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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김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책 익는 마을 원 진호
2018년 12월 28일 (금) 12:18:47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노련함
 장애를 안고 현재를 살아가는데는 노련함이 필요하다. 불편한 몸을 요령있게 움직여 붐비는 지하철에서 우아하게 내리는 것. 또한 “아저씨 다리 어디 갔어요?”라 물을 때 “네가 찾으면 5000원 줄게. 망할 놈의 다리 일주일 내내 찾아도 없네”라고 눙치는 것. 또한 사람들의 눈치 없는 시선에 자신을 둘로 나눠 대처할 것. 하나는 ‘바라 보는 나’ 와 ‘행하는 나’
 그럼에도 문제는 남는다. 바로 내 몸. 작고 추하고 꾸부정하고 한마디로 볼품 없는 내 몸. 낙인 찍힌 내 삶의 정체성은 남는다. 어떻게 대할 것인가?

■ 품격과 존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 헌법 제 10조에 있다. 헌법은 당위다. 현실은 다르다. 우리는 품격의 사회에 있다. 품격은 ‘사람이나 조직, 국가등이 그 지위와 역량에 맞게 갖춰야 할 외적 형식’이다. 그래서 ‘격格’과 ‘의전’을 따진다. 여기에 비주류는 대상화된다. 장애가 그렇다. 장애는 주류의 정상성에 대상화되어 공연의 소품이 된다. 존엄은 없다. 위치 역할만 있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인정은 없다. 주류가 장애의 낙인을 제거해 줄까? 해준들 온정과 배려다.
 존엄은 장애가 있는 실존들에게서 나온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도전적인 질문! 장애아를 가진 부모에게 묻는다. 옛날로 되돌아가 이 아이를 낳는다면 낳겠는가? 어려운 질문이다. 저자도 골형성부전증 장애를 가지고 있다. 장애인의 인권을 보장한다는 것과 내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어찌됐든 정답은 없다.

■ 믿음과 수용
 장애인이 존엄을 갖고 살기 위해선 믿음을 넘어서 장애의 정체성을 수용해야 한다. 먼저 본인들 스스로 그렇게 해야 한다. 장애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수용을 한다는 것은 이런 거다. ‘장애로 태어난 것은 나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몸으로 태어난 것이 추하고 존엄하지 않게 여겨지는 상황에 대해서는 나도 책임을 부담한다. 나에 대한 세상의 손가락질의 원인은 세상의 잘못된 평가와 위계적 질서이지만 그에 맞서 내 존재의 존엄성과 아름다움을 선언할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자신을 긍정하는 것은 ‘정신승리’와 다르다. 남과 비교해서 자의적으로 그래도 내가 낫다는 위안은 기만이다. 장애인들의 삶도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 문화의 하나의 방식’이다.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진지한 삶의 한 방식으로 숙고하는 것이다.  

■ 법의 영역에서
 장애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온전히 받아내고 자신과 사회, 그리고 법과 제도의 틀에서 싸워낸 장애인들의 이야기가 있다. 1960년대 미국의 장애인 운동과 1970년대 일본의 뇌성마비장애인들의 모임인 푸른잔디회 활동, 그리고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장애인 이동권투쟁등이 그 예이다. 장애에 대한 편견의 극복과 사회 시스템의 개선은 온전히 그들의 투쟁에 힘 입은 바가 크다. 
 또한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법리의 변화와 변천에 대해서도 논한다. 사회권과 자유권의 차이, ‘정당한 편의 제공’이라는 것은 장애인의 삶과 이야기성-존엄-을 존중하는 것이 들어있다. 식당 까지 장애인이 이동하는 방법에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방법도 있다. 그들은 묻는다. 왜 그래야 하는데?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달라. 물론 무리한 요구는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의 요구가 무리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 것이 바로 기본권 개념이다. 장애가 있다고 인간다운 삶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 인간이란 무엇인가?
 책을 읽는 내내 고민했다. 책에서는 인간의 존엄은 자율성, 자기 삶을 만들어 내는 저자성authorship, 그로 파생되는 고유성, 독자성과 상호작용성등으로 설명했다. 대체로 동의한다. 여기에 장애, 질병, 나이, 성, 인종, 지역적 차별로 개인에게 낙인을 찍어서는 안 된다. 대체로 동의한다. 문제는 누가 동의하고 주체로 설 것인가이다. 바로 당사자다. 역사는 당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 많은 선각자들과 지지자들의 피눈물을 통해 이뤄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세상 장애를 갖고 있는 분들을  포함하여 모든 비주류들에게 건투를 빈다. 오줌권을 주장하며 목숨을 던진 김순석의 명복을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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