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팍으로 지독히도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이번에는 좀 달라지겠지 하면서 새해를 맞이한 지 엊그제인데, 세월 무상이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새해다. 2004년이다. 흔히 말하는 기슴벅찬 새해다. 세모의 길목에 서서 자문해 본다. 과연 변했는가, 그리고 행여 좋아진 것이 있는가? 개인적인 사정이야 천태만상이겠지만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실망과 자괴감이 앞설 뿐이다.

올해는 정말로 돌이키고 싶지 않은 과거다. 무엇 하나 희망을 갖게하는 신바람나는 일이 없었다. 정치권은 정쟁으로 날을 지새고, 각종 비리의혹이 난무하는가 하면 노사가 갈등을 빚었다. 또 경제는 침체되어 신용불량자가 400만명을 육박하고 있고 청년실업자는 크게 늘었고 이념대립으로 사회가 사분오열되는 등 ‘대한민국호’ 가 난파되는 것은 아닌지를 걱정해야 했던 한 해였다.

지역적으로도 어수선한 한 해였다. 웅천 산업페기물처리장 증설허가 문제로 웅천 주민들은 물론 우리 지역의 가장 큰 현안으로 떠 올랐고, 한국 문단의 거목 고 이문구 선생의 타계로 큰 별을 잃은 슬픔은 문화예술계 뿐만 아니라 모든 보령인들의 가슴에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았다.
한편 보령시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 문제가 돼 보령시장이 네티즌을 고발해 잠시나마 전국적인 이슈가 됐는가 하면 보령시의 본사에 대한 감정적이고 보복적인 행위로 언론탄압이라는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이제 한 해의 언저리에 서서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기쁨과 만족보다는 회오(悔悟)와 자책이 앞서는 숙연함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온 세월을 되돌아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자신의 허물을 보면서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다시 지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정의가 구현되고 공의가 하수(河水)같이 흐르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과거라는 거울에 현재를 비춰 교훈을 얻고 미래를 잘 설계하고 추진해 나가야 한다. 역사란 단순히 지난 일들을 들춰보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일로만 머물게 한다면 역사의 발전은 없는 것이다.

떠들썩하고 화려한 출발보다는 깔끔한 마무리가 더 아름답다. 짧게는 하루를 마무리하고 또 한 해를, 길게는 한 생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 우리들은 대체로 시작은 화려한데 마무리가 서툴다. 계획은 늘 그럴듯한데 끝 무렵에는 흐지부지 돼버리는 게 적지 않다. 정치인들의 화려한 공약도 일단 당선되고 나면 기억조차 없다. 모두가 마무리에 대한 의식부족이다.

새벽 미명에 한 어부가 그물을 들고 바다에 나가다가 모래사장에서 자루 하나를 발견했다. 열어보니 그 안에는 돌멩이가 가득했다. 그는 별 생각없이 그 돌멩이를 하나씩 바다에 던져버렸다. 마지막 돌멩이를 던지려는 순간, 해가 뜨고 주위가 밝아지자 그것은 돌멩이가 아니라 다이아몬드였음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 아까워 통곡을 하던 어부는 정신을 차리고 마지막 남은 다이아몬드라도 소중하게 간직했다고 한다.

이 다이아몬드는 바로 우리의 삶이다. 우리들의 삶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빛나는 보석과 같다.

마지막 한 걸음이 남았을 때 최선을 다 해야 한다. 마지막 한 순간의 실수로 성공과 실패의 길이 나눠지기 때문이다.

끝까지 최선을 다 해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은 다가올 새해를 준비하며 성공으로 이르게 하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