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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실록(實錄) - 조선왕조실록속의 보령13]과거(科擧) ④
2015년 07월 07일 (화) 15:42:34 이후근 기자 webmaster@charmnews.co.kr

고려는 지방호족세력들의 연합정권적인 성격이 짙었다. 왕건 역시 개경의 유력한 호족이었고, 왕건세력은 후삼국통일 과정에서 각 지역의 유력한 지방호족들과의 연합과 동맹을 통해 세력을 강화시켜 나갔다. 왕건은 지방호족세력을 통합하는 방법으로 혼인을 적극 활용했다. 혼인정책은 호족을 포용하려는 건국 초기의 정치정세가 반영된 결과였지만 왕권강화에는 한계가 있었다.

문제는 왕건의 사후에 곧바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왕건의 25명의 아들들 간에 왕권을 물려받으려는 치열한 권력투쟁이 전개됐다. 호족들은 왕건의 아들이라면 곧 고려 건국의 중심세력인 자신들의 외손자이기 때문에 욕심을 낼 수밖에 없었다. 고려의 지배세력인 호족들에게 왕권을 둘러싼 권력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곧 고려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사활을 건 권력투쟁이 진행됐다.

처음에는 왕건의 맏아들인 무(武), 곧 혜종이 왕권을 물려받았다. 혜종의 어머니는 장화왕후 오씨. 왕건 재위 중 고려 개국공신인 박술희를 후견인으로 하여 태자에 책봉되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혜종의 정치적 뒷배인 해주오씨 가문은 그 세력이 한미했다. 즉위 초부터 강력한 호족출신이며 외척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왕규와 이복동생인 요(뒤의 정종)·소(뒤의 광종) 등이 끊임없이 왕권을 위협해 그 지위가 매우 불안했다. 왕규는 자신의 외손자인 광주원군을 즉위시키고자 여러 차례에 걸쳐 암살을 시도했는데, 혜종은 그를 저지하지 못하고 늘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정치에 뜻을 두지 못하다가 결국 병석에 눕게 되었고 2년이라는 짧은 재위기간을 기록했다.

이어 왕위에 올랐던 정종도 동생인 광종에 의해 곧바로 물러났다. 광종은 자신을 즉위시킨 호족세력을 그냥 두어서는 왕권을 결코 강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호족 세력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광종은 다양한 왕권강화책을 강력하게 실천해 나갔다. 그 일환으로 시행한 것이 지배세력인 호족들이 사사로이 소유한 노비들을 풀어주는 노비안검법을 시행한다. 그리고 과거제도도 도입했다. 모든 것이 호족세력을 누르려는 왕권강화책이었다.

과거제도의 도입으로 왕권을 위협하던 호족 출신의 무장들을 대신하여 국왕에 충성을 다하는 문신을 관료기구에 편입시킬 수 있게 됐다. 과거제의 실시는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충성스러운 문신관료들에 의한 문치주의적 사회로 옮아가는 첫발을 내디딘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서는 신라의 골품제에서 관료제도로의 전환을 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려시대의 과거는 크게 제술과·명경과·잡과로 구분되었다. 그 중에서도 제술과와 명경과는 조선의 문과에 해당하는 것이다. 제술과와 명경과에 합격하면 문관이 될 수 있었기에 가장 중요시되어 흔히 양대업(兩大業)이라 하였다.

제술과는 처음에는 시·부·송·시무책이 주요 시험과목으로서 때에 따라 선택되었으나, 시험 과목은 시대에 따라 자주 바뀌었다. 명경과는 제술과와 달리 상서·주역·모시·춘추·예기가 시험 과목으로서, 그 내용을 읽고 뜻이 통하는지를 시험했다. 그런데 고려시대는 한·당유학의 영향으로 경학(經學)보다 사장(詞章)이 중시되었기 때문에 양대업 가운데서도 제술업이 더욱 중요시됐다.

제술업의 급제자 수는 문종 이후 매 회마다 대체로 30인 전후이었던 데 비하여, 명경업의 경우 평균 3, 4인에 불과하였고, 그나마도 장기간 뽑지 않고 거르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까닭에 고려 전시대에 걸쳐 제술업 급제자수는 6,700인이나 되었지만 명경업의 경우 449인에 불과하였다. 고려시대의 과거라 하면 바로 제술과를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잡과는 명경과보다 격이 떨어지는 기술관 등용시험이다. 고려시대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은 평민에게도 주어졌으나, 제술과에 실제로 응시하는 사람들은 귀족, 관리, 지방호족들의 자녀가 많았기에 잡과는 평민들이 제한적이나마 관리를 진출할 수 있는 길이였다.

 <자료인용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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