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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채사장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현실편>
책 익는 마을 원 진호
2019년 02월 18일 (월) 12:21:15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사안의 본질
 분배와 성장, 진보와 보수, 정의당과 민주당, 그리고 신한국당, 신자유주의, 분단과 통일, 그리고 미국, 중앙집권과 지방분권, 미디어와 여론, 당위와 현실, 집단과 개인들이 합종연횡하면서 오늘을 산다. 이 책은 이러한 복잡함에 대한 졸가리이다. 대충은 이렇다는 것. 하여 기본을 잡아 보자는 것. 그리고 각 자 주관대로 인식을 심화해 나가자는 것. 이 것이 이 책의 목표다.
 핵심은 이거다. 사안의 본질을 볼 때, ‘그 사안으로 인해서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손해를 입는가’를 보자는 것. 남북한의 대립에서 누가 이득을 볼까? 어차피 전쟁을 안 할 바에야 공존을 해야 하는데. 평화롭게 지내면 안 될까? 그런데 그 옛날 어느 당은 북한에게  선거 기간에 휴전선에서 총 한 방 쏴 달라고 했다. 왜? 그래야 총선에서 이기니까. 적대적 공존이 여기에서 나왔다. 남북한이 적대시 해야 살아 남는 세력이 있다. 그 세력이 누군지 알면 남북한 관계의 본질을 알 수 있다.
 남북대화와 북미 평화 협상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을까? 있다. 우선 일본. 북한의 핵미사일을 핑계로 군사강국으로 발돋음하려는 아베일당에게 한반도 평화 무드는 맨붕에 빠지게 한다. 이러니 애먼 한국 구축함에 들이대며 긴장고조를 유발하고 있는 것 아닌가! 다음은 한국의 수구보수세력. 그 다음은 미국의 군산복합체들. 긴장이 고조되어야- 아니 긴장을 고조시키고 나서- 무기를 팔 수 있다. 그들의 후원을 받는 미국의 정치세력이 평화를 원하지 않을 거다. 그럼에도 북한과 미국이 협상에 나서는 이유가 뭘까? 북한이 실제적인 힘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 힘을 바탕으로 북한은 평화 협상을 끌고 가는 것일 터. 사실 미국과 일본은 북한이 잠재적인 혹은 가상의 위협 집단으로 존재하길 바란다. 그 핑계로 무기를 팔아 먹고, 보통국가화를 모색하고, 나아가 중국을 견제할 수 있으니까.

■ 핵심은 세금
 성장과 분배 논쟁은 이 책에서도 중요한 주제다. 1929년 세계 대공황에 대한 대처법으로 미국은 수정자본주의의 길을 걷고, 러시아는 공산화를 더욱 공고히 했다. 독일은 전체주의로 나아갔다. 나중에 북유럽은 사회민주주의 길로 갔다. 각 자의 역사, 환경의 변수에 따라 자신들의 길을 걸어간 것이다. 핵심은 결국 자본와 노동의 변수에 어느 쪽에 방점을 찍었느냐다. 정치도 어느 경제체제를 선택하냐는 문제다. 자본친화냐, 노동친화냐.  전자면 현실에서는 신자유주의 노선을, 후자는 수정자본주의를 선택하는 거다. 전자는 성장을 강조하고 정당으로 신한국당이 되겠다. 후자는 분배를 강조하고 민주당과 정의당이 속하겠다.
 성장 중심 정책은 세금을 적게 걷고 복지를 줄이는 거다. 분배 중심 정책은 세금을 많이 걷고 복지 혜택을 늘리는 거다. 그렇다면 부자에게 세금을 많이 걷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게 된다. 반발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수 틀리면 외국으로 도망갈 수 있겠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을 거다. 부자들에게도 이 땅은 평생 살아온 터전이니까. 문제는 어떻게 하면 부자들이 기분 안 나쁘게 세금을 내게 하는 가다. 책에서도 길게 이야기를 써 놓았다. 그러나 결론은 내지 않았다.  독자들에게 고민거리로 남겨 놓았다. 어쩌야 하나? 나는 그렇다. 비교하지 말 것. 부러워 하지 말 것.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이에게 존경을 표할 것. 자신의 삶과 일을 사랑할 것. 그리고 나에게 부과된 세금을 기쁜 마음으로 낼 것. 오케이?  

■ 윤리
 책에서는 윤리를 몸통에 붙어 있는 꼬리 처럼 다뤘다. 물론 내 느낌이다. 역사, 경제, 정치가 워낙 묵직하다 보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실은 사회와 윤리가 실제적이다. 개인에게 사회관계가 주는 번잡함, 하루에도 수십 번 가치 판단을 해야 하는 도덕과 윤리적인 딜레마가 그 것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는 것은 정작 역사와 경제, 그리고 정치가 아니라 일상의 삶과 판단들이다. ‘주어와 술어’로 이어지는 명제는 “~이다”라는 사실명제와 “~이어야한다”라는 당위명제로 나뉜다. 우리는 사실명제에도 압도 당하지만 당위명제에 요구당하며 살고 있다. 그에 대한 답은 있다. 칸트의 의무론과 공리주의의 목적론이 그거다.
 무엇이 옳을까? 나는 그렇다. 사이와 경계에서 놀자고. 개인적으로 성찰과 분투, 사회적으로 연대와 소통을 하면서, 어제의 주장을 교정할 수 있는 똘레랑스를 갖자고. 의무도 맞고 목적도 맞다. 물론 둘 다 틀릴 수 있다. 인생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이며 따옴표임을 자각하자. 그래야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 의무론과 목적론은 인생이라는 과정에서 참고서적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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