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항건설이다”, “아니다”를 놓고 20여 년간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면서 ‘보령신항’이 정치인들의 선거용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오천항 전경.

빛바랜 보령신항을 놓고 이런저런 잡음이 끈이지 않고 있다. 정치인들의 선거용으로 전락한 보령신항이 이제 추하게 보일뿐이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정작 보령신항에 큰 관심이 없지만 일부 정치세력은 죽기 살기로 보령신항의 끈을 놓지 못하는 모양새다. 보령시 재정자립도가 왜 해마다 10% 초반에 머무는지, 서민들의 밥그릇은 혼식인지 분식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치적에만 혈안이 돼 있다.

그래서 지역은 지역대로 썩고, 사회도 썩을 대로 썩어 나라는 파탄 났다. 김동일 시장은 지난해부터 종종 보령신항 건설이 눈앞에 왔다고 강조했다. 언제 얼마를 투입해 어떻게 신항을 건설한다는 것인지에 대한 증거물은 제시하지 못한 채 입으로만 ‘신항’ 건설을 외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그러나 보령신항 건설계획이 전혀 없으며. 보령화력 증설에 따른 석탄 운반선과 LNG 운반선 항로 개발에서 발생하는 준설토 투기장을 천북면에 마련한 것 뿐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앞서 보령시는 준설토 투기장을 보령화력 회처리장과 겸할 목적으로 주교면 은포리 앞바다를 선정·추진했으나 당국의 허가가 여의치 않자 새만금을 고려했고,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최종 천북면 일원으로 투기장을 확정했다. 김시장이 보령신항 건설에 필요한 항만용 부지를 마련했다는 것이 이 준설토 투기장이며, 투기장을 관리하는 관리사 한 동을 말한다.

해양수산부 항만정책 관계자는 “보령신항을 개발한다는 보령시의 입장은 보령시의 입장일 뿐 우리(해수부)와는 무관하다”며 “준설토 투기장을 활용하는 방안도 완공 후에 다양한 의견을 거쳐 결정할 문제”라고 밝혔다. 보령시의 주장과는 거리가 먼 대목이다.

보령시민은 봉, 너도나도 ‘신항’ 공약

보령신항이 처음 고개를 든 것은 지난 1997년도다. 해양수산부는 이 때 신항만건설촉진법에 따라 현재의 보령항을 신항만으로 지정 고시했다. 이후 2002년 심대평씨가 충남도지사에 출마하면서 보령신항 건설을 공약으로 제시했고, 보령신항이 수면위로 급부상했다.

이 같은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심씨는 그러나 임기 내 보령신항을 추진하지 못했고, 2007년에는 국민중심당 대선 후보로 나서 또다시 보령신항 건설을 내세웠으나 출마를 포기했다. 2006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충남도지사에 출마한 이완구씨도 보령신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건 후 당선됐으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뒤이어 류근찬 의원도 두 번 출마를 통해 보령신항 건설을 과제로 제시했지만 결과적으로 단추를 꿰는 데에는 실패했다. 여기에 신준희·이시우 보령시장도 보령신항 건설을 공약으로 제시했고, 김동일 시장과 김태흠 국회의원도 보령신항 건설을 약속했으며, 김시장과 일부 정치세력은 보령신항 건설이 가시화됐다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제3차 전국 항만기본계획 수정계획(2016-2020)에 보령신항 개발계획이 들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모양새다.

인구 10만에 수출입 물동량은 ‘제로’

정부도 이윤이 있어야 투자를 한다. 옛날 같이 힘 있는 정치꾼들에 의해 놀아나는 정책은 이제 기대할 수 없다. 여당이니 ‘진박’이니 ‘친박’이니 하는 천박한 논리도 이제는 접어야 한다. 신항이 됐던 보령항의 확대 건설이 됐던 투자에 대한 이윤과 미래가 보장돼야 정부가 나선다는 뜻이다.

이처럼 정부나 기업이 무엇인가에 대해 투자를 할 때에는 거시적 효과는 물론이고 그에 따른 각종 수익기반과 성공률이 전제돼야 한다. 보령신항이 무역항으로 개발 될 경우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기준과 그에 따른 여건 충족은 필수다.

하지만 웬만한 군(郡)단위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구 10만으로서의 신항이란 보령시가 넘기에는 거대한 산맥이고, 특히 무역항의 기본적인 물동량을 충족시킬 수출입 기업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저성장 추세에 접어든 경제 여건을 감안 할 때 정부가 보령신항에 거액을 투자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현재 국내 무역항의 물동량 처리 능력이 부족하다는 통계도 없을뿐더러 보령의 경우 인근 지역에서 유입될 수 있는 물동량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충남 서북부나 중부권은 평택항과 인천항을, 대전권에서는 대산항과 기타 항의 접근성이 용이하고 서남부 지역에서 발생하는 물동량이라고 해봐야 미미하지만 그나마 군산항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기존의 무역항과 보령의 여건

평택항의 경우 수도권과 인접해 있고, 대단위 공단이 입주해 있으며 기본적인 물동량을 넘어 현대·기아·쌍용자동차의 수출입 거점항만으로 활성화 돼 있다. 평택시 인구 또한 45만 여명으로 일반적인 기능과 자급자족형 기능을 모두 갖췄다. 따라서 수도권과의 접근성은 물론이고 무역항으로의 기능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 무역항을 가동할 수 있는 기반시설이 그만큼 튼튼하다는 얘기다. 76만5000㎡ 규모로 건설된 대산항은 1991년 국가관리 무역항으로 지정된 이후 2014년 전국 31개 무역항 중 전체 화물처리량 6위, 유류 화물처리량 3위를 달성, 명실공이 충청권의 대표 무역항으로 발돋움 했다.

