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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문유석의 <판사유감>
책 익는 마을 원진호
2019년 02월 11일 (월) 12:33:31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유주의자라 말하는 현직 부장 판사가 현장에서 느낀 바를 말한다. ‘법. 사람. 그리고 정의’ 판사는 우아한 직업이 아니다. 죄를 짓고, 대립과 불만에 가득 찬 다양한 남녀노소의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다. 한마디로 3D업이다. 이런 직업에는 창의성과 생기발랄함이 없기 마련이다. 한 건을 간신히 처리하면 비슷한 건이 올라온다. 법전과 판례대로 일을 처리하면 된다. 쌓여가는 업무에 조직에서 받는 눈칫밥을 먹기 시작하면 판사는 ‘법’만 본다. 그게 편하고 롱런의 지름길일 수 있다. 못 먹어도 반은 먹을 수 있는 태도. ‘법’만 보는 것.
 베트남 며느리가 시어머니 밥에 쥐약을 넣어 살인을 의도한 사건이 올라왔다. 판사는 ‘그 녀를 이주여성 인권문제라는 프레임에 갖히지 않으면서 재판 절차에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권리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세운다. 이게 법과 정의다. 그러나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진술을 들으며 ‘진실은 어느 한쪽에 있지 않으며’, ‘현실은 영화와 다름을’깨닫는다. 당사자의 갈등을 풀기 위해 진솔한 대화를 유도했으나 그리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국민참여 재판으로 치러진 이 사건은 살인미수사건임에도 형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되었다. 양로원 봉사활동과 심리치료와 사회적응훈련이 추가 되었다. 
 이 재판에서 판사는 사람을 보았다. 사람의 악한 면만을 보다 보면 나도 악해 진다. 인간을 비열하고 던적거리는 원래 그런 존재라고 치부해 버린다. 그러나 진짜 그럴까? 그 안에 ‘상처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피맺힌 하소연’을 듣다 보면 우리는 ‘측은지심’을 느낀다.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게 사람이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다. 적당히 선 긋고 내 일만 하고 싶다. 판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말한다. 판사는 사람을 본다. 가정을 지켜주고 싶다. 법과 정의의 테두리에서.  

■ 위선과 위악 
 판사가 파산부에 근무할 때 일이다. 우리는 빚을 법적으로 청산해 준다는 것에 반감을 가진다. 돈 준 사람의 돈 떼임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법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놈들도 있을 텐데. 파산을 신청하는 대부분은 원금을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다. 원금보다 커진 이자에 이자를 갚다 도저히 안 되어 개인회생과 파산을 신청했단다. 아버지의 가 없는 묻지마 투자를 뒷감당하다 빚의 늪에 빠진 딸. 고아로 자매가 서로 의지하며 살았는데, 그 놈릐 정 때문에 언니의 사업을 도와 주다가 신용불량자가 된 동생. 어차피 그들은 빚을 못 갚는다. 판사는 묻는다. 그들에게 한 포기 삶의 희망을 남겨 주는 방법이 어떤 건지. 
 판사는 파산 현상의 배후에는 ‘우리나라 특유의 가부장주의, 남성우월주의’라는 괴물이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카드업계의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이 화를 부추겼다고 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의 결말은 카드업계의 엄청난 수익과 신용불량자의 양산이었다. 압축 성장의 한국판 자본주의에 소비를 부추키는 광고와 오렌지족과 재벌이 판치는 드라마을 보는 우리에게 판사가 묻는다. 파산이 단지 개인의 책임인지. 이런 판국에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위선이 그나마 좋은 것인지, 아니면 ‘웃기시네’하며 날 것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위악이 차라리 나은 것인지.

■ 이른바 공부란
 공부 잘 해서 판사된 분들. 대치동 학원에서 전사로 키워진 분들일까? 판사가 본 판사들의 공부는 ‘수업 잘 듣고 책 많이 읽고 자기주도의 학습’이었단다. 결국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고전을 많이 읽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스스로 미쳐 보는 것, 자기 만의 주장과 논증을 만들어 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공부 잘하는 것은 1등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정직과 성실에 기초해 있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삶을 사는 것. 그 최선에 바로 공부의 길이 있다고 본다. ‘시스템이나 문화는 결국 사람이 만들어 간다’는 믿음을 갖고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으로 살아 가는 것. 이 것이 공부다.

■ 놀기와 일하기
 판사는 책의 말미에 놀자고 주장한다. 지금 시대는 의무에 갇힌 법관을 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넓은 세상에서 펄떡펄떡 숨 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법리라는 잣대로 재단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는다. 법관은 ‘더 참고 들을 여유가 있고, 더 긍휼히 여길 줄 알며, 더 부드럽게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을 알며, 동시대인들과 공감할 줄’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TV 도 보고 영화도 보고 월남뽕도 쳐 보는 것이다. 그 것도 재미있게.
 최근 나도 격하게 한번 놀아봤다. 2주 후 돌아온 일터는 그야말로 나에게 너무 소중한 곳이었다. 사람들의 불평을 진지하게 듣고, 눈빛을 서로 교환하고. 이런 에너지가 어디서 왔을까? 바로 놀고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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