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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레이코프,존슨의 <삶으로서의 은유>
책 익는 마을 원 진호
2018년 07월 31일 (화) 12:10:06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은유(隱喩)
 사람의 표현 중 언어 비중은 얼마나 될까? 표정과 몸짓등 비언어 표현이 90%라니 10%가 언어 표현인 셈이다. 그렇다면 언어는 어떤 방법으로 전달될까? ‘이것은 돌이다’라는 직접 표현 외에 우리의 지식과 느낌, 의지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 전달할까? 방법은 비유다. “너를 사랑하는 내 맘은 대천 바다만큼 넓어~”라고 말하는 우리를 보라. 이는 공기나 물처럼 너무나 상식적이여서 우리가 비유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다. 이 책은 우리의 말과 문장에 들어 있는 비유에 대한 고찰이다. 특히 ‘A는 B와 같다’는 직유가 아니라 ‘A는  B이다’라는 은유에 주목을 한다.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동일시 하는 것’이다. 보조관념은 우리의 체험을 통해 획득된 것들이다. 보조관념을 통해 원관념에 대한 이해의 확장을 이루는 것이다. 이른바 은유적 확장. 이 것이 우리 언어 사용의 본질이다. 저자들은 다양한 은유의 개념체계를 소개한다. ‘사건,활동,정서,생각등을 개체 또는 물질’로 간주하는 존재론적 은유(나는 만세보령이 좋다), ‘한 개념이 다른 개념의 관점에서 구사되는’ 구조적 은유(시간은 돈, 논쟁은 전쟁), ‘상호 관련 속에서 개념들의 전체 체계를 조직하는’ 지향적 은유(위-아래, 안-밖등 공간적 지향성과 관련. 나는 기분이 올라가 있다.)가 대표적이다.
 은유는 자의가 아니라 삶의 직접적 체험에 근거한다. 또한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일관성과 정합성을 갖는다. 내가 느끼는 기분의 좋고 나쁨을 업다운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실제 우리의 물리적 삶에서 위-아래라는 공간 지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논쟁에서 이기다’는 어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실제 논쟁과 전쟁은 같은 맥락의 대결구조를 갖기 때문이다.
 은유는 우리가 사는 시대의 경제,사회적 조건과 문화, 그리고 그 것들이 만들어 내는 활동과 연관이 있다. ‘시간은 돈’, ‘노동은 자원’은유는 시장 경제와 자본의 논리에서 주로 나온다. 사람들이 어떤 은유를 많이 사용하는지를 보면 그 사회의 의식과 문화가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은유는 기본적으로 세상에 대한 이해이며 반영인 동시에 해석과 창조의 힘을 갖는다.         

■ 객관주의와 낭만주의 
 은유 어법을 부정하는 두가지 태도가 있다. 하나는 절대 진리의 신봉자 객관주의. 어법에 있어 은유가 주이고, 인간의 체험에 바탕을 둔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진리는 인간의 경험과 의지와 무관하게 실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객관을 반영하는 어법은 1:1매칭이어야 하기에 은유의 변주와 다양함은 인정할 수 없다. 저자들은 객관주의의 실제와 개념의 대응을 인정한다. 그러나 사물은 우리의 경험을 거친 은유로 굴절되어 표현됨을 논증한다.
 다른 하나는 낭만주의(주관주의). 이들은 진리와 의미는 오로지 개인의 직관과 상상력,느낌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법은 구조적이지 않고 자의적이다. 물리 생활과 사회문화 생활의 맥락을 반영하지 않는다. 그들은 말하는 자의 의미를 상대방이 순수히 다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낭만주의의 자유분방함에 동의하지 않는다. 은유는 체험에서 획득된 보조관념과 구조화되어 있다. 어법은 실제 사용에 있어 어떤 맥락을 통해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 욕과 질병의 은유
 수전 손택의 <질병으로서의 은유>라는 책이 있다. 책에는 에이즈, 결핵등이 불치의 병으로 인지되었을 때, 군사,종교,사회.문화,지리적 은유로 쓰였다고 했다. 대부분 차별과 배제의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다. 에이즈가 천형으로 묘사되는 순간 감염인은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수전은 질병은 치료의 대상일 뿐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삶으로서의 은유>의 실제가 <질병으로서의 은유>라는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욕의 은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광활한 신세계가 아닐까? 이 것들은 너무나 날 것이여서 학자의 손이 아니라 그리스인 조르바같은 시인들에게 논의를 맡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나만 이야기 하고 가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 새끼,저 새끼’는 가을철 추수를 마친 논에 남아 있는 벼의 밑둥을 말한다. 그 것들을 여기 저기를 가리키며 말했겠다. “이 새끼, 저 새끼”.

■ 은유의 혁명성
 “안개가 산 앞에 있다”. 이 문장에는 인간의 시선과 지향적 은유가 개입되어 있다. 이를 관습적 은유라 한다. 세상을 반영하는 은유다. 은유는 또한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갖고 있다. 물론 힘 있는 자의 세상 지배 수단으로도 전락할 수 도 있다. 2016년 겨울 한국 대중들의 광자은 ‘촛불 혁명’으로 불리운다. 촛불은 은유다. 촛불은 현실을 끌고 가는 힘이 되었다. 은유의 힘을 과소 평가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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