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죠호쿠 병원
 일본과 한국의 의료 현실은 별반 다르지 않다.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상승으로 인해 국가의 의료 숫가 통제가 심하고 하여 노인환자를 주로 보는 중소병원이 경영난을 앓고 있다. 2008년에 일반병원이 7,714개였는데 2013년에 7,474개로 줄었다. 그래서 각 병원은 상급병실료등 비보험 숫가를 늘리고, 인력을 감축하면서 이에 대응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병원들은 돈이 되는 의료 행위와 돈 있는 환자 중심으로 운영하게 되고,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 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소외 계층과 취약 지역에 의료의 사각 지대가 발생하게 되었다.
 죠호쿠 병원은 일본 중부 동해에 접한 지역인 호쿠리쿠의 핵심도시 가나자와시에 위치하고 있다. 인구는 46만명. 이 병원은 지역 주민이 돈을 모아 만든 병원으로 일종의 의료 생협에 속한다. 역사는 60년 이상을 갖고 있다. 현재 병상은 309개이며, 직원은 600명이 넘는다. 평균재원환자는 292명. 급만성질환, 요양, 재활등 모든 환자를 수용하고 있고, 왕진도 빈번히 이루어진다. 이 병원이 속해 있는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가 추구하는 가치는 ‘생명의 평등을 기치로 하여 차별 없는 평등의료와 복지의 실현’에 있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임종을 얼마 앞둔 혹은 치료 불가의 병을 앓고 간병과 간호를 받을 수 밖에 없는 환자를 이 병원이 어떻게 다루고 있느냐에 있다.

■ 행차
 이 병원은 지역 환자의 입원 조건에 경제력, 간호의 불가피성을 검토한다. 다른 병원에서 받아 주지 않거나, 입원을 안 하면 가정이 파탄날 수 밖에 없다면 입원을 받는다. 또한 환자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상급병실료를 받지 않는다. 입원 기간이 지날수록 입원숫가가 낮아지는데도 퇴원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이 곳은 환자들의 희망을 들어 준다. 물론 직원들의 자원 봉사로. 이 것을 그들은 ‘행차’라고 부른다. 이 행차를 TV 가나자와가 다큐멘터리로 2008년에 제작했고, 책으로 엮었다.
 여기에 소개된 환자의 면모를 보면, 82세 폐암 말기 환자. 34세의 위암말기 환자. 93세의 정신 장애 환자. 81세의 폐기종 환자. 49세의 루게릭 병 환자들이 있다.
 첫 번째 환자는 사랑하는 여자와 야반도주해서 평생 생선초밥집을 운영하며 산 사람이다. 그의 여명이 얼마 남지 않자 병원은 그의 소원이 무엇인지 물었고, 그는 유년 시절 엄마의 역할을 해 주었던 누이를 만나고 싶어 했다. 누이도 90세의 고령이었다.
 두 번째 환자는 여명이 1~2개월 남았음을 통보 받았다. 그는 파친코 가게에 가서 겜블링을 해 보는 것. 그리고 대장암으로 입원한 어머니를 만나 보는 것이었다.
 세 번째 환자는 독거 노인. 거액의 돈을 집안에 숨겨 놓고 편집증적으로 살아온 분이다. 이 분을 세상에 나오게 한 사람은 죠호쿠 병원의 간호 부장. 왕진을 하면서 쓰레기 더미 집안에서 쓰러져 있던 이 분을 발견한 것이다. 이 분의 소원은 자신의 묘를 보고 싶어 했다는 것. 네 번째 환자는 평생 자신이 가꿔온 정원을 다시 한 번 보는 것이었고, 마지막 환자는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 웃으며 죽을 수 있는 병원
 이 행차가 실제는 정말 힘들다. 박빙의 연속이다. 조금만 부주의 해도 대형 사고가 날 수 있다. 직원들은 자원 봉사로 근무외 시간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은 왜 이런 행차를 전통으로 해 오는 걸까? 루게릭병의 주치의 야나기사와가 한 말이 있다. 길지만 인용을 해 본다.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로 변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의료 제도나 돈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사라지고, 가족이나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의미를 느끼기 어렵게 된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혼다 씨의 가족 관계에서 강한 느낌을 받으면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인생의 마지막에 있는 것이지만, 죽음만이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살아가는 의미를 찾는다면 좋은 죽음이 가능한 것입니다. 마지막을 어떤 식으로 맞이할 것인가의 문제는 마지막까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 가장 어려운 사람에게 빛이 비추이면, 다른 사람에게서도 빛이 난다
 이 말은 죠호쿠 병원의 한 수간호사가 한 말이다. 희망이 없는 어려운 환자에게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있느냐는 사람들의 문제제기에 대한 답이다.
 삶은 의미다. 의미는 홀로 세우는 듯 하지만, 여럿이 공동체가 만들어 가는 것이기도 하다. 희망을 놓은 불가능 삶에 가능을 이야기 하고 현실로 이어주는 죠호쿠 병원의 행차를 보며 누가 도움을 받을까? 중증 장애아를 위한 재활 병원 설립을 두고 논란이 되었던 효율성 논쟁이나, 서울 성북구의 특수학교 설립 논란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다.
 돈 있다고 까불대지 말고, 돈 없다고 자격지심에 빠지지 않는 그런 사회에, 그런 세상에 의료가 서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