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사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남고/껍데기는 가라/그리하여 다시/껍데기는 가라/이곳에선 두가슴과 그곳까지 내논/아사달 아사녀가/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부끄럼 빛내며/맞절할지니/껍데기는 가라/한라에서 백두까지/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1930-1969)이 1967년에 발표한 詩다. 시인은 당시 군부 정권체제에서 만연한 정치적인 허구와 뿌리내린 가식, 암울했던 시대를 꼬집으며 부정세력은 물러가라는 자신의 생각을 이 같이 표현했다.

정의를 위해 일어선 4. 19 혁명과 순수한 민족정신을 담았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널리 읽히고 있으며, ‘껍데기는 가라’는 시인의 외침은 광장에 모인 오늘의 촛불과 무관치 않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더한다. 작금의 정치상황과 산적한 시대적 과제는 박근혜의 썩은 인물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으며, 반시대적 껍데기를 꼽으라면 독재자 박정희와 그의 딸 ‘근혜’는 물론이고 새누리당과 ‘친박’을 비롯한 그 세력을 빼놓을 수 없다.

반기문 전 총장도 껍데기에 속한다. 이미 알려진 대로 반 전 총장은 지난 1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그는 이날 “(정치권의) 일부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에 지극히 실망했다”며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또 “저의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정치교체의 명분은 실종되고 개인과 가족, 그리고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됐다”고 덧붙였다.

자신은 순수한 흙 가슴이고 기존의 정치세력은 낡고 부패했으며 지극히 이기주의란 주장이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자신이 순수하고 깨끗하다는 표현은 어불성설이다. 한국 정치 자체가 구린내뿐인 오염덩어리고 그 속에서 대통령이 되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는 이미 순수성을 잃었으며, 지지율이 1위를 유지했더라도 이 같은 주장을 폈을 것인지 의문이다.

자신의 동생과 조카의 사건에도 그는 남의일로 치부했고 당당했다. 귀국해서 보여준 것이라곤 이곳저곳을 방문하며 자신을 대우해 주기를 기대했을 뿐 미래 비전과 정책 제시에는 인색했다.

귀국하면 정치권에서 자신을 떠받들고 잘 모시는 세력이 급증할 것으로 판단했겠지만 현실정치는 그렇게 녹록치 않다. 끝까지 도전하고 맞서 싸우고자하는 승부근성도 보여주지 못한 채 유엔의 명예를 거론하는 등 정치세력을 쇠붙이로 평가했다. 정작 유엔의 명예에 상처를 준 것은 반 전 총장 자신이지만 그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기회나 엿보면서 안 되면 남의 탓으로 돌리는 금 수저 관료 특유의 껍데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