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無羞惡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라고 옛 성현 맹자는 말했다.

올해 나이 43세, 4년 전 각광을 받으면서 정치권에 영입돼 높은 지지를 받으며 의회에 진출한 변호사 출신 초선의원, 의정평가 우수, 한나라당의 안방같은 서울 강남을이 선거구로 앞날이 창창한 젊은 정치인 오세훈 의원. 지난 6일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전략)정치개혁의 실현을 목표로 삼았던 시대에 오히려 개혁의 상실을 경험했으며,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중략) 먼저 정치현실에 정통하지 못하면서 정치를 바꿔보겠다고 덤벼든 무모함이 부끄럽고, 묵인을 넘어서서 어느새 동화되어간 무감각이 부끄럽고, 미숙한 자기 확신을 진리인 양 착각한 무지함이 부끄럽습니다…(중략)…나아가 정치권 전반에 ‘내 탓이오’ 정서가 만들어지는 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참으로 부끄럽다”라는 그의 참회는 패배와 무력감의 표출이 아니다. 기존 정당에 대해 변화를 촉구하는 절규로 보아야 한다. 현실 정치에 안주하며 기득권 지키기에 혈안이 돼있는 정치권에 대한 참회의 촉구다. 불출마 선언이라기 보다는 ‘참회록’에 가깝다. 그리고 그의 불출마 선언은 ‘아름다운 퇴장’ 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새 정치’는 정치인만의 몫이 아니다. 그런 정치인을 만들어준 국민의 책임도 크다. 정치의식이 변하지 않고 정치풍토가 바뀌지 않으면 제2, 제3의 오세훈이 뭇으로 나와도 아무 소용이 없다. ‘주권이 바로 서야 정치가 바로 선다’는 ‘의식 혁명’이 없이는 우리가 염원하는 정치개혁은 요원하다.

죄를 짓고도 잡혀가지 않는 정치인이 득실거리는 한 정치개혁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뻔뻔스런 국회가 있는 한 정의와 법치의 원리는 실현될 수 없다. 죄진 자를 보호하고 체포동의안 부결로 범죄혐의자를 감싸안은 국회의 추태가 종식되지 않고서는 깨끗한 정치는 기대할 수 없다.

큰 도둑(國害議員)은 안방에서 발뻗고 자고, 작은 도둑은 감방에서 새우잠을 자게 하는 사회의 부조리가 계속되는 한 ‘오세훈의 외침’은 덧없을 뿐이다.

이는 중앙정치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지방정치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연말, 기왕 책정된 예산이니 해를 넘기기 전에 써야겠다고 슬그머니 해외연수를 다녀온 5명의 시의원들에 대해 보도를 했다고 광고비 결재를 뒤로 미루고 있는 보령시의회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

전쟁 같은 4년 동안 자신이 비판해온 정치인들과 닮아갔음을 부끄러워하며 정치판을 떠나는 오세훈 의원에게 아쉬운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는 것은 진흙탕 같은 정치판 속 낯 두꺼운 정치인들 사이에서 모처럼 부끄러움을 아는 정치인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감 있는 사람이 성공하고, 기죽지 않는 사람들만이 살아남는 세상이라지만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 그 부끄러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부끄러움을 알 때만이 후회 없는 용기와 자신감도 갖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