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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렴산 만세운동일 도대체 언제야?
3월 16-17일이 아닌 4월 16-17일 의견 제기
국가보훈처, 4월 17일로 보는것이 타당 의견
2018년 01월 09일 (화) 11:27:27 김종윤 기자 jjong8610@hanmail.net
   

1919년 주렴산에서 '대한독립만세' 라는 구호가 울려퍼진 날이 현재 보령시에서 3·1만세 운동 재현 및 항일애국지사 추모 기념행사를 시행하고 있는 3월 16-17일이 아닌 4월 16-17일 이라는 의견이 제기돼 철저한 검증이 요구되고 있다. 이런 논란은 주산면을 중심으로 수년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주렴산 만세운동은 1919년 서울에서 3.1만세운동이 일어난 후 이철원 등 18명의 애국지사들이 주렴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부른 운동이다. 이에 참여한 애국지사 18명 중 11명이 보안법위반이라는 죄명으로 1919년 4월 20일 보령경찰서장의 즉결처분을 받은 기록이 전한다.

3월 16-17일이 맞다는 주장은 주산면사무소의 수형인 명부에 4월 20일자 판결을 근거로 보안법 위반의 중요사건 이므로 33일간의 조사 후 판결 했을 것으로 추정해 3월 16일을 거사일로 주장하고 있다.

향토지에도 거사 후 체포된 애국지사들이 33일 만에 즉결처분을 받고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거사일이 3월16일 경우 33일후면 즉결처분날짜 즉, 4월 20일과 일치한다.

구전(口傳)역시 구속기간이 두어 달 정도로 길었음을 증언한다.
 
반면 4월 16-17일이라는 주장은 독립 만세 운동 관련서적인 '국내 3.1운동 2-남부'와, '3.1 운동 연구사', 충남의 독립운동사(독립기념관 자료), 및 김양제·박태현·이장규의 공훈기록에 4월 17일로 기록돼 있는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또, 당시 만세운동의 주도자였던 이철원의 자서전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자서전 자필원고에 의하면 그는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2차, 3차 시위 참여 및 독립선언문을 등사해 서울 시내 및 지방에 배포하는 등 만세운동을 계속하다가(날짜는 기록돼 있지 않고 4월 어느날로 표기) 배재보고 기숙사 폐쇄사건 이후 고향인 주산면 증산리에 내려온것으로 돼 있다. 이후 간치(주산) 장날 거사하려다 못하고 그날 밤 주렴산 정상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다시서울로 피신해 부친의 주선으로 바로 중국 만주를 거쳐 상해 임시정부로 조피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기록대로 이철원은 4월초까지 서울에서 활동했다면 3월 16-17일이 아닌 4월 16-17일 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된다.

이처럼 논란이 있는 것은 1960년대 '주렴산 독립만세운동 애국지사 추모위원회'가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확한 기록물을 확인하기 어려워 후손들과 주민들을 상대로 구전 중심으로 정리하면서 초래한 혼선이라는 지적이다.

음력을 양력으로 적용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당시 민간에서는 음력과 양력을 혼재해 사용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같은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양력 1919년 4월 16일은 음력으로 3월 16일이다. 또, 양력 1919년 3월 16일은 음력으로 2월 15일이다. 당시 간재(간치)장날은 5일장으로 음력 5일과 10일에 섰다.

이 문제를 제기한 주산면 증산리에 거주하는 이원혁 씨는 "빠른 시간내에 정확한 자료를 토대로 거사일을 바로세워 안내판 및 비석등의 기록물을 정비해 현재와 향후세대에 정확한 내용들이 전달 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했다.

이와관련 국가보훈처 담당자는 '주렴산만세운동'과 관련한 가장 신빙성 있는 독립운동관련 자료 및 관련 연구자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 한 결과 만세운동 날짜는 4월 17일로 보는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매년 3월 16일에 시행 돼 온 기념행사를 4월 17일로 변경시 이에대한 반대의견이 있을 수 있다"면서 "이를 수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 후 기념일을 변경하는것이 바람직 하다"라고 덧붙였다.

일제 치하에서 만세운동을 불렀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날짜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만세운동을 부른지 1백년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에 목숨을 걸고 항거한 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해서는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기록해 후손에게 알리는 것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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