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24년 만에 PK(poly-clinic의 약자. 의과대학 본과 4학년 때 병원에서 임상실습을 하는 학생을 지칭)실습조 동료들을 만났다. 우리 조는 남학생 셋에 여학생 한명이었다. 94년도 의사 고시가 새로운 유형으로 출제되어 평소 95%이상의 합격률을 보이던 것이 70%대로 떨어졌었다. 우리 조는 두 명이 붙고 두 명이 떨어졌다. 당시 황망하게 헤어진 기억이 난다. 지금은 각 자 내과,정형외과,일반외과,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되어 자기 영역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여의사인 마취과 친구가 한 번 모이자고 사발통문을 돌렸다. 일시와 장소가 정해졌다. 어느날 그 친구가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우리 실습조는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듯 하여 반드시 인간관계의 비밀을 습득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합시다. <시크릿>이라는 책을 구입해서 ‘돈과 인관관계의 비밀의 장’을 꼭 읽고 오세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 친구 남자들 틈에 끼여 상처 많이 받았나 보다. 사실 우리 조 남자들은 뭔가 2%부족했다. 일반외과 친구는 마이웨이형이였고, 정형외과 친구는 문과형이었다. 둘 다 맷집이 좋아 혼나는데 익숙했다. 나는? 글쎄. 술과 사람을 좋아했다고나 할까? 흠. 뭐 좀 그랬다. 나는. 
 
■ The Secret
 비밀은 ‘끌어당김의 법칙’이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아주 명확하게 말하라. 그리고 그 소원이 이미 이뤄졌다고 믿어라. 그리고 기뻐하라. 전 세계 인구의 1%가 전 세계 돈의 96%를 벌어들인 것은 바로 이 법칙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암에 걸린 사람이 완치가 된 것도 바로 이런 믿음을 실천했기 때문이란다. 언뜻 황당하고 복음주의같은 종교냄새가 난다. 으쌰으쌰하는 영업조직의 교육교재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러나 이 책 꼭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  
 우리는 보통 남 탓, 구조 탓으로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려 한다. 그래야 맘이 편하니까. 누구에게 반대는 하지만 누구를 위해 실천하지는 않는다. 그래야 힘들지 않으니까. 사람은 자기 한계 속에 산다. 이러다 보면, 발전은 없고 후회만 남는다. 모든 존재의 변화는 어떤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태도에 있다. 건강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다. 이 책은 바로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구하고 믿고 받는다고 돈 드는 것도 아니다. 충만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온 몸에 받고 산다면 존재의 상태와 결과는 좋으면 좋았지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믿는다. 기왕이면 거창하게 살자고. 집 청소를 해도 지구 환경을 살리는 일이다. 기왕에 환자 보는 것도 단지 생계가 아니라 소명의식을 갖고 보자고. 돈은 그저 따라오게 하자고.

■ PK 실습조 친구들
 마취과 친구는 남편이 많이 아팠다. 진료를 끝내면 바로 집에 가서 남편을 간호했다. 나 아니면 우리 남편 어떻게 하나 하며 힘들 때 마다 남편 완치되는 것를 상상했다 한다.
 정형외과 친구는 여전히 문학의 세계에 빠져 있다. 말수도 적고 술만 완샷이다. 그리고 아침 내가 화장실 간 사이 방을 깨끗이 청소해 놓았다. 역시 외과다.
 일반외과 친구는 고단해 보였다. 주말 당직이라 술도 못 마시고 옆자리만 지켰다. 그리고 밤늦게 병원으로 갔다. 자기 삶이 대단치 않다고 한다. 근데 투덜거린다. 옛날과 똑 같다. 할 일 다 하면서 투덜거림. 우리 네 사람 다 변하지 않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똑 같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그렇지는 않겠지. 뭔가 변했겠지. 오래간만에 봐서 옛 생각에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

■ 계룡산 등산
 다음날 우리는 계룡산을 등산했다. 책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다. 우리 사는 이야기를 간간히 했을 뿐이다. 사실 우리는 책의 저자들 처럼 비밀을 극단적으로 지키며 살지 못한다. 그렇다고 비관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분명 그 중간 어딘가에 서 있을 것이고, 때에 따라 이 
쪽에 서기도 하고, 혹은 저 쪽으로 기울며 살아가기도 할 거다. 우리는 커피 한 잔 하고 헤어졌다. 또 언제 볼가? 기약은 안 했다. 언제 또 보겠지 뭐,
 친구들! 우리는 평범하다. 그러나 각 자의 삶에서 주인이다. 비밀은 삶의 태도에 있다. 긍정적으로 살자. 기왕이면. 그러나 가끔 슬플 때 슬퍼하자. 그리스의 비극이 왜 나왔겠는가. 그 곳에도 진리가 있나니. 또한 삶은 위로다. 서로 격려하며 위안 삼으며 살자. 또한 삶은 의미다. 김춘수의 시 <꽃>처럼 서로에게 의미가 되자. 잘 지내라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