부속 항으로 인근 당진화력 석탄부두를 별도로 갖췄다. 1991년 무역항으로 지정된 이후 석유화학 회사들의 선박들이 자주 이용하는 항구였으나 2006년 말 충남도내 최초로 공용부두를 완공했다. 이후 2011년 2개 부두를 추가하면서 물류 처리량이 크게 늘었다.

접안 능력은 공용부두 4선석과 삼성석유화학부두 1선석 현대오일뱅크부두 9선석, 씨텍부두 3선석, 삼성토탈부두 4선석, 한국석유공사부두 1선석 등 총 28선석이고, 28선석의 동시 접안 가능 총 톤수는 지난해 통계로 1,541,200톤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같은 규모를 갖추고 무역항으로서의 운영이 가능한 것 역시 서산·당진지역에 대단위 기업이 입주해 있고 그에 부합하는 자족적 기능이 충족돼 있기 때문이다. 인구역시 서산·당진시를 합해 총 34만 5천여 명에 달한다. 군산항도 사정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인구수를 강조하는 것은 인구 밀도에 따라 수출입기업과 물동량이 비례하기 때문이다.

정부, 물동량 감소로 부두 건설 대폭 축소

정부는 지난해 국내 항만의 국제경쟁력과 물류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14조7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부산항을 '세계 2대 컨테이너 환적 허브'로 육성하고 광양항은 '국내 최대 산업클러스터 항만', 인천항은 '수도권 종합 물류 관문' 등으로 특화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크루즈 관광 300만명 시대'에 대비해 해양 관광 인프라를 확대하고, 항만 배후단지 활성화도 추진된다. 해양수산부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제3차 전국 항만기본계획 수정계획(2016-2020년)을 지난해 9월 확정, 고시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제주신항, 부산항, 인천항, 속초항 등 전국 9개 항만에 크루즈 부두(16선석)를 조성하고 섬 관광 활성화를 위해 노후 여객 부두와 여객터미널 23곳을 대대적으로 정비할 계획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투자는 처음 발표한 3차 기본계획(2011-2020)에 비해 30% 이상 축소됐다. 이는 항만 물동량 감소에 따라 컨테이너 등의 부두 건설 계획이 대폭 축소됐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는 10년간 컨테이너 부두를 50선석 건설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수정 계획에 따라 17선석이 감소했다. 세계경제의 저성장세 등 경제 여건이 변화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번 수정계획에서 중장기 항만 물동량과 시설수급 계획을 재검토한 결과다. 따라서 수출입 물동량을 담보할 수 없는 보령항에 수천억을 들여 무역항으로 개발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그만한 예산도 없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고개 숙인 보령시 의회, 시민단체도 ‘좌고우면’

김시장과 일부 정치세력의 주장을 동조하거나 이를 묵인하는 건 보령시의회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 소속의원들이야 김시장과 ‘원 바디’를 이어 간다 하더라도 무소속과 야당 의원들만큼은 무엇이 진실인지를 밝혀야 하지만 이들은 이에 대해 관심이 없다. 특정사안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고 여기저기 눈치나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보령시의회는 김동일 시장이 취임과 함께 꺼낸 화상경마장 유치와 관련해서도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우왕좌왕 표를 의식해 주민 눈치나 살피는 행태를 보여 왔으며, 1년을 넘겨 무산된 화상경마장 결과에 대해서도 집행부에 입을 다물었다.

화상경마장 유치 실패에 따른 경제적 손실과 행정력 낭비는 물론이고 주민간의 갈등과 반목은 아직도 봉합되지 않았지만 보령시의회는 지금까지 이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못한 상태다. 해태행위를 넘어 아예 집행부에 고개를 숙였거나 무엇인가와 유착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시민의 입과 귀가 돼야 할 시민단체는 시민단체대로 사실 확인을 외면했다. 보령시와 짝짓기라도 한 것인지, 아니면 최순실 국정농단에 이런저런 고민이 깊어진 것인지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일 수밖에 없는 구조만 이어가는 모양새다.

관변단체를 제외한 각종 사회단체와 지식층도 마찬가지다. 지역현안이 무엇인가에 대해 시민과 함께 고민하고 시정과 의회를 감시할 수 있는 행동을 보여야 하지만 이들 역시 관심 밖이다. 그래서 문제다. 보령시와 그릇된 정치세력에게 일갈할 수 있는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 문제고, 우리의 미래가 거짓과 오욕으로 점차 물들어 가는 것이 더 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