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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니콜라스 터프스트라의 <르네상스 뒷골목을 가다>
책익는 마을 원 진호
2018년 10월 29일 (월) 11:09:44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르네상스의 꽃, 피렌체
 다빈치, 미켈란젤로, 단테, 마키아 벨리, 갈리레오, 메디치가문. 두오모성당으로 유명한 도시, 피렌체. 현대화가 울리비에리는 피렌첸의 밝고 맑음을 그렸다. 푸른색의 하늘과 하얀색의 집들. 수녀와 수도사의 하늘거리는 몸짓. 오염되지 않은 아르노강과 열기구들이 수 놓는 창공. 참 행복하다 싶다. 인문이 꽃 피웠던 피렌첸의 인상이 화가의 그림에 가득하다. 그러나 정말 행복했을까? 피렌체의 문화적 융성에 피와 땀은 있었을 것이다. 밝고 맑음의 이면에 무식과 야만, 지배와 차별은 없었을까? 또한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고군 분투는 없었을까?
르네상승의 뒷골목에 무엇이 있었을까?

■ 1554년 12월 피에타(연민)의 집
 16세기 중반 피렌체의 인구는 6만명. 인구 절반은 15살 미만의 젊은이. 메디치가와 교황, 그리고 수도회의 입김이 지배하고, 민족적 공화주의자들의 열정이 일었던 시대. 견직물과 모직물산업이 발달하고, 공적인 유곽이 세워지고 매춘이 성행한 곳. 기아와 전염병이 도시를 휩쓸고 난 후 1554년 겨울에 3백여명의 여인들이 합심해 산업지구와 유곽이 있는 지역 한복판에 구호소 하나가 문을 연다. 바로 그날 52명의 소녀들이 입회했고, 이후 150여명의 소녀들로 채워진다. 그런데 10여년 동안 이 곳에 입회한 소녀들의 반 이상이 죽어 나간다. 사망률 60%는 다른 보호시설에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였다. 무엇이 이 소녀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 저자는 당시의 기록을 토대로 원인을 찾아 나간다.

■ 죽음의 원인
  첫째는 불결한 수용 시설이나 열악한 영양상태. 둘째는 가혹한 노동. 셋째는 낙태와 관련된 처치로 인한 후유증. 입회한 소녀들은 매춘부가 낳은 사생아들이 많았고, 하녀로 나갔다가 주인의 성폭행으로 임신을 한 상태로 되돌아 온 경우가 많았다. 또한 이 집을 운영하는 여성들은 권력과 교회에 손을 빌리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재정이 열악했다. 그러니 살기 위해 노동이 가혹했을 수 밖에. 그렇다 하더라도 높은 사망률을 설명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저자는 마지막으로 이 소녀들이 매독에 걸려 죽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동시대에 이 집과 비슷한 구호소들은 교회나 수도회, 메디치가의 권력의 후원으로 유지되었다. 그 곳은 가진 자들의 외도로 출생한 사생아와 상인과 장인들이 책임지지 못한 ‘잉여의 딸’들이 처녀성을 보존하기 위해 들어왔다. 즉 출신 성분이 어느 정도 확인된 후견인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피에타의 집은 모든 불쌍한 소녀들을 조건 없이 받아들였다. 낙태가 필요하고 매독에 걸린 소녀들의 비율이 높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높은 사망률은 문제가 있다. 혹시 이 집의 운영 주체인 여성들에게 문제의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닌가?

■ 사보나롤라주의 여성들
 사보나롤라라는 중세의 개혁가가 있었다. 공화정을 주장했고, 낙태를 반대하며, 권력자의 부패를 맹렬하게 비판했다.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은 메디치가를 공격했고, 도덕성과 금욕, 가난한 자에 대한 자선을 추구했다. 여기에 참여한 세력중 미망인들이 많았다. 수도사들로 구성된 남자들은 관념적이고 명예와 규범을 중시하고 자선을 하더라도 가난한 자들을 규제하려 했다. 그러나 미망인들은 가난하고 처지가 취약한 소녀들에게 보호의 자리를 마련해주고 그들을 중심에 놓고 헌신적으로 돌봤다. 낙태와 매독에 대한 처치는 당시 의료의 한계로 돌봄의 수준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책임진 것은 아니었다. 생존은 소녀들에게도 임무를 맡겼다. 하녀로 나가기도 하고, 구걸을 하기도 했다. 노동도 했다. 한 침대에서 3-4명이 같이 자야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활은 개방적이었고 주변과 열려 있었다. 문제는 이 여인들이 10년 정도 지나 역사속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수도회와 교회가 권력을 장악하고 이 여인들을 몰아냈다. 그리고 이 집을 수녀회로 만들었다. 더 이상 출신 성분이 의심스런 소녀들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이 집의 사망률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역사는 수사와 수녀들에 의해 쓰여졌고, 초창기 멤버인 여성들의 삶과 당시 소녀들의 언어는 사라져 버렸다.

■ 성의 정치학
  1584년 메디치가의 딸과 만토바가의 아들이 정력 결혼을 하매, 메디치가에서 신랑의 성능력에 의문을 제기했다. 메디치가는 우여곡절 끝에 피에타의 집에 있는 처녀성을 갖는 소녀를 물색해 신랑과 자게 했다. 소녀는 임신을 하면서 신랑의 성능력을 입증했다. 신랑은 이후 승승장구하며 역사에 그 이름을 올렸고, 소녀는 그 이름이 역사속에서 사라졌다.
 처녀치료가 있다. 매독에 걸린 남자가 처녀와 관계를 맺으면 매독이 낫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르네상스시기에 소녀 강간이 만연했다. 매독은 그렇게 후견인이 없고 가난한 어린 소녀들에게 전염되었다. 
 저자는 이들의 죽음은 ‘나이, 젠더,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하층 계급 출신의 소녀라는 취약성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몇 백 명의 여성들이 16세기 중반 투쟁했던 예외적인 연민의 실험을 칭송하는 것을 멈출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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