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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강상중,우치다 타츠루의 <위험하지 않은 몰락>
책 익는 마을 원 진호
2019년 03월 25일 (월) 11:33:46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맥락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민중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여명의 눈동자’나 ‘토지’,‘태백산맥’같은 대하드라마나 소설을 보면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그 민중 개인은 그 흐름을 잘 알 수 있을까? 지난 주 보령신문에 난 방영순할머니의 글에 인상 깊은 대목이 있었다. 어머니가 울고 계셨고, 조만간에 난리가 나고 많은 사람이 죽는다고 한다. 피난갈 데도 없다. 하여 가족들이 모여 밥 한끼 먹자 한다. 그러나 다음 날 해방이 되어 거리로 나와 만세를 불렀다. 나에게도 경험이 있다. 87년 6월 항쟁 때 대학교 3학년이었다. 6월 10일 아침 우리는 그 날이 평소의 가두시위처럼 될 것이라 생각했다. 50여 명 정도가 몇 분 구호 외치다 도망가고 몇 명 잡히고...그러나 우리가 경찰에 포위된 것이 아니라 우릴 포위한 경찰이 시민들에게 포위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렇듯 역사적 사건은 적어도 민중 개인에게는 사후적으로 해석되고 의미화 된다.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는 상황도 그러하지 않을까? 사건은 우리에게 맥락 없이 다가오고 사후적으로 해석될 뿐이다. IS의 존재, 시리아 내전, 난민과 서구의 브렉시트, 북핵문제, 중앙집중과 지방분권의 문제는 개인이 알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분명 우리 삶에 영향을 준다. 하여 우리가 영향을 주지 못할 망정 앉아서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맥락은 역사적으로
 일본의 대표적인 사회비평가이며 리버럴리스트인 강상중과 우치다 타츠루(이 분들은 1950년생이다.)가 대화를 하고 책을 냈다. 원제는 <세계최종전쟁론>. 2016년에 출간했다. 2018년 12월에 한국에 번역되어 나왔다. 이 책은 '최근에 일어난 세계적인 사건들을 논의하고 기록'한 것이다. 두 분은 오늘의 사건은 '100년, 200년 단위로 문명사적 문맥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해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두 분은 이 책이 독자들에게 '시대를 읽어내는 나침판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한다.
 책을 읽는 내내 이 분들에게 피로가 느껴진다. 자신들이 아무리 그렇게 이야기 했는데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단다. 일본 후쿠시마?핵 발전소 파괴 후 에너지 정책이 바뀔 줄 알았는데 전혀 바뀐 게 없었다. 평화헌법 때문에 우리가 평화와 번영을 누렸음에도 이를 바꾸려 한다. 이는 지난 세기의 과오를 반복하려 하는 것이다. 특히 기존 시스템의 혜택을 받고 있는 중산층이 더 악을 쓰는 것이 문제다. 왜 그렇게 하고 싶을까? 그 것은 바로 권태다. 지루함이다. 사람들은 불행보다 권태를 싫어한다. 그래서 한판 붙고 싶어하는 것은 아닌지?

■ 프랑스의 속
 우치다선생은 불문학을 전공한 프랑스 전문가다. 그는 프랑스에 유독 안으로의 테러가 많은 이유를 설명한다. 근대는 프랑스와 미국이라는 국민국가를 모범으로 세워졌다. 자유와 독립, 그리고 시장경제 원리가 그 토대다. 문제는 서구가 제국화와 식민주의로 나갔다는 것. 그 유산으로 프랑스에 인구의 10%인 5백만명의 이슬람계열이 산다는 것. 이들을 문화적으로 배척, 소외시키면서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 사실 프랑스는 반유대주의 전통이 강한 나라이고 비시정권하의 전범국가이면서 이에 대한 반성은 없다고 한다. 자유와 평등의 표층 프랑스와 반유대주의, 반난민의 심층프랑스가 공존한다. 시리아 공습에 적극적인 것도 식민지 기득권에 대한 집착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원리적인 나라다. 그들의 자유는 이슬람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기독복음주의가 그들의 정체성이다. 미국은 기독교 종교 국가다. 지금의 중동 문제는 원리의 충돌이다. 문제는 미국의 힘이 약화된다는 것. 세계는 여러 문명권으로 충돌되고 분화될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여전히 미국 따라쟁이다. 어찌할 것인가?

■ 원리가 아니라 정도
 원리로 평가하지 말고 정도로 파악하자고. 전쟁을 피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중동에 원폭을 투하해서 저항의 씨를 멸살시키면 된다. 그러나 인간에게 최종전쟁은 없다. 또한 테러로 수십명이 죽는 거와 흡연와 자살로 한 해 수 만명이 죽는 것이 어떻게 다른가? 구조적 죽음도 테러만큼 심각한 거 아니냐? 또한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 장병이?3천명 죽고?미드웨이 해전으로 일본 수병이 3천명 죽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에 죽은 3백만명의 일본인은?군인들은 대부분 병사와 아사, 민간인은 공습으로 죽었다. 하여 어떻게 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까라는 관점을 갖는 것이 전쟁은 안 된다는 원리론 보다 더 합리적일 수 있다. 위험하지 않은 몰락이라는 제목은 여기서 나왔다. 우리는 어찌할 것인가? 언뜻 이는 대한(민족)민국을 택할 것인가? 대한(반도)민국을 택할 것인가의 문제로 다가온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모르겠다. 내 직관이다. 어찌됐든 두 지식인은 전쟁과 파탄은 필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게 우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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