수는 조선 젊은이들에게 독립운동의 롤 모델인 상해 임시정부의 주석 김구다. 주석 김구는 대장 김창수다.  

■ 대장 김창수
 의 언어를 인용한다. “악한 이들을 없앤다고 결코 선한 세상이 오질 않소. 선한 이들을 가르치고 키워내야지만 새 세상이 오는 것이오. 가난하고 억울한 백성이 차고 넘치는 이유는 그들이 세상 이치를 모르기 때문이오. 자신이 왜 가난한지, 왜 천하게 태어나 천하게 살다 천하게 죽어야 하는지. 인간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이오. 제 이름 석 자도 쓸 줄 모르고 왜 당하고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자신이 왜 무식한지도 모르는 백성이 이 땅에 넘치오. 그들이 깨우치지 않는 한 조선엔 희망이 없소.”

보령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보령신문(http://www.charm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기사의견쓰기는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본 기사
오천 오포리는 '폭풍전야'
[박종철 칼럼] 찰렐철학의 추억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보령해저터널, 공사 7년만에 관통
"지역발전은 우리 스스로"
주방 안전지킴이 K급소화기 비치 홍
올 여름은 역시 보령에서!
'놀이터다운 놀이터'를 꿈꾸다
송학초, "나라사랑에 감사합니다!"
공중화장실 몰래카메라 특별점검
 
우편번호 33436 충남 보령시 신설 3길 11, 1층(동대동, 모스트센터) | Tel: 041)936-0005 | Fax:041)935-1356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연중
Copyright 2009 보령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jong861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