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 가면 둘(2)까지 밖에 셀 수 없는 종족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들은 하나, 둘까지는 세는데 그것만 넘어가면 얼마가 됐든 그냥 「많다」고 한다는 것이다.

지난 1년 동안을 숫자가 둘까지 밖에 없는 이 종족처럼 살아온 것같은 느낌이다. 참으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 자칫 천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가슴 졸이며 살아온 한해였다. 정치·경제·사회 등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는 그 복잡한 현상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다는 게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떠오른 단어가 「카오스」(혼돈 混沌)라는 말이었다.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른 정치판의 어지러운 소용돌이 속에서 그 끝을 어찌 예측할 수 있으며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는 경제의 종착점을 짐작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처럼 암흑과 무질서 등으로 상징되는 혼돈도 새로운 질서 창조를 위한 한 과정으로 이해되는 게 카오스 이론이다. 또 우리같은 사람의 눈에는 아무렇게나 진행돼 우연의 연속이고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비쳐도 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깨뜨릴 수 없는 법칙이 있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하다는 게 학자들의 주장이다.

어쨌든 여기서 더 나아갈 경우 그 종착점은 파멸일 수 밖에 없는 이 암흑과 무질서의 혼돈은 이제 끝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지금까지의 혼돈이 괜한 것이 아니며 우리 민족의 새로운 가치와 질서 창조를 위해 예비된 값비싼 시련이라는 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빚내다 굿하니 맏며느리 춤춘다’ 는 격으로 정신 못차린 정치인, 기업인, 졸부, 최면걸린 국민들 모두가 ‘원정출산, 사교육비 과다지출, 비자금, 불법 대선자금’ 등등 일일이 손으로 꼽을 수 조차 없는 부정 부패의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똑똑히 배웠고, 이를 통해 삶의 새로운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 최대의 화두는 ‘정치개혁’과 ‘경제회생’이다.

‘하루가 행복하려면 뉴스를 보지 말라’ 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금 우리의 정치현실은 실로 암담하다 하겠다. 따라서 정치개혁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어 개혁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음을 정치인들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에 정치권의 물갈이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한가닥 소망의 빛을 비취고 있다.

경제 문제도 그동안 먹고 살만하게 되면서 잊었던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극복할 수 없는 일은 아니라고 본다. 모두가 배고프면서 서로 더 먹으라고 밥 한 숟가락을 상대방의 그릇에 싸우다시피 건네주면서 키웠던 가족간·이웃간의 정, 잘 사는 나라를 보면서 다졌던 나라 사랑하는 마음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애들이 밥을 안 먹어줘서 안달하고 남아돌아 버리면서 이러한 정들도 함께 버렸다.

앞으로도 어떤 어려움이 우리 앞에 닥쳐올지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혼돈의 터널을 벗어나고 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예측 가능한 질서 속에서 비록 힘들더라도 어둠이 깊으면 그만큼 새벽이 가까이 왔다는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서로서로 격려하며 얼어붙은 가슴을 보듬어 녹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