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물질의 노예가 된지 오래다.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달하는 가방을 들어야 돋보이고 바야흐로 명품 브랜드가 인격을 대변하는 시대다. 최신형 핸드폰을 손에 들어야 앞서가는 사람이고 남녀 간의 사랑도 명품과 돈으로 좌우되기 일쑤다. 물질문명의 발달은 인류의 삶을 바꿨지만 그에 상응하는 정신문명은 상대적으로 뒤처졌기 때문이다. 인격도 돈으로 평가하고, 돈이면 안되는 게 없다보니 사회 정의와 양심도 물질 뒤로 밀렸다.

비상장 주식을 공짜로 받아 100억원대 시세 차익을 올린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진경준 전 검사장은 지난 7월 2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진 전 검사장은 2005년 김정주 NXC 대표에게서 넥슨 비상장 주식 1만주를 무상으로 받고 이듬해 넥슨 재팬 주식 8537주로 교환해 120억원대의 시세 차익을 올린 혐의다. 최고의 엘리트 집단에 최고의 권력을 가진 검사장이 물질 앞에 힘없이 무너진 셈이다.

21억원 아파트 전세금에 예금만 18억원으로 알려진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는 남편 명의로 3개의 상가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그는 돈 6000만원과 명품가방, 그리고 벨트와 고가의 손목시계로 도마에 올랐다. 물론 사건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그의 명예와 그의 재산을 생각할 때 구질구질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주식대박’ 논란에 휩싸인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는 결국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지난 1일 자진 사퇴했다. 당연한 귀결로 여겨진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4년 서울지검 북부지청 검사로 법조계와 인연을 맺었다. 변호사 개업 이후에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장을 역임하고 서울시 인권침해구제 위원장과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를 맡는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했다. 그러나 이 같은 공은 주식에 대한 탐욕으로 퇴색했다.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은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잔으로 절주배(節酒杯)라고도 불린다. ‘넘치는 것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이며, 잔에 70% 이상 술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리도록 돼 있다. 따라서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공자가 제나라 환공의 사당을 찾았을 때, 생전의 환공이 늘 곁에 두고 보면서 스스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사용했던 ‘의기’를 느꼈다고 전해진다. 환공은 이를 늘 곁에 두고 보는 그릇이라 하여 ‘유좌지기’(宥坐之器)라 불렀고, 공자도 이를 본받아 항상 곁에 두고 스스로를 가다듬으며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정치인과 재벌을 비롯해 고위직 공직자들에게 꼭 필요한 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