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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은유의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책익는 마을 원 진호
2018년 11월 12일 (월) 10:52:00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문필 하청업 중년 여성 노동자
 저자는 두 아이의 엄마이며, 철학을 공부하고 시의 의미를 쫓는 간서치다. 남편과 시집의 아내이자 며느리로서 가부장제의 굴레를 몸소 겪으면서, 동시에 시와 음악, 술자리를 즐기는 낭만을 갖고 산다. 현재는 스스로 밝혔듯이 ‘문필 하청업 중년 여성 노동자’로 산다. 이 책은 ‘서른 다섯부터 마흔 다섯을 경유하는 한 여자의 투쟁 기록’이다. 저자는 ‘삶은 행복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날들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믿는다. 저자는 ‘싸움하는 사람은 삶을 창조하는 사람이며 말을 생산하는 사람’이라 한다. 그는 말로 싸운다. 여자라는 본분, 존재라는 물음, 사랑이라는 의미, 일이라는 가치에 대하여.

■ 여자라는 존재
 저자는 여자와 여성의 본분과 역할에 들어 있는 가부장제 폭력성을 비판한다. ‘열 번 잘하다가도 어느 순간 남처럼 등 돌리는 남자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서 씻지도 못하고 이틀째 널려 있는 빨래를 걷는데도 꼼작 않고 누워있는 남편. 결혼 전에 아빠를 볼 때면 좀 궁금했다. 힘든 게 왜 안 보일까? 나중에 알고 보니 못 본 척하는 게 아니라 아예 안 보이는 거다. 대대손손 소통 불능의 장애를 겪는 남성들. 그렇게 살아도 삶이 유지됐으므로 타인의 심정을 헤아리는 능력이 퇴화한 것이다. 무심함이 무뚝뚝함, 남자다움으로 미화된데다가 학교나 학원에서 안 가르쳐주니까 관 뚜껑 닫힐 때까지 모른다. 모르고 편하게 살다가 죽는 남자들이 많으니까 그만큼 한평생 고생만 하다가 죽는 여자들도 많다’.
 저자는 시댁 제사를 끝내고 돌아온 밤, 지인들과 만나 도시의 밤을 즐겼다. 비본연적 태도에서 벗어나 '존재의 오롯함'을 즐겼다. 엄마 역할은 ‘생각을 요구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가족은 인격적 관계가 아니다. 단지 ‘엄마, 아빠, 딸, 아들의 역할로 각자 바삐 살’뿐이다. ‘엄마’는 문화적 산물이고, 가부장제의 희생양이다. 본인은 ‘더 이상 엄마들이 아프지 않은 세상을 위해, 나부터 아프지 않고 울지 않는 엄마가 되는 일이 남았다’고 말한다.

■ 존재라는 물음
 저자가 읽고 쓰는 공부를 열심히 하자, 지인이 말했단다. “그 정도 열성이면 대학졸업장 한 번 따지” 상고 출신에, 여자이며, 돈과 빽도 없는 그에게 ‘의미있는 삶’은 무엇일까? 그에게 이러한 비주류 조건이 나쁘지 않을거란다. ‘덕분에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디 있는지 늘 되묻고 깨어 있어야 했으니까’, 사람들은 ‘저마다 나답게 잘 살기 위해’ 열심히 산다. 문제는 ‘묵묵한 살아냄보다 무구한 조작이 우세할수록 삶은 꼬인다는 것. 결국 나는 ‘오해될 것’이고 ‘결국 나는 나를 비켜갈 것’이라는 것’이다. ‘삶은 명사로 고정하는 게 아니라 동사로 구성하는 지난한 과정’임을 명심하자. 그는 소망한다. ‘시처럼 살다가 소설처럼 죽고 싶다’.

■ 사랑이라는 의미 
 여기선 긴 글 인용하자. 아픈이에게 사랑 고백을 들었다던 후배에게 보내는 말이다. ‘우리가 먹는 카페라테 거품처럼 부드럽고 치즈 케이크처럼 촉촉하고 달달한 사랑을 기다리면, 사랑은 영원히 없다. 네가 누군가의 삶을 품고 응원해주는 방법으로 건강한 사랑을 창조해봐. 현실을 회피하고 관념으로 차단하면 기회는 점점 줄어들어. 이혼한 사람, 아픈 사람, 돈 없는 사람을 사랑하면 힘들 거라는 건 어디까지나 생각이고 추측이고 통계야. 현실을 돌파해보면 그 안에 다른 진실이 있을지도 몰라. 니체도 그랬거든. 퇴화는 베푸는 영혼이 없는 곳에서 일어난다고. 모든 사랑은 남는 장사다. 나는 이 명제 열렬히 지지한다’

■ 일이라는 가치
 저자의 공부는 ‘화폐화가 되지 않는 노동이며 활동’이었다. 그래서 ‘언어화도 불가능했다’ 강의에 나가기 위해선 약력이 있어야 했다. 적어도 대학졸, 시간강사 경력같은 거 말이다.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므로.
 사람은 행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라도 배울 게 있으니. 이는 일자무식 동네 아줌마의 주장이기도 하고 니체의 말이기도 하다. 지적만 하고 행하지 않는 것은 늙음의 징조란다. 
 우리는 ‘일-돈 중심의 세계’에서 ‘갑의 횡포와 을의 비애’로 산다. 또한 ‘대부분의 직업이 몸이 축난다는 점에서 단순직이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전문직이다’ 또한 ‘밥을 위한 삶, 가치를 추구하는 삶. 이분법적으로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노동과 삶이 분리된 처지가 사람에게는 폭력적이다. 둘 사이의 경계에서 긴장을 견디는 게 삶의 기예일 것이다’. 저자는 ‘그냥 글 쓰고 싶은 삶’을 살고 싶다. 그 ‘싶은 삶’에도 위에 이야기한 것들이 내포되어 있다. 우리는 결국 ‘이상’을 품고 ‘일상’을 살아 가는 존재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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