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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SBS(최후의 제국 제작팀). 홍기빈의 <최후의 선택 아로파>
책익는 마을 원 진호
2018년 11월 26일 (월) 10:59:12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호모 에코노미쿠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탐욕적으로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는 의식이 언제부터 있었을까? 불과 300년 전이다. 그 전에는 개인적 재산을 불리는 것은 불온시되었다. 1347년 베네치아에서 시작된 흑사병이 유럽인구의 1/3을 절멸시켰다. 여기에 성직자도 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유럽인들은 기존의 가치 체계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15세기 들어 이탈리아 북부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이윤추구와 물적 탐욕에 대한 긍정이 나타났다. 18세기 초가 되어서는 ‘탐욕이야말로 사회 최고의 미덕이다’라는 명제가 나오기 시작 했다. 맨더빌의 1714년 발표한 저서 <꿀벌의 우화>는 사람들의 인식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토마스 홉스, 라메트리, 소스타인 베블런, 공리주의자 벤담,칼 폴라니, 조셉 타운센드,다윈, 맬서스, 리카르도등을 거쳐 유럽 지성계는 ‘탐욕’이 인간의 본성임을 완성해 나갔다. 물론 이론은 사회경제 구조의 반영이기도 하다. 19세기 말에 산업 사회로 진입하면서 자유방임주의는 그 이론적 토대로 완성 되었다. 1930년대 뉴딜정책으로 상징되는 수정자본주의에 잠시 자리를 내준 이 사조는 1980년대 이후 세계 경제의 기조로 재부상했다. 이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신자유주의다. 그렇다면 현재의 모습은 어떤가? 이 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봉건의 독재는 신분이라면, 자본주의의 독재는 ‘부의 독점’이다. 호모에코노미쿠스는 부의 증대가 인간의 본성이라 했다. 그러나 부의 ‘독점’이 ‘극단적’일 때도 옹호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아니다! 라고 이야기 한다.

■ 넷의 얼굴
 중국의 쭌리: 33세. 7년 전 후베이성을 떠나 상하이로 왔다. 잡지사 미술 편집 일을 한다. 빠듯한 월급에 원룸에서 살고 있으나 고향으로 내려 가고 싶지 않다. 상하이는 상상 이상의 부자가 많고, 스스로의 힘으로 절대 그 부를 가질 수 없다. 그 녀는 ‘부자 맞선 프로그램’에 응시한다. 맞선 파티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부자들에게 어필한다. 그 녀는 이를 자신의 미래를 위해 전쟁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 전쟁의 승리는 누굴까? 바로 돈이다.
 미국의 캐리 모녀: 시애틀의 어느 공원 주차장에 세워 놓은 자동차에서 산다. 아침은 불을 필울 수 있는 캠핑장에서 해결한다. 먹을 거리는 어느 교회의 무료 급식소에서 구한다. 캐리의 딸은 먹기 위해 학교를 간다. 2013년 끼니를 제때 먹지 못하는 미국인이 4천 9백만명(전체 인구의 15%)이다. 반면, 전 세계 5천만 달러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초슈퍼부자중 43%가 미국인이다.
 상각부족의 빅맨 존 이판푸식: 파푸아뉴기니의 800개 공동체 중 하나인 곳. 약 5백 명이 세 마을로 나눠 살고 있다. 이들은 화폐경제와 자원개발을 거부하고 전통적인 생활양식을 고수한다. 이 곳의 지도자 빅맨은 ‘세습과 위계가 아닌 타인을 설득하고 능력과 지혜에 의해 그 지위’가 유지된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 없이 나눠주며, 공동체의 생산물을 호기롭게 나눠주며 생산을 독려한다. 이판푸식은 ‘이웃에 집 없고 가난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마을 전체의 수치’라 여긴다.
 아누타섬의 아로파: 천여개 섬과 인구 55만으로 이루어진 나라 솔로몬제도. 그 중 직경 2.5km정도에서 150명이 아누타 섬에 산다. 이들은 혈연관계 보다 ‘함께 밥을 먹는 관계’를 중요시한다. 그들은 먹고 자고 죽는 것에 모두 함께 한다. 아로파는 하와이의 ‘알로하’처럼 나눔과 연대의 가치를 표방한다. 주민들은 시장교환과 화폐 유통을 거부했다. 이들도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있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한다.

■ 아로파적인 삶
 책은 호모이코노미쿠스와 아로파적인 삶을 대비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또한 초기 사회주의 운동과 서유럽 복지국가의 제도를 고찰하며 산업사회의 아로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나눔과 연대의 가치’가 아로파적인 삶의 핵심이다. 나는 지양과 지향의 개념을 말하고 싶다. 봉건제를 무너 뜨리고 산업 사회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은 ‘탐욕적 존재’로서 인간성이었다. 이는 초기에 긍정적이었을거다. 기업가 정신이 이의 순한 표현이겠다. 그러나 부의 집중과 독점, 그리고 승자독식, 불로소득, 지구적 문제의 환경 파괴등을 가져오는 지금의 신자유주의는 개선해야 한다. 하여, 신자유주의는 지양하고 아로파적인 연대를 지향하면서 우리 시대를 보다 좋게 나아가는 방도를 만들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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