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의 장밋빛 시대
 ‘잘살아 보세’라는 시대가 있었다. 통일벼는 육종으로 탄생되었고, 비료와 제초제가 증산에 기여하였다. 새마을 운동으로 초가집은 슬라브집이 되었고, 신작로에 포플러 나무가 심어지고, 고샅길엔 맨드라미,채송화, 코스모스가 심어졌다. 쥐덫을 놓아 쥐를 잡고 학교에서 나눠준 회충약을 먹었다. 학교에선 불주사라고 예방접종을 해 주었다. 그 시대엔 그랬다. 살충제가 해충을 통제하고, 항생제가 모든 세균을 잡아 낼 거라고 믿었다. 경제발전은 국민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고, 관개수로사업은 홍수나 가뭄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할 것이라 믿었다. 이러한 장밋빛 청사진은 정치 경제 리더들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 그렇게 믿는 국민의 동의와 참여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당시 우리에겐 그런 열망이 있었다. 하여, 우리 어른들이 베트남에도 가고 독일도 가고 저 멀리 열사의 나라 사우디도 높은 경쟁률을 뚫고 가려 했던 것이다. 당시 과학철학은 이런 분위기에 명분을 제공하고 힘을 실어줬다. 환원주의, 실증주의, 전문가주의, 기능주의, 비윤리의식, 단선적 모델론이 그 것이다. 

■ 생태 사회적 곤란 증후군
  그헣다면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외형적으로 잘 먹고 잘 살고는 있다. 그러나 살충제가 해충을 통제하지 못 하고 있고, 항생제는 새로운 병원체를 양산하고 있을 뿐이다. 지구 온난화문제와 같은 전지구적 문제는 우리 삶의 근본을 흔들어 놓고 문제를 우주적으로 뻗어 가게 하고 있다. 경제 발전은 굶주림을 더 악화시키고, 홍수조절은 홍수를 더 증가한다. 분쟁과 소요는 지속되고, 전염병은 다시 돌고 있다. 저자는 이를 생태사회적 곤란 증후군이라 개념화했다.
 저자는 현대의 과학이 분절적이고, 방법론적이며, 환원론적이라고 비판한다. 과학의 대상은 복잡하고 복합적인 것이며, 상호침투성이 있기에 이러한 현대 과학의 태도는 한계가 있다. 또한 자본의 논리에 충실하면서 지구가 앓고 있는 생태학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구의 문제는 다층적인 접근, 복잡성의 문제, 돈이 안 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하나? 

■ 슈말하우젠의 법칙
 저자는 사회구조와 계급적 관점에서 취약 계층이 병에 자주 걸린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눈이 안 좋은 아이가 키가 크다고 교실 뒷 쪽에 앉아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있다 하자. 교사는 지적능력과 집중력 장애가 원인이라 판단하지만 실제 이 학생은 안경만 끼면 해결될 것이었다. 비만의 해결은 운동과 식단조절이지만 운동할 시간적 여유가 없고 식단조절할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에게 해결책이 되겠는가? 이들에게 노동시간을 줄여 주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임금을 지불해 주는 것이 고지혈증약을 처방하는 것 보다 더 우선일 수 있다.
 유전학자 슈말하우젠은 비교적 동질의 형질을 가지고 있는 개체군에 극단적인 환경의 변화를 가하면 유전적 차이가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불리한 조건에 처한 집단들이 작은 변화에도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폐암의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공단 지역에 살 때 발병 위험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저자에게 이 법칙은 사회적으로 읽혀진다. 계급적 착취, 여성, 아이등이 질환에 걸릴 취약 계층이 되는 것이다. 해서 취약성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고 해결책을 내 놓아아 한다.  
 
■ 11번째 테제로 살아가기
 저자는 작년 돌아가셨다. 주류 학계의 상징인 하버드에서 생태학자로서 외롭게 강의를 해 왔다. 그의 건강론은 이렇다. 건강은 영구적인 과정이며, 단순 보건의료 영역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생물학은 사회화된 영역이며, 건강권은 투쟁의 대상이다. 진리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에 있으며 선택과 책임은 같이 간다. 슈말하우젠 법칙은 우리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어디에 집중되어야 하는지 보여준다. 건강문제의 실천도 자본과 권력의 대상이 아니라 민주주의 절차와 과정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모든 질병과 문제에 대하여 성찰하고 탐지하고 예측하고 대응하고 예방해야 한다.  
 칼 마르크스는 포이에르 바하에 관한 열 한번째 테제를 이렇게 이야기 했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여러 가지로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는 그런 원칙으로 평생을 살아 왔다. 살아 있는 우리의 과제는 이젠 어떻게 하면 레빈스처럼 살아갈 것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