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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
책 익는 마을 원 진호
2018년 05월 29일 (화) 11:40:23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윤동주
 만주는 청나라때 봉금의 땅이었다. 함북 육진 사람들은 두만강 건너 만주에서 농사를 지었다. 사형까지 당할 수 있는 불법이다. 그래서 그들은 두만강 ‘사이섬(間島)에 간다’고 했다. 1880년대 봉금이 해제되고, 1899년 회령,종성 지역의 4명의 학자와 22개 집안, 141명이 용정 근방에 명동촌을 건설했다. 동주일가는 이듬해에 이주했다. 동주는 1917년 12월 30일에 태어났다. 1908년에 명동서숙이 세워졌고, 청년지사 정재면이 기틀을 세웠다. 명동촌은 정재면의 요구로 마을 전체가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당시 역사에 러일전쟁과 경술국치, 3.1운동과 1920년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이 있었다. 간도대토벌이 있었고 명동서숙이 불에 타 버렸다. 학교는 다시 세워졌고 동주는 1925년 명동소학교에 입학을 했다. 문익환과 송몽규가 그의 동기였다. 기독교와 민족주의 분위기 속에 어린 시절을 보낸 동주.
 1920년대의 만주는 공산주의 바람이 불었고 명동소학교도 그들의 손에 넘어갔다. 1931년 윤동주일가는 그들의 압박에 못 견뎌 용정으로 이사했다. 1932년 동주는 용정의 미션계 학교인 은진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당시 역사는 1929년 대공황, 1930년 만주사변 발생,1931년 만주국건설을 통해 일본의 통제가 심해지던 때였다. 동주는 1934년 18세에 처음으로 시를 썼다.
 1935년 벗 문익환이 평양 숭실중 4학년으로 편입했을 때 3학년으로 들어 갔다. 어린 나이에 겪는 첫 좌절감. 당시 왜정은 학교에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둘은 자퇴하고 용정으로 되돌아 왔다. 동주는 광명학원을 거쳐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다. 당시 북간도에서 연전에 합격한 사람은 단 둘, 송 몽규와 윤동주였다. 당시 동주는 정지용의 시에 감화를 받아 동시를 지었고, 현학적인 언어로 관념의 시를 짓기도 했다. 당시 역사는 1939년에 2차 세계 대전이 발생했고, 일제에 의해 창씨개명이 이루어졌다. 동주는 오랜 사건 절필의 시간을 보내면서 시대의 아픔을 같이 했다. 연전 4학년이 되어 그 유명한 ‘서시’와 ‘십자가’등을 지었고 출판되지 않는 시집을 남기었다.
 1942년 동경 입교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을 했고 창씨개명을 하면서 ‘참회록’이라는 시를 지었다. 당시 역사는 치안유지법이 더욱 강화되었고 요시찰 인물에 대한 감시가 심해졌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었고 조선 청년들 대상으로 1943년 8월부터 징병제가 실시되었다. 동주는 1942년 가을 경도 동지사대학으로 편입하였다. 거기에서 경도제대에 다니는 벗 송몽규와 자주 어울렸고 조선 유학생들과 향후 민족의 문제에 대해 토론하였다. 특히 송몽규는 징병제가 후에 조선 독립의 정병을 길러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것에 일본 정보경찰은 주목했다. 송몽규는 낙양군관학교 출신으로 징역을 살았던 ‘요주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1943년 7월 10일 송몽규가 잡히고 동주는 사흘 후 피체되었다. 공식 죄명은 ‘독립운동죄’.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동주는 1945년 11월 30일이 출옥 예정일이었다. 조선과 가까운 후꾸오까 형무소로 이감된 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26분에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죽었다. 그의 나이 만 27세 2개월. 사인은 생체실험의심. 뒤를 이어 3월 7일에 송몽규도 절명했다. 동주의 묘는 용정 동산(東山) 중앙교회 묘지에 있다. 비석에는 ‘시인 윤동주지묘’. 송몽규의 묘는 명동촌에 있고, 비석에는 ‘청년문사 송몽규지묘’.  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는 그의 초록을 소중히 보관해 온 정병욱과 그의 유품을 간직한  친구 강처중의 노력으로 1948년 1월 30일에 발간되었다. 정지용은 서문에서 동주를 ‘동(冬) 섣달의 꽃,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라고 표현했다.  평전 저자는 그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태어나서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죽은 시인 윤동주. 그것도 그 대전쟁의 주요 도발국인 일본의 감옥에서 일본인들의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어 죽은 그 젊은 죽음! 그 처절하고도 짧은 생애...’ 동주의 시는 세계로 번역되어 퍼져 나갔다. 왜일까? ‘그의 시가 지니고 있는 순결함과 참됨과 아름다움’이라는 문학적 성과에 기인한 것일 것이다. 시에는 동주의 진실함이 들어 있다. 시에 들어 있는 ‘청정하고도 지고한 기품’이 바로 그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서시 이후(以後)
 당신의 시는 어느 별에서 어느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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