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글로 청춘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던 신 영복선생님이 지난 15일 향년 75세로 돌아가셨다. 그 분의 삶과 사색을 삶의 교범으로 삼았던 나로서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소식이었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서재에 꽂혀있는 그 분의 책 <신영복의 엽서>를 꺼내 들었다.
 이 책은 1968년 통혁당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88년 출소하기까지 20년 20일 동안 감옥에서 써온 엽서와 편지를 모아놓은 것이다. 당신의  육필이 담겨져 있고 세월의 손때가 엽서와 편지 곳곳에 묻어 있는 것이여서 쪽을 열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글체가 또박또박하고 논리도 정연해서 빨리 한 번에 써서 내 보내야 하는 감옥에서의 글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또한 당신이 써 내려간 글빛은 어떠한가? 몇 가지를 인용해 본다.

II.
 감옥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묘사한 편지가 있다. '70년대 벽두'라는 편지에는 남한산성에 있는 육군교도소에서의 징역살이가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당신은 <난중일기>등 감옥에 들어오기전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는다. '책이란 자기가(독자가) 변하면 내용도 변하는지 다른 느낌을 받는다.'고 적고 있다. 사형수와 무기수가 모여 있는 8호 감방은 그들의 악다구니로 편할 날이 없다. 그들의 으악스러움은 기실 '누구보다도 약하고 서러운 자이기 때문에 그 표현이 치열하고 극성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편지의 끝은 이렇게 맺는다. '괴롭고 서글픈 하루의 마지막을 알리는 취침나팔소리마저 자즈러지고 나면..여기 이 감방은 하나의 무덤이 된다.'

III.
 손등을 내리찍는 도끼의 날처럼 서늘한 내용도 있다. 더운 여름날 비좁은 감옥 안. 옆에 누워 자는 동료의 뜨거운 열 기운에 그를 증오하게 된다는 내용이 있다. '자신의 존재 그 자체'로 남에게 미움을 주거나 받는다는 사실에 당신은 절망한다. 또한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 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혐오'에 우리 자신은 불행해진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엽서에서는 더운 여름날 다른 이의 더위를 쫓아내기 위해 방 가운데서 부채질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며, 인간에 대한 미움을 걱정하는 자신의 단견을 책망하기도 한다. 이 두 엽서를 통해 우리는 당신의 끊임없는 각성과 사색하는 힘을 느끼게 된다.

IV.
 책에는 긴 글의 편지가 있는데 ‘청구회 추억’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66년 봄 당신은 서울대 문학회 동료와 서오능으로 봄놀이를 갔는데 거기서 초등학교 6학년 친구들을 사귀었다. 68년 7월 구속 전 까지 한 달에 한 두 번꼴로 그들과 만나 우정을 나눈다. 이화여대 학생들과 육사생도들, 그리고 청구회 식구들이 백운동 계곡으로 놀러 다닌 일도 있고, 책을 읽고 토론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동네 골목을 청소하고 여름에는 달리기 운동도 했단다. 그들의 집은 가난했고 대부분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 했다. 당신이 수도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들은 병문안을 오기도 했다. 그 정성이갸륵하게 편지에 쓰여 있다. 그리고 당신이 구속이 되자 검사가 통혁당 조직과 연계시키기 위해 청구회의 정체와 회원 명단을 대라고 을러댔다. 당신은 말했다. "그들은 초등학교 7학년,8학년생이라는".
 우리는 중고등학생들을 어린아이 취급한다. 그렇지 않다. 청구회 아이들이 읽은 책이 <아아 무정>,<푸루타크 영웅전>,<소영웅>등이다. 그들은 모여 강독하고 독후감을 쓰고 자신의 꿈과 고민을 나누며 지냈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이라고 그러지 못하라는 법이 있는가? 철들지 않는 우리 아이들의 재기발랄함을 억누르는 철든 어른이 되지 말아야겠다는생각을 하게 된다.

V.
 당신은 독서하고 사색하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경청하는 것으로 감옥 안에서의 사회적 실천을 했다. 그러나 그는 실천의 바탕이 되는 '현실의 땅'을 잃어버린 것에 괴로워했다. 오늘 당신은 갔지만 '현실의 땅'에 우리는 여전히 서있다. 그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새기며 글을 마칠까 한다. 부디 하늘 나라에 가시더라도 우리를 굽어 살피셔 우리사회가 왜곡과 부정의로 나아가지 않도록 도와주시라.
"머리 좋은 사람이 가슴 좋은 사람만 못하고, 가슴 좋은 사람이 손 좋은 사람만 못하고, 손 좋은 사람이 발 좋은 사람만 못하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인간관계의 최고형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