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과거는 죽은 채 묻어 두라"는 詩가 있다.
그러나, 나는 과거를 잊을 수 없다. 그 과거 속에는 생명과 같은 귀중한 시간들이 잘 못 쓰여졌기 때문이다. 이 흘러간 시간들을 값없이 보낸 것을 깨닫게 된 것은 한국 사람의 평균 수명(壽命)을 알게 되었을 때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70이라고 한다면, 시간으로는 613200시간이다. 그 때 내 나이가 '불혹(不惑)'의 언덕에 닿았으니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고작 262800시간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시간에서도 수면시간인 잠자는 시간을 빼야 한다. 과거에는 누가 시간 좀 있느냐고 물으면 "가진 것은 시간 뿐이라"는 속된 표현을 하기도 했다. 때론 점심이나 먹자고 아침부터 승용차를 몰고 나가 하루의 귀중한 시간을 길바닥에 버리고 다녔다. 이렇게 비생산적인 시간으로 지난 세월을 보낸 것이다.
하지만 내 중년 이후의 남은 시간을 알게 되자 카네기의 말이 떠올랐다.
"Time is Money." 그러나 나에게는 돈이 아니다. "Time is Life."다. 시간은 고 '생명' 그것이다. 시간이 생명과 같이 느껴지자 갑자기 나에게는 할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내 인생은 오로지 나의 것이기에 나만을 위한 시간도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내 인생의 뚜렷한 목표를 세워야 하는 '제2의 후반기 인생 시간표'를 짜 놓았다. 그리고 비생산적인 만남은 단호히 거절하는 삶이 시작되었다. 마치 나무에서 곁가지를 쳐 내리듯이 내 주변도 정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제2의 인생은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위하여 공허한 시간에 끌려 다니기보다는 내 자신을 발견한 시간으로 돌려야 했다. 주말마다 나가던 종교도 내 가슴에 영원히 모시게 되었다. 이렇게 시간을 잘 관리해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다 보니, 시간에는 좀 인색한 여인처럼 되었다.
21세기의 3대 자본은 첫째가 '건강', 두 번째는 '시간', 세 번째가 '지식'이다.
나 자신의 생활을 바로잡기 위해선 두 번째 자본인 시간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지식도 얻을 수 있게 된다. 첫 번째 자본인 건강이야 생을 마치는 날까지 누구나 바라는 소망이 아닌가. 그러나 사람의 연령이 많아질수록 건강도 조금씩 약해지기 마련이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선 밥이나 빵이 필요하듯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한끼의 식사처럼 운동도 꼭 필요하다. 내 인생 시간표 안에는 하루에 30분 정도 걷는 시간이 짜여져 있다.
일기가 좋은 날에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어느 때는 보슬비도 맞아가면서 걷는다. 운동이란 게으름으로 놓치기 때문에 내 자신과의 운동 약속은 주 5회 정도로 철저히 지켜 오고 있다. 이렇게 시간 개념을 깨우치게 되자 시간을 저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지난 시간들이야 흘러간 물과 같아서 돌아오지 않는 불가역(不可逆)의 시간이다. 이제라도 자신만의 남은 시간을 잘 써야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제는 의학이 발달해서 인간의 평균 수명도 2010년경에 가면 80을 넘게 되리라고 한다. 그러나 황혼의 삶이라 할지라도 먹고 자고 배설이나 하는 비생산적인 삶을 살아서야 되겠는가? 살아 있다는 사실은 신비스러운 일이고, 감사할 일이고, 기도할 일이다. 그러나 남의 신세가 되거나, 남의 부담이 되는 삶을 살아서는 행복한 것이 못된다. 인간 수명이 늘어난 만큼 자신과 사회를 위해서 '제2의 인생설계'를 해 놓고 살아간다면 보람된 삶이 될 것이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사회에 봉사하고, 친구들을 만나 대화라도 나누어야 하겠다. 나에게 있어서는 책을 읽고 작품을 써서 세상에 알리다가 내 인생을 마칠 때 그때가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 후회하지 않는 삶이란 돈이나 명예보다는 누군가를 위해서 베푸는 삶이거나 그 무엇인가 뜻 있는 일을 할 때 그 삶이 빛이 날 것이다.
현대 도이취의 소설가이며 시인인 헤르만 헷세(H. Hesse)의 시에 "세상에는 크고 작은 많은 길이 있다. 그러나 모두 지향하는 곳은 같다. 말(馬)로 갈 수도 있고, 차(車)로 갈 수도 있고, 둘이서 갈 수도 있고, 셋이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최후의 길은 자기 혼자서 걸어가야 한다." 인생은 외로운 나그네 길이기에 마지막까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것도 후회하지 않는 걸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